2016.01.15 내 인생의 게임

내 인생의 게임 #1 페르시아의 왕자

고르바초프가 소련의 공산 통치사에 종막을 선언하고 전세계인이 우려했던 걸프전이 끝나갈 무렵, 대한민국에 사는 평범한 초딩 소년의 운명을 뒤바꾼 게임이 나타났습니다. ( ゚Д゚)

페르시아라는 이국적인 배경, 허나 화면에 보이는 건 어두컴컴한 지하 뿐, 죽음을 부르는 공포의 함정과, 6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까지…! 이 게임은 그야 말로 소년들의 혼을 쏙 빼놓았죠.

내 인생의 게임,  대망의 첫 시간에 소개할 게임은  엔씨소프트 컷씬 연출가 김종빈 과장의 인생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입니다.  ( ͡° ͜ʖ ͡°)


“이거 진짜 재미있어! 집에 가서 해 봐~!” 90년대 초 어느 날, 초등학생이던 내 작은 두 손에 컴퓨터 학원에서 알게 된 형아가 쥐어 준 것은 5.25인치 플로피 디스켓이었다.

페르시아의왕자

책받침마냥 흐물흐물한 사각 디스크에는 3M 라벨 스티커가 정갈하게 붙여져 있었는데, 스티커 위에는 형아의 삐뚤빼뚤한 글씨로 ‘페르시아의 왕자’라고 써 있었다.

검은색 자성필름에 지문이 찍히면 바이러스(?)에 걸린다는 교육을 받은 초딩 소년은 게임이 망가질까 봐  조심스럽게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디스크 표면의 끝자락을 잡고 곱게 쌓여 있던 보호종이를 살포시 걷어 내었다.

본체 투입구에 들어간 디스켓은 우이잉~ 하는 286 AT 특유의 고급진 기계음을 발현하며 소년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빠라바라~~ 이국적인 고대 아랍 음악이 흘러 나오며 아라비안 나이트 동화책에서나 본듯한 친숙하고도 독특한 느낌의 오프닝 일러스트 화면이 펼쳐졌다.

openingscene

이 화려하고 이국적인 오프닝을 보라 (;◔ิд◔ิ)

당시 <인디애나 존스>나 <신밧드의 모험>처럼 아랍을 소재로 한 영화나 이야기에 매료되어 있어서 더 그랬을지 모르지만, 오프닝 일러스트는 그 자체만으로도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지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을 불러 일으켰다.

곧이어 오프닝 씬이 등장했는데, 이것은 지금으로 치면 컷씬에 해당할 것이다. 이미 많은 DOS 게임들이 전성기를 누리던 90년대 초였지만, 스토리 형식으로 마치 영화를 보듯 풀어 나가는 게임구조는 페르시아의 왕자가 유일무이했다.

예를 들어 더블드래곤(1987)도 납치된 여자친구를 구하러 가는 비슷한 전개이긴 하다. 하지만 시작하자마자 다짜고짜 양아치 녀석이 주인공 여자친구의 명치를 때려 눕힌 뒤, 짊어지고 튀는 도트 애니메이션은 내가 왜 여자친구를 구하러 가야 하는 지 충분히 이해시켜 주진 못했다.

더블드레곤양아치

일단 퍽! 치고 시작하는 더블드래곤 

당시의 ‘오락’들은 복수의 당위성(!) 같은 거창한 주제로 접근하기엔 그리 심도 깊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저 치고 박고 목표달성을 이루면 그만이었으니까.

반면 페르시아 왕자의 첫 오프닝 장면은 우리가 왜 제한 시간 60분 내에 12개의 레벨을 돌파해야 되는 지에 대한 목표 의식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첫 장면의 공주가 너무나 예뻤으니까… ( ͡° ͜ʖ ͡°)

공주

오프닝에서 머리를 휘날리며 돌아서는 공주 *ㅁ*

악당 자파가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가자 놀라며 돌아서는 장면은 비록 픽셀 덩어리의 애니메이션이었지만 공주의 아름다움과 여리여리함을 전해 주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캐릭터의 움직임이 놀랄 만큼 현실적이고 부드러웠기 때문이다.

당시 한두 컷으로 이루어진 타 게임의 캐릭터 애니메이션와 달리, 페르시아의 왕자 속 캐릭터들은 생기가 있었다. 후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러한 부드러운 애니메이션은 영화 감독을 꿈꾸던 제작자 조던 메크너의 준비된 기술과 뜨거운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첫스테이지

툭!

처음 스테이지에 하얀 옷을 입은 왕자 캐릭터가 뚝 떨어졌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전에 해봤던 아케이드 게임들처럼 그저 앞으로 돌진하면 되는 건가? 하지만 여기서 페르시아의 왕자가 지금까지 회자될 수 있었던 차이점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초반 시나리오 못지않게 게임성에 있어서도 페르시아의 왕자는 플레이어를 게임 내내 붙잡아둘 만큼 강력한 요소들을 지니고 있었다. 그 요소들을 어린 나는 “공포감”으로 이해했다.

사실, 진짜로 이 게임은 좀 무서웠다. 적어도 초딩이 하기엔 말이다. 60분이라는 정해진 시간의 압박감, 어둠의 미로속을 헤맬 때의 두려움. 단순하고 민첩성만을 요하는 그러한 해피해피한 게임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persia

이게 뭐야…무서워…

다음 화면으로 넘어갈 때면 훅~ 등장하는 칼 든 문지기들!  몸을 두 동강 내 버리는 날카로운 톱니 함정! 발 아래로 흔들리는 발판! 하염없이 높은 플랫폼! 그리고 정적 속에 흐르는 날 선 사운드까지… 게임이 발현할 수 있는 모든 예술적 장치들이 한데 어우러져 초딩의 아드레날린을 극한으로 내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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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데 재미썽!! 

특히 톱니 함정에 내 분신인 왕자가 두 동강 날 때마다 마치 내가 직접 당한 것 같은 아픔(엌!)을 느꼈다. 그때마다 현실비명을 지르다 누나에게 등짝을 후려 맞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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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컹! 소리 안 지를 수 있겠어? 

레벨을 하나하나 헤쳐 나갈수록 긴장감이 이완되긴커녕 오히려 공포는 더해져 갔다. 개인적으로는 그 정점에 이른 것은 ‘쉐도우맨’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거울 앞에 멈추어 섰을 땐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까지 온 길로 되돌아갈 수는 없고 분명 거울을 뚫고 지나가라는 (사악한) 게임 제작자의 의도임을 알 수 있었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shadowman

뙇! 거울이라니!? 

거울이라는 오브제가 주는 공포감은 물론이고 거울을 통과 한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거다. 그렇게 거울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었다. (나중엔 아무렇지도 않게 수없이 뛰어들었지만)

기괴한 발상이었다. 거울 안으로 뛰어 들자 내 캐릭터의 또다른 자아가 그림자가 되어 반대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shadowman2

저 녀석은 어디로 간 걸까? 

이렇듯 페르시아의 왕자는 당시로는 다소 파격적인 영화적 장치들을 게임 곳곳에 심어놓았다. 레벨 7을 깬 후 나오는 연출씬에서 공주가 보낸 생쥐가 다음 레벨 플레이에 연동되어 주인공을 도와준다거나, 자신의 사악한 자아인 쉐도우맨을 물리치면 그와 결합해서 더 큰 힘을 얻게 되는 것 등이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기법은 영화감독이자 각본가를 꿈꾸던 25세 청년 조던 메크너가 있었기에 실현 가능했다. 그가 처음 개발에 착수한 나이는 무려 21세였다.

이 젊은 천재는 프로그래밍, 퍼블리싱, 기획, 연출, 애니메이션까지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했다. 여기서 될성 부른 나무의 떡잎 시절 사진 한 장 보고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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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 희망이요? 성공한 덕후가 될래요

재미있는 것은 게임 제작에 가족의 노동력을 아낌없이 투입했다는 점이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캐릭터 애니매이션은 그의 동생 데이비드 메크너를 굴려 가며(?) 촬영한 영상을 한땀 한땀 로토스코핑하여 탄생되었고, 게임 BGM은 작곡가인 그의 연로한 아버지를 괴롭혀 탄생한 결과물이다.

03

동생을 갈아넣는 현장.jpg 

페르시아의 왕자에 대한 기억은 쉐도우맨을 클리어한 이후로 그리 뚜렷하지는 않다. 고작 60분인 저주를 깨기 위해 수개월간 수백 번을 도전한 끝에 난관을 해쳐 결국 공주를 품에 안았다. (난 ‘게임신경’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보다 끝판을 깨는 데 더 오래 걸렸던 것 같다.)

이제는 고전게임이 된 페르시아의 왕자는 수많은 시리즈를 배출하며 여전히 위용을 뽐내고 있다. 게임 ‘어쌔신 크리드’의 모태가 되기도하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리고 드디어 왕자의 이야기는 조던 메크너 각본에 의해 2010년 영화로 탄생된다. 페르시아의 왕자는 각기 다른 매체라 여겨지던 영화와 게임이 연동되어 하나로 통합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선구자와도 같은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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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페르시아의 왕자>

조던 메크너는 무려 25년 전에 이미 게임이라는 장르가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예술 매체와 한데 어우러졌을 때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는 더 높은 도약을 위해 고민하는 우리 게임이 현시점에서 교두보로 삼아야 할 방향이지 않을까.

어쨌든, 페르시아의 왕자는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 사는 한 소년의 인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학원 형아가 구워 준 게임에 푹 빠졌던 초딩은 게임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키워 결국 이렇게 컷씬 아티스트가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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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조던 메크너 개인 블로그와 개발기를 책으로 펴낸 <페르시아의 왕자 : 조던 메크너의 게임 개발일지 1985~1993>를 추천한다. 페르시아 왕자 개발일지인데 힘들다고 찡찡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즐거움을 느끼며 페르시아의 왕자를 완성시켜 나갔던 패기 넘치는 젊은 조던 메크너를 만날 수 있다.

ending

마무리는 감격의 와락! 엔딩샷으로 

*페르시아의 왕자를 웹 시뮬레이터에서 플레이하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김종빈

김종빈

게임에 매료돼 게임 회사에 입사.
블소 컷신을 비롯해
엔씨의 게임 영상을 만드는 컷신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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