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10 내 인생의 게임

내 인생의 게임 #10 슈퍼로봇대전

게임회사 사람들이 꼽는 ‘내 인생의 게임’은 무엇일까요?

내 인생의 게임, 이번엔 91년부터 수많은 시리즈를 배출한 전략 시뮬레이션이자 어릴 적 로봇 애니메이션의 세례를 받았던 게이머들의 로망(!)인 ‘슈퍼로봇대전’을 소개할까 합니다.

로봇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을 게임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슈퍼로봇대전에 얽힌 추억담을 LE개발실 이정현 과장이 전합니다.


어린 시절, 제 방에 놓인 컴퓨터로 게임을 하는 걸 썩 좋아하시지 않았던 부모님께서는 차라리 게임하는 상황을 통제하기 쉬운(…) TV에 연결하는 게임기를 사주셨습니다. (컴퓨터로는 놀지 말고 공부에 전념하라 는 깊은 뜻이 있으셨던 것 같은데, 그 덕분인지 지금은 프로그래밍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닌텐도 패미컴, 슈퍼패미컴을 현역으로 굴릴 수 있었지만 게임은 용돈을 한푼 두푼 모아서 사야 했지요.

5천 원이라도 싸게 사겠다고 용산 전자상가를 몇 시간이고 돌아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그런 와중에 복사 팩으로 뒤통수를 몇 번 맞기도 했죠(코 묻은 돈 몇 푼 벌겠다고 사기쳤던 사기꾼들 잘먹고 잘사는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MBC 뉴스 화면 _ 중고생이 털린다

저도 그중에 한명이었지 말입니다


용던을 돌던 어느 날, 게임샵에서 우연히 본 ‘슈퍼로봇대전’이라는 게임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사게 됩니다. 메인에 있는 게 건담이라는 건 알고 있었고, 비디오로 봤던 기억이 있는 마징가, 카루타(단쿠가)가 있네? 하는 정도였죠.

‘슈퍼로봇대전’

너와의 만남은 우연, 아니 운명 ( ͡° ͜ʖ ͡°)~♡


로봇들이 잔뜩 나오니 뭔가 시원하게 치고 받는 화끈한 액션 게임일 거야 ^o^ 하는 생각에 즐겁게 귀가를 했죠. 사실 이전까지 즐겼던 게임들은 보통 오락실에서 즐길 수 있는 대전 격투, 슈팅, 액션 게임이 전부였으니까요.

막상 집에 와서 게임을 틀어보니 읽지도 못할 일본어만 잔뜩 나오고 한참을 지나 드디어 뭔가 해볼까 싶었더니 지도만 딸랑 나오는, 지금까지 해봤던 게임들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슈퍼로봇대전’ 게임 속 화면

이…이게 뭐야  ( ゚Д゚)y─┛~~


이게 대체 뭐지? 내가 진짜 게임을 사온 건가? 잘못된 투자(ㅠ_ㅜ)를 했구나, 큰일났구나 싶어서 울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게임 챔프>라는 잡지를 보면 게임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알려주는 공략(!!!)이라는 게 있다고 하더군요. 책을 빌려다가 눈이 빠질 것처럼 들여다보며 게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챔프

게임챔프는 사랑입니다


비싼 돈 들였으니 어떻게든 뽕을 뽑아야겠다(!)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처음의 지루함을 버텨내고 게임을 하면 할수록 너무 즐겁더군요! 빠른 상황 판단과 수 싸움이 동반되는 플레이에 약했던 저로서는 느긋하게 머리를 굴려가며 할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았습니다.

팀의 전력을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 최소 자원으로 최대 효율을 얻기 위한 전술적 선택, 파일럿/유닛의 집중 육성 등등…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 두 세 시간씩 즐겁게 플레이를 했습니다.

하면 할수록 재미가 더해져서 감격 *ㅁ*

하면 할수록 재미가 더해져서 감격 *ㅁ*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지형 효과라든가 캐릭터/유닛 별 상성 같은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그냥 똑똑한 척 했던 꼬맹이였을 뿐 …

나름 게임을 열심히 즐겼지만 후반부 그 유명한 ‘영광의 낙일’을 클리어하지 못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ㅜ_ㅜ

어렵기로 소문났던 영광의 낙일 

어렵기로 소문났던 영광의 낙일


이후 발매된 슈퍼로봇대전 새턴용 F, F 완결편은 90년대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신세기 에반게리온, 신기동전기 건담W, 기동무투전 G건담 등의 독특한 분위기가 어우러져 당시 중2병 만렙을 찍던 저와 제 친구들이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PC 통신 서버에) 수많은 흑역사를 남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누구나 이 파란 화면에 흑역사 하나쯤은 남겼잖아요?

누구나 이 파란 화면에 흑역사 하나쯤은 남겼잖아요?


여담이지만 당시 방배동에 위치한 ‘나우 오프라인’에서 열린 각종 소모임과  애니메이션상영회에 참석하며 풍요로운 덕후 생활을 즐겼는데, 그때 디지털 카메라와 구글이 존재하지 않았던 사실이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입니다…

어허..다행이다 짤

하마터면 이불킥할 뻔


슈퍼로봇대전의 특징을 좀 짚어 볼까요? 전형적인 형태의 전략 시뮬레이션을 기본으로 하지만, 작품에 참여하는 원작들의 인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시리즈이다 보니 캐릭터의 고유한 특성을 반영한 시스템이 눈에 띕니다.

캐릭터는 각각 고유한 ‘정신 커맨드’와 ‘특수 능력’이 있는데, 이는 전투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키기 위한 일시적인 초능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적의 공격을  피하거나, 공격력을 두 배 올리는 등의 효과를 발동시키는 정신 커맨드는 사용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지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정신커맨드를 잘 활용하는 게 관건

정신커맨드를 잘 활용하는 게 관건


특수 능력은 파일럿과 유닛의 능력치에 영향을 주는 일종의 패시브 스킬이라 할 수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는 건담에 참전하는 파일럿들 중 일부가 가진 ‘뉴타입’을 꼽을 수 있겠군요.

원작에서 지온 줌 다이쿤이 이야기하는 복잡한 내용은 사실 잘 모르겠고, 게임 내에서는 혼자서 수십 명의 적을 쓸어버릴 수 있는 슈퍼맨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에바의 파일럿들은 기체의 HP가 0이 되면 폭주(…)하며 제어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적이고 아군이고 두들겨 패고 다녀서 고생 좀 했죠.

아,아군은 패지 말라고! 

아,아군은 패지 말라고!


또한 게임을 하면서 얻게 되는 자원을 통해 기체를 개조할 수 있습니다. 무기의 공격력을 높이거나 기체의 성능(방어, 명중, 회피 등)을 높일 수 있는데, 플레이어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투자가 가능합니다.

보통 에이스 파일럿들의 기체 위주로 투자를 했는데, 반대로 약한 파일럿 위주로 개조하거나 전혀 개조를 하지 않는 식으로 플레이어의 입맛에 맞게 게임 난이도를 스스로 조절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팔다리에 모래 주머니를 달고 싸우는 만화 주인공처럼 일부러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나가는 재미를 주는 거죠.

시리즈가 오랫동안 인기를 얻다 보니 팬들도 함께 나이 들어가고, 덕력이 쌓이면서 일부 유저들은  밸런스를 직접 조절한 버전을 제작하기도 했고, 비공식적이지만 한글 패치를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어 압박인 분들을 위한 비공식 한글화 버전

일본어 압박인 분들을 위한 비공식 한글화 버전


이후에 출시된 슈퍼로봇대전 시리즈는 전투 연출이 더욱 화려해지고 볼거리도 많아졌지만 예전만큼 활발히 즐기지는 못했습니다.

최근 발매한 슈퍼로봇대전 OG 문 드웰러즈는 시리즈 최초로 발매된 한글판이라는 점 때문에 의리(!)로 구매해서 천천히 즐기고 있지만 시스템이 워낙 많이 달라져서 솔직히 적응하는 게 쉽진 않더군요.

2016년 (드디어) 한글판 출시

2016년 (드디어) 한글판 출시


건담과 마징가가 같은 작품에 등장한다면 어떨까? 라는 조금은 유치한 질문에서 시작되었을 게임이 20년 넘는 시간 동안 성장해서 이제는 시리즈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IP가 되었습니다.

건담과 마징가가 같은 작품에 등장한다면 어떨까? 라는 조금은 유치한 질문에서 시작되었을 게임이 20년 넘는 시간 동안 성장해서 이제는 시리즈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IP가 되었습니다.

유치하면 어떤가요? 게임이야 재미있으면 그만이고 내가 좋아하는 작품의 주인공에 감정 이입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본격적인 이쪽 세계(?) 입문의 계기가 되었던 바로 그 게임. 내 인생의 게임으로 뽑을 수 밖에 없는 게임, 슈퍼로봇대전입니다 : )


이정현

이정현

주말에 홀로 쓸쓸히 게임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회사 생활 5년 차의 독거 노인 (예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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