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19 내 인생의 게임

내 인생의 게임 #8 스타크래프트

게임회사 사람들이 꼽는 ‘내 인생의 게임’은 무엇일까요?

내 인생의 게임, 이번엔  한국 게임사에 가장 큰 획을 그은  전략 시뮬레이션의 걸작(!)  ‘스타크래프트’를 소개할까 합니다.

3종족 시스템의 절묘한 밸런싱, 흥미진진한 스토리, 셀 수 없이 많은 전술로 수많은 게이머들을 사로잡았던 스타크래프트. 이 게임에 10대 시절을 바친 LE Camp 김정훈 대리의 사연을 만나 보시죠!  ( ͡° ͜ʖ ͡°)



당구장에서 PC방으로

때는 1998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필자의 일상은 늘 똑같았다. 수업이 끝나면 무조건 학교 근처 당구장으로 친구들과 함께 쏜살같이 달려가기.

모두함께

모두가 한마음이었던 그때 그 시절

그러다 스타크래프트1이 출시되면서 필자의 일상도 바뀌고 고딩들의 놀이 문화에도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스타크래프트가 순식간에 너도하고 나도하고 우리 모두 즐기는 국민게임으로 자리잡으면서(*당시 남자 재수생들이 엄청 늘었다는 후문이…), 학교 앞에 PC방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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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고 특이한  PC방 이름도 많았죠 ㅋㅋ

먼저 스타크래프트를 해 본 친구들 덕에 게임이 재미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반 전체로 퍼졌다. 필자도 집에서 플레이를 좀 해봤지만 이미  C&C와 워크래프트를 해 봤기에 스타크래프트가 그닥 흥미롭진 않았다. 그래서 금방 시들해지고만 게 사실.

어찌 잊을쏘냐…스타크래프트 메인 테마 BGM 

그러다가 함께 당구장에 다니던 친구들 손에 이끌려 처음 가본 PC방에서, 필자는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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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선 너와 나, 그리고 게임 뿐 

혼자 하니 별 재미없던 게임이 함께 하니 넘나 재밌는 것이었다!  (*´ω` *) 그렇게 스타크래프트는 즐기기 힘든 게임에서 잘하고 싶은 게임이 되었다. 그리고…필자의 삶을 바꾼 ‘내 인생의 게임’이 되었다.


레이스와 리버, 그리고 무한 아이스헌터

그때부터 우리는 하교 시간만을 기다렸다. 수업을 마치면 너나할 것 없이 삼삼오오 모여 PC방으로 직행했다.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친구들과 함께 스타크래프트를 할 때가 가장 즐거웠던 것 같다. 함께 있을 때 우린 두려울 게(=지루할 틈이) 없었다.

GG

수업 끝났다 얼른 PC방으로 고고!

학교 근처에 PC방들이 우르르 생겨나긴 했지만 당시 스타크래프트를 하러 온 남학생들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학교 앞을 벗어나 근처 시장 구석에 자리한 허름한 PC방까지 진출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당시 우리는 스타크래프트를 정말 잘하고만(!) 싶었던 그냥 쭈구리 초보였던지라 보통 3대 3으로 우리끼리 편을 나눠서 게임을 시작했다.

하지만 실력이 다 똑같은 건 아니었다. 다같이 시작했어도 빠릿빠릿하게 적응을 잘하는 친구와 그렇지 않은 친구가 있었다.

“예썰! 오더썰! 

레이스를 클로킹하고 시즈모드가 된 시즈탱크를 유유히 부수면서 “도대체 투명한 건 어떻게 없애는 거야? 투명한 건 어떤 유닛이야?”라는 외침에 절대 가르쳐주지 않고 혼자 씩 웃는 녀석,  리버를 잔뜩 뽑아서 미네랄로 데리고 가놓고는“왜 미네랄을 캐지 않는 거야? 공격 안 하는 유닛이길래 미네랄 캐는 줄 알았는데?” 하며 의아해하며 여전히 못하는 친구.

스타크래프트rts

ㅎ ㅏ…추억돋네영  (´д`、)

30분 노러쉬에 무한 아이스헌터 맵에서 포톤 캐논으로 방어진을 갖추고 아비터와 캐리어 부대를 가지고 한참을 투닥거렸던 일들까지, 돌이켜보면 스타크래프트를 가장 즐겼던 시기였다.

쌈장부터 임요환까지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출시 후 1년이 지나서도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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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후 확장팩 브루드워가 출시되며 더욱 완벽해진 것…! 

타칭 ‘프로게이머’라는 사람들이 등장했고, 당시 최고의 인기 게이머는 ‘쌈장(SSamJang)’이라는 ID를 쓰는 이기석이었다. 약체로 평가되던 테란으로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던 모습은 남학생들 사이에서 많은 화젯거리를 낳았다.

광고에도 등장했던 쌈장 이기석

이때부터 길드와 아이디 만들기가 유행처럼 번져갔다. 로스트템플이나 헌터 같은 맵들을 이용해 반 대항 경기를 했는데, 토너먼트처럼 표를 만들기도 하고 조 추첨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낯 뜨겁지만(…) 그때는 우리 모두 진지했다. 이기기 위한 전략을 짜고 또 게임에 임하면 잔뜩 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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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신으로 공부를 했더라면… (´౪`)

나 역시 스타크래프트을 처음부터 같이했던 친구 6명과 함께 [resto]라는 길드를 만들었고 졸업 후에도 평생 친구들이 되었다. 여담이지만 그때 사용하던 ID를 지금도 모두 게임 계정으로  사용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도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테란의 황제 임요환부터 폭풍 저그 홍진호까지, 프로게이머들의 인기는 날로 높아만 갔다.

GGG

숙명의 라이벌이었던 둘! (하이고야~풋풋하데이~)

드디어 수능이 끝나고, 우리의 일상은 단 하나였다. 매일 아침 친구네 집에 모여서 라면을 먹으며 TV로 이 둘의 경기를 지켜보다가 서로가 평론가인 양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무척 흥분한 상태로 PC방에 가는 것이었다…


군대에서도 내 인생 최고의 게임

영원할 것만 같던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도 어느새 필자와 친구들이 입대를 준비할 즈음 리니지1로 물갈이 되었다.

가끔 점심이나 PC방 요금 내기를 할 때면 어김없이 스타크래프트를 실행시켰지만 이외에는 리니지1을 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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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와 비슷한 시기에 PC방을 점령했던 리니지

그후 디아블로2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하나 둘, 그렇게 군대로 사라졌다.

제대 후에도 WOW나 씰온라인 같은 게임을 곧잘 즐겼지만, 스타크래프트는 가끔 치맥할 때나 나오는 추억거리가 되고 말았다.

각자 이리저리 살다 보니 어느덧 30대 중반의 아재(…)가 되었고, 이제는 다 같이 모이기도 여의치 않을 때가 많아졌다.

SGA

너도 아재냐? 나도 아재다…

우리를 만나게 해주고 단단히 묶어 준 게임, 스타크래프트. 한때를 풍미했던 스타크래프트나 프로게이머들도 이제는 그 존재가 흐릿해졌지만, 좋은 친구들과 많은 추억을 남겨준 스타크래프트는 여전히 내 인생 최고의 게임이다.

12당시 친구가 그려준 resto 길드원들의 캐리커처


김정훈

김정훈

LE Camp에서 몬스터를 깎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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