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7 내 인생의 게임

내 인생의 게임 #11 풋볼 매니저

게임회사 사람들이 꼽는 ‘내 인생의 게임’은 무엇일까요?

내 인생의 게임, 이번 시간에는 실제 데이터를 근거로 한 시뮬레이션 게임이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가 없어 이른바 악마의 게임(!)으로 불리는  ‘풋볼 매니저’를 소개할까 합니다.

군 복무 시절, 풋볼 매니저를 하느라 휴가 기간의 기억이 전혀 없다(…)는 GI실 심재민 과장의 생생한 추억담을 전합니다.


내 인생의 게임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꽤 오랜 고민의 시간을 거쳐야 했습니다.

녹색 화면에서 플레이했던 비행기 게임, 친구 집에만 있던 패미컴으로 신세계를 경험했던 슈퍼마리오, 세뱃돈 모아 난생 처음 구입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잠시나마 교통 공학에 관심을 갖게 해 준 트랜스포트 타이쿤까지…

제 인생에 영향을 미친 무수히 많은 게임들이 앞다투어 “저요, 저요!” 하고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죠.

픽미 픽미 픽미업~ ♪  이렇듯 수많은 게임들이 픽미를 외쳤지만!

픽미 픽미 픽미업~ ♪ 이렇듯 수많은 게임들이 픽미를 외쳤지만!


수많은 게임들이 머릿속을 지나쳐 갈 때, 분류 자체가 힘든 게임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인생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닌, 인생 그 자체(!)였던 그것!!

이름만 말하면 누구나 수긍할 정도로, ‘내 인생의 게임’으로 꼽기에 가장 적절하면서도 왠지 부끄러운(^_ㅠ)  바로 그 게임! 그것은 ‘풋볼 매니저’였습니다.

적확한 선택이지만 눈물이 나는 건 왜일까..._마음의 소리

적확한 선택이지만 눈물이 나는 건 왜일까…


풋볼 매니저(이하 ‘FM’)는 말 그대로 축구팀의 감독이 되어 팀을 이끄는 게임입니다.

단순한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보이지만 ‘문명’ 시리즈,  ‘히어로 오브 마이트앤 매직’ 시리즈와 더불어 3대 악마의 게임으로 불릴 만큼 엄청난 몰입감을 지닌 것으로 유명합니다.

심지어 영국 법원에서는 남편이 이 게임에 빠져 가정에 소홀한 것이 합당한 이혼 사유라고 판결해서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죠.

영국에서는 이 게임으로 인한 이혼 사례가 35건이나 된다고 합니다 #지못미 

영국에서는 이 게임으로 인한 이혼 사례가 35건이나 된다고 합니다 #지못미


군 입대를 한 달 남짓 앞둔, 소위 말해 만사에 의욕이 없던 시절,  친구가 FM이라는 게임을 소개해 주더군요.

축구를 좋아하면 한번 해 보라는 가벼운 제안과 함께, 중독성이 강하니 조심하라는 얘기도 보험 약관처럼 덧붙이긴 했습니다.

축구 게임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저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중독성이 강해봤지 입대하면 끊을 수 밖에 없을 텐데 하는 생각으로 매니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씁니다.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짤

그 친구의 속마음 #나쁜X #내인생책임져


FM을 처음 접할 당시에는 마냥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신인 감독인 플레이어를 보드진이 반갑게 반겨주는 한편, 언론은 반신반의하며 기사를 쏟아냈죠.

새로운 감독에게 잘 보이려는 선수와 전임 감독을 그리워하는 선수들이 공존하는 걸 보고 있자니, 정말 축구계에 입성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매불망 그리던 축구계에 드디어 입 to the 성 

오매불망 그리던 축구계에 드디어 입 to the 성


그런데 선수 파악을 마치고 마음에 드는 선발 라인업을 조직해서 첫 경기를 치르는 순간, 신기함은 당혹스러움으로 바뀌었습니다.

유니폼 색의 동그라미들이 녹색 박스 위에서 공이 아닌, 원을 붙들고 움직이는 모습이 충격 그 자체였기 때문이죠.

옆 동네 축구 게임들은 누가 더 실제 같네 하는 싸움을 벌이고 있는 마당에 10년 전 그래픽이라니!! 이건 내가 아는 축구 게임이 아니야!! 하고 경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조금만 지나면 이것이 리얼리즘의 극치임을 알게 됩니다 

조금만 지나면 이것이 리얼리즘의 극치임을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더 이상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축구의 세계이자 인생의 축소판이었죠.

한 팀의 리더로서의 인생이 펼쳐졌습니다. 라이벌 경기가 있기 며칠 전부터 상대 팀의 선수들의 최근 컨디션을 살피고 그에 맞는 대응 전략을 구축합니다.

상대 팀의 사기를 꺾기 위해 상대 감독에게 독설을 날립니다. 안타깝게도 상대 팀 선수들이 제 말에 발끈해 투혼을 불사르네요. 경기 당일, 주장을 불러 한 마디 합니다. 어렵겠지만 잘 해내자!

감독의 카리스마 있는 한 마디면 경기가 뒤집어질 줄 알았거늘...

감독의 카리스마 있는 한 마디면 경기가 뒤집어질 줄 알았거늘…


선수들이 실수를 연발해 골을 허용하게 되고, 점점 우리팀이 밀리는 분위기가 되어갑니다. 하프 타임 때 전술을 바꾸고 선수들을 불러 모아 또 한 마디 합니다. 잘 하고 있어, 모든 것은 계획대로야!

그러자 기적처럼 동점골을 뽑아내더니 이윽고 역전으로 경기를 마무리 합니다. 리더로서 취했던 선택들이 뿌듯해 지는 순간입니다.

이 맛에 감독 하지 ( ͡° ͜ʖ ͡°)

이 맛에 감독 하지 ( ͡° ͜ʖ ͡°)


축구팀의 감독이지만, 월급쟁이로서의 인생 또한 살아야 했습니다. 이름도 없는 신임 감독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죠.

얼마 되지 않는 예산으로 2부 리그에서 중위권을 유지하며 새내기 타이틀을 떼어 냈고, 기적적으로 1부 리그로 승격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월급 생활자의 삶이란...

월급 생활자의 삶이란…


1부 리그의 상위권 팀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지만 정든 선수들도 있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한 시즌 더 머뭅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2부 리그로 강등되면서 지난 선택을 후회하게 됩니다. 짠돌이 구단주를 탓하며 예산이  빵빵한 타 리그의 팀으로 적을 옮겨 다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합니다.

편안한 환경에서 더 나은 대접을 받으며 온전히 원하는 목표에 집중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켜 나갑니다.

하지만 구단주가 되지 않는 이상 반복되는 현실

하지만 구단주가 되지 않는 이상 반복되는 현실


이렇듯 새로운 세계에 빠져버린 저를 구원해 준 것은 군대였습니다. 입대와 함께 자연히 FM과 멀어졌고,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되었죠.

그렇게 끝을 냈어야 했는데, 공군이라 휴가가 잦은 게 말썽이었습니다. 입대 후 6개월이 지나자 민간인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영 재미가 시들해졌죠.

때마침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는 꿈같은 일이 벌어지면서, 잠시나마 잊고 있던 축구 감독을 향한 열정(물론 FM)이 되살아 났습니다.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_박지성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


박지성이 중심이 되는 맨유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잠시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 어느덧 제 손에는 새로 출시된 FM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군 휴가는 오롯이 FM 차지가 되었습니다.  한 시즌을 치르고 나니 휴가가 끝나 있었고, 다음 휴가를 나와 이적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니 어느 새 부대로 복귀하는 날의 해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휴가만 나가면 복귀할 시간이 되는, 데자뷰 같은 기이한 현상을 끊임없이 겪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문명하셨습니다

이 상황을 한 줄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다행히도 군 생활과 전역이라는 인생에 몇 없는 매우 특별한 터닝포인트가 있었기에, 무사히(?) FM과 이별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시기에 이 게임을 접했다면? 없는 터닝포인트를 억지로 만들어야만 탈출할 수 있었겠죠. 생각만해도 아찔합니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FM을 한번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면,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단, 당신의 꿈이 축구 감독이라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FM을 즐겨한다는 솔샤르 감독. 당신도 솔샤르처럼 될 수 있다!?

FM을 즐겨한다는 솔샤르 감독. 당신도 솔샤르처럼 될 수 있다!?


심재민

심재민

짧고 이해하기 쉬운 코드를 만들고 싶은 프로그래머이자
스스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은 게임 개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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