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08 내 인생의 게임

내 인생의 게임 #33 프론트 미션 3

게임 회사 사람들이 꼽는 ‘내 인생의 게임’은 무엇일까요? ( ͡° ͜ʖ ͡°)

게임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적절한 리얼리티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프론트 미션 3’를 박지균 님이 소개합니다! ٩(๑•̀o•́๑)


내 인생의 게임 #33 프론트 미션 3


90
년대 후반 게임계, 갓겜만이 살아남는다.

90년대 후반 플레이스테이션 말기는 JRPG (Japanese Role-Playing Game, 일본에서 제작된 RPG)의 절정기와도 같았습니다. 일본 내 시리즈 최다 판매량을 자랑하는 <파이널 판타지8>이 출시된 시기였고, <베이그란트 스토리>, <크로노 크로스>, <드래곤 퀘스트7> 등 RPG장르뿐만 아니라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게임들이 나오던, 그야말로 갓겜이 아니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던 게임계의 춘추전국시대와도 같았습니다. 아, 바로 리니지가 출시한 시기이기도 했죠.

망겜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던 시대, 갓겜만이 살아남는다!

망겜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던 시대, 갓겜만이 살아남는다!


하지만 저는 지금 이런 명작들의 당연한 우수성을 알리고 진부한 찬사를 올리려고 자판을 치는 것이 아닙니다. 1995년 슈퍼패미콤용 SRPG 게임(‘시뮬레이션+RPG’ 의 합성어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세 번째 시리즈로 출시되어 90년대 후반 게임계의 전란 속에서도 대중성보다는 사실성과 참신함을 추구했던 게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게임은 후기의 게임들이 선보였던 요소를 누구보다도 일찍 발견하기도 했었지요.

바로 ‘프론트 미션 3′입니다.

프론트 미션 3 CD

안녕하신가! 힘세고 강한 아침, 만일 내게 물어보면 나는 전방 전도단 세 번째


프론트 미션 시리즈란?

게임을 소개 하기에 앞서 시리즈를 먼저 간략하게 소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프론트 미션 시리즈>는 1995년 슈퍼패미콤에서 처음으로 출시한 SRPG 장르인 스퀘어 에닉스의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반처 (Wander Panzer, 독일어로 보행전차)라 불리우는 2족 보행 메카닉이 등장하며 근미래 세계관의 전쟁을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프론트 미션 시리즈란?

우리 중 스파이가 하나 있는 것 같아. 쉿 조용;


스퀘어 에닉스의 간판 브랜드는 아니지만 1995년 프론트 미션 시리즈의 첫 번째 타이틀인 <프론트 미션1> 부터 현재 개발중인 <LEFT ALIVE>까지 20년이 넘도록 스무 작품 넘게 게임, 코믹스 등 여러 장르로 변형되며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프론트 미션 시리즈 중에는 망작도, 평작도, 걸작도 있지요. 고맙게도 스퀘어 에닉스는 시리즈를 끝내지 않고 꾸준히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프론트 미션 시리즈 중에는 망작도, 평작도, 걸작도 있지요.
고맙게도 스퀘어 에닉스는 시리즈를 끝내지 않고 꾸준히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프론트 미션 시리즈는 첫 작품에서부터 독특함을 보여주는데요, 바로 4부위로 나뉘어진 HP 게이지입니다. 몸통, 왼팔, 오른팔, 다리의 4부위로 나뉘어진 HP는 몸통만 파괴되지 않으면 죽지 않는 시스템으로 첫 작품부터 굉장히 리얼함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HP 게이지가 몸통, 왼팔, 오른팔, 다리로 나뉘어진 프론트 미션 시리즈 진심 펀치 한방을 날리는 모습의 스크린샷은 <프론트 미션 4> 입니다.

HP 게이지가 몸통, 왼팔, 오른팔, 다리로 나뉘어진 프론트 미션 시리즈
진심 펀치 한방을 날리는 모습의 스크린샷은 <프론트 미션 4> 입니다.


왼팔이나 오른팔이 파괴되면 파괴된 방향의 팔에 달린 장비 사용이 불가하고, 다리가 파괴되면 1칸만 이동이 가능한 방식입니다. 게다가 사용하는 무기가 몇 발의 탄약을 발사하는지에 따라 각 총알의 명중률이 달라지기에 전탄의 데미지가 한 부위에 집중될 수도 있고 분산될 수도 있습니다. 근접 무기는 강하지만 공격 횟수가 단 한번이라 이 한방이 몸통에 박히면 원펀맨이 될 수도 있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현실감을 부여했습니다.

그 외에도 <아머드 코어>보다 먼저 선보인 부위별 커스터 마이징 시스템도 있는데요,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프론트 미션 시리즈는 사용자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요소에는 현실감을 추구하는 게임이었다는 것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
프론트 미션3>가 특별했던 이유, 리얼리티

그러면 이제 게임을 구동시켜 볼까요?

이제는 용산 두꺼비 던전 어딘가에 박혀있을 만한 이 게임을 찾아 빛 바랜 PS1에서 구동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니 한국 PSN 클래식 게임에서 찾거나 에뮬에서 구동시켜 보지요.

뜻 모를 오프닝을 거쳐 RPG의 시작 관문인 주인공 이름 짓기를 끝내고 튜토리얼 전투를 한탕 떄리면 NPC들이 쏼라쏼라 하는 길고 지루한 대화가 시작됩니다.

22세기에도 야근…야근은 변하지 않는다. OTL…

22세기에도 야근…야근은 변하지 않는다. OTL…

스샷은 영문판이긴 하지만 꼬부랑 일본어 모를땐 무조건 あああ로 지었죠.

스샷은 영문판이긴 하지만 꼬부랑 일본어 모를땐 무조건 あああ로 지었죠.


보통 이런 지루한 NPC들의 대화는 O키를 연타하며 넘겨지기 일쑤이지만, <프론트 미션 3>는 다릅니다. 바로 이런 장르에는 생소한 NETWORK 라는 메뉴 덕분이죠.

모뎀조차 장착되지 않던 PS1에 왠 네트워크??

모뎀조차 장착되지 않던 PS1에 왠 네트워크??


네, 맞습니다. 바로 이것이 히트작이 아님에도 제가 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게임적 쇼크. 99년도 게임을 ‘내 인생의 게임’에 소개해야 했던 이유입니다.

<프론트 미션 3>의 네트워크는 강려크한 쇼크를 선사했습니다.

<프론트 미션 3>의 네트워크는 강려크한 쇼크를 선사했습니다.


일반적인 SRPG장르에서 NPC와의 상호작용으로 세계관과 스토리 정보를 얻는 방식은 매우 제한적이고 단순합니다. 커서나 캐릭터를 움직여 NPC를 선택해서 대화를 하고 글을 읽고, 퀘스트가 있으면 대화가 바뀌면서 ‘퀘스트 완료’이거나 아니거나 또는 퀘스트를 받거나. 좀더 나아가면 선택지가 있겠죠.

기본적인 RPG게임의 대화 방식이 가지는 고질적인 문제 ‘지루함’ – 중요하지 않은 시덥잖은 대화만 오고 가서 괜히 패드에 북두연타권을 시전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겁니다.

기본적인 RPG게임의 대화 방식이 가지는 고질적인 문제 ‘지루함’ – 중요하지 않은 시덥잖은 대화만 오고 가서 괜히 패드에 북두연타권을 시전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게임은 단순한 텍스트 출력과 버튼 연타에 불과할 수도 있는 과정을 ‘게임 안에 가상으로OS와 네트워크를 구현하여 이메일을 주고 받고 웹 사이트 주소를 찾아 다니게 한다’ 라는 전혀 새로운 개념으로 풀어버립니다.

이메일 계정 생성 시 흔히 볼 수 있는 안내 메일부터 시작하는 세심한 디테일 ٩◔̯◔۶

이메일 계정 생성 시 흔히 볼 수 있는 안내 메일부터 시작하는 세심한 디테일 ٩◔̯◔۶

메일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메일을 보내는 것도 가능합니다. (물론 내가 원하는대로 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긴 합니다.)

메일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메일을 보내는 것도 가능합니다.
(물론 내가 원하는대로 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긴 합니다.)


이러한 네트워킹 시스템은 <GTA 5>에서 선보인 스마트폰으로 웹서핑과 상품 구입을 하는 것보다 10년은 먼저 적용된 셈이죠.

스마트폰을 활용해서 게임 속에 네트워크 개념을 도입한 <GTA 5>

스마트폰을 활용해서 게임 속에 네트워크 개념을 도입한 <GTA 5>


현실감 넘치는 가상 네트워크

네트워크에서 할 수 있는 행동들은 현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정부 청사나 회사 소개 사이트에 들어가 단순하게 세계관 정보를 보는 것도 있지만 특정 보안 사이트는 ID와 패스워드를 요구하기도 하고 이 ID와 패스워드는 스토리 진행에 따라 이메일로 받기도 하고. 어떤 딥 웹(deep web, 일반적인 포털사이트 사이트에서 검색되지 않는 인터넷 공가) 해당 정보가 담긴 파일을 다운 받기도 하죠.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프론트 미션 3> 속 네트워크. 한국으로 치면 네이버 뉴스 열람 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프론트 미션 3> 속 네트워크.
한국으로 치면 네이버 뉴스 열람 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심지어 로그인 패드워드가 필요한 사이트도 존재합니다.

 

심지어 로그인 패드워드가 필요한 사이트도 존재합니다.


최근 인디 게임에서 볼 수 있었던 게임 내 가상OS에 대한 아이디어도 이미 99년에 시도되고 있었습니다.

게임 내 가상 OS와 유사하거나 같은 개념을 채용하고 있는 애들 보다 먼저 나왔다는 것! (좌측부터 <레플리카>, <아날로그:헤이트>, <창세기전 파트2>, <핵넷>

게임 내 가상 OS와 유사하거나 같은 개념을 채용하고 있는 애들 보다 먼저 나왔다는 것!
(좌측부터 <레플리카>, <아날로그:헤이트>, <창세기전 파트2>, <핵넷>


웹에서 다운받는 파일이 경험치 노가다를 할 수 있는 시뮬레이터 맵을 추가해 주기도 하죠. 심지어 OS의 배경 화면을 바꾸는 기능도 있고, 암호의 힌트가 적혀있는 그림 파일도 있고 보안으로 잠겨있어 열 수 없는 파일을 크랙킹 해주는 프로그램을 다운받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아이템을 얻기도 하구요. 흔히 어떠 어떠한 퀘스트를 수행하면 보상을 준다는 일체의 UI나 정보 없이도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암호 이미지를 열기 위해선 해커와의 이메일 대화를 통해 그래픽 해독 프로그램을 파는 사이트를 알아내야 하고, 프로그램을 구입, 설치를 한 후 해독을 해야 합니다. 묘하게 현실적인 과정이지요.

이런 암호 이미지를 열기 위해선 해커와의 이메일 대화를 통해 그래픽 해독 프로그램을 파는 사이트를 알아내야 하고, 프로그램을 구입, 설치를 한 후 해독을 해야 합니다. 묘하게 현실적인 과정이지요.


또한 이런 웹사이트들은 스토리 진행과도 연결되어 있어서 주인공들이 벌인 사건으로 웹사이트에 게시되어 있는 뉴스가 추가되기도 하고 변하기도 합니다. 3개 연합국가 사이에 신무기와 관련된 음모에 빠져 본국에서 도망자 신세가 되는 테크노스릴러 스토리와 함께 국가들의 정보은폐 속에서 전쟁 촉발을 막아야만 하는 주인공 일행의 사투가 벌어집니다.

경시청 수배 사이트, 게임 진행에 따라 주인공 얼굴과 이름이 공지되기도 합니다.

경시청 수배 사이트, 게임 진행에 따라 주인공 얼굴과 이름이 공지되기도 합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웹사이트의 국제정세는 어디까지나 정해져 있는 연출적인 내용이지만 거창한 연출 없이도 플레이어가 세계관에 개입되어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다는 현실감을 부여하는데 충분한 장치입니다.

전 세계 인터넷 망을 비주얼로 보여주는 UI도 현실감에 한몫 합니다.

전 세계 인터넷 망을 비주얼로 보여주는 UI도 현실감에 한몫 합니다.


덕분에 스토리 전투를 하는 시간보다 이런 네트워크에서 정보수집과 아이템과 프로그램을 얻는데 시간을 더 할애하게 되기도 했었죠.


특유의 리얼리티는 전투에서도

체력 게이지를 보면 또 하나 독특한 부분이 있는데요. 바로 파일럿의 체력이 따로 있는 부분입니다. 깡통만한 콕핏(Cockpit, 조종실)에서 고분분투하며 싸우는 것을 표현하듯 반쳐에 타고 있다고 파일럿의 신체가 무적이 아닙니다. 스킬이나 확률로 인해서 파일럿이 기절을 하기도 하고 피해를 입기도 하며 기체 충격이나 고열로 파일럿이 강제 사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뚝배기만한 탄환을 사람에게 쏘면… 온가족의 PS는 이런 거 일일이 표현하면 안되요…

뚝배기만한 탄환을 사람에게 쏘면… 온가족의 PS는 이런 거 일일이 표현하면 안되요…


적 파일럿을 강제 사출시킨 후 파일럿을 사살하면 알맹이만 쏙 빼먹듯(…)처리가 가능합니다. 이러면 필드에는 탑승자가 없는 빈 반쳐만 남죠. 전투 종료 후에 노획된 반쳐는 팔아먹든가 분해해서 아군이 사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실제 전장에서도 전차나 헬기가 파일럿의 상태로 인해 영향 받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현실적인 시스템이죠.

설명충은 여기까지, 이 이상은 게임을 직접 해보시는걸 권장합니다. ╰(°ㅂ°)╯

설명충은 여기까지, 이 이상은 게임을 직접 해보시는걸 권장합니다. ╰(°ㅂ°)╯


게임과 리얼리티

로봇의 최종 목표가 인간과 가까워 지는 것이라면 1962년 최초의 게임부터 현재의 VR 게임에 이르기까지 게임의 최종 목표는 현실에 가까워지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최악의 게임은 현실 온라인, 리얼리티는 적당히…

최악의 게임은 현실 온라인, 리얼리티는 적당히…


하지만 지금의 게임기술력에서 리얼리티는 양날의 검과도 같아서 게임이 지나치게 리얼하면 불편함 투성이가 되어 재미가 없어지지만 적절한 현실성은 신선함을 줍니다.

<프론트 미션 3>는 문화계에도 영향을 미쳤는데요, 한국에 네트워크가 급격히 발전하던 시기에 게임 안 세계에서 세심하게 짜여진 가상 인터넷을 하던 체험은 이후에도 사이버 펑크나 테크노 스릴러 관련 작품 세계가 더 넓고 깊어지는 결과를 낳았죠.

설득력 없는 설득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프론트 미션3>는 대중적 게임은 아니었던 만큼 누구에게나 재미있는 게임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게이머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선에서 리얼리티의 추구가 어떻게 게임을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이 있다면 바로 이 게임은 명답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미 알고 계셨던 분들에겐 재정리, 모르셨던 분들에겐 겜지식에 도움이 되셨길 빕니다.

 이미 알고 계셨던 분들에겐 재정리, 모르셨던 분들에겐 겜지식에 도움이 되셨길 빕니다.


박지균

박지균

손가락을 마음대로 컨트롤하기 시작할 때
숟가락 쥐는 법보다
게임패드 잡는 법을 먼저 배운 이펙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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