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4 블레이드 & 소울

엔씨소프트의 새로운 도전, 뮤지컬 진서연

숱한 화제를 불러 일으킨 블소 뮤지컬 <묵화마녀 진서연>. 새로운 형식의 공연이니 만큼 공연을 바라보는 시각도 제각각인데요. 이번엔 뮤지컬 전문 리뷰어 김영주 기자의 리뷰를 준비했습니다.

김영주 기자가 바라보는 블소 뮤지컬의 성취와 한계는 무엇일까요?  ( ͡° ͜ʖ ͡°)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RPG 게임을 뮤지컬로 만든다는 야심찬 기획은 이 오래된 난센스 퀴즈를 연상시킨다. 게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다른 차원의 현실 즉, 가상현실의 세계에서 인간의 판타지를 가장 자유롭고 사실적으로 구현해내는 장르이다. 이에 반해 뮤지컬은 지극히 제한된 조건 안에서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상징과 은유를 관객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작품으로 성립될 수 있다. 게임이 인간이 꿈꾸는 판타지를 마법처럼 현실로 만들어주는 장르라면, 뮤지컬은 눈앞에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의 한계를 관객이 상상력으로 채워 넣음으로써 기능하는 판타지인 것이다.

엔씨소프트의 새로운 도전, 뮤지컬 진서연

게임 속 진서연이 무대에 나타난다? 

소설, 영화, 드라마, 만화, 심지어는 코미디 쇼까지 대중문화계의 한다하는 히트작들은 뮤지컬로 재탄생하는 것이 다양한 수순이자 원 소스 멀티 유즈의 기본이 된지 오래이다. 하지만 RPG 게임으로는 그러한 시도가 없었던 것도 두 장르의 명백한 차이 때문일 것이다. 올해 지스타에서 야외 공연으로 엔씨소프트의 히트작 <블레이드 앤 소울>을 원작으로 한 창작뮤지컬 <묵화마녀 진서연>을 초연한다는 소식에 기대와 호기심 못지않게 우려와 불안감이 컸던 것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공연을 보기 전에 작품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확인하면서 주 타깃으로 설정한 관객층이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부터 생겼다. 게임 문외한인 뮤지컬 마니아들에게는 한국 뮤지컬계를 대표하는 베테랑 배우 남경주가 예술감독으로 참여하고 폭발적인 가창력을 자랑하는 리사가 타이틀롤 진서연에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 정도가 <묵화마녀 진서연>에 대해서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요소일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작품에 충성도를 갖고 있는 기존 유저들을 고객으로 생각하는 기획일까. <블레이드 앤 소울>이 최대 동접 25만 명을 기록한 대형히트작이지만 티켓 값을 내고 극장에 와서 공연을 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우비를 입고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들 

우비를 입고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들 

지난 11월 13일 지스타 행사 둘째날, 가을비가 촉촉하게 내리던 영화의 전당 야외 특설무대에서 우비를 입고 5천여 석에 다다르는 좌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 대부분 원작 게임에 애정을 가진 유저들이었다. 거대한 영화의 전당 건물 벽 전체를 커버하는 미디어 파사드에 웅장한 오프닝 영상이 비치고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만으로도 객석에서는 설렘 가득한 탄성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그래픽으로만 접했던 의상과 아이템들이 좀 더 가까운 눈앞의 현실로 움직이는 것에도 반가움과 기쁨이 뒤섞인 반응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플라잉 액션으로 표현한 경공 

플라잉 액션으로 표현한 경공 

하지만 원작 세계관의 시그니쳐라고 할 수 있는 경공을 플라잉 액션으로 표현하고 게임의 스펙터클을 박력 넘치는 군무로 형상화하는 뮤지컬 <묵화마녀 진서연>에 좀체 그치지 않는 비는 방해요소였다. 댄서들을 돕기 위해 깔아놓았던 댄스플로어가 물에 젖으면 안전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에 모두 철거하는 등 여러 악조건 속에서 공연 오픈이 다소 지연되기도 했다. 하지만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빗방울이 밤하늘을 밝힌 조명을 받아 안개 속에서 반짝이는 풍경은 작품의 리얼리티와 분위기를 살려주고 관객들을 극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다.

대도구에 의지하는 무대 장치가 없다시피 생략되고 그 공백을 벽면에 비친 미디어 파사드와 3D맵핑이 채운 것은 작품의 정체성에 근본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적극적인 영상 활용은 최근 몇 년간 뮤지컬계를 휩쓴 화두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무대 개념을 고수하려는 보수적인 입장이 아니라 해도, 1차원적으로 영상을 활용하는 것에는 무대극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없이 지나치게 안일한 것 아니냐는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묵화마녀 진서연>의 경우 애초에 대도구사용이 극히 제한된 야외상연이라는 조건과 게임을 원작으로 한 작품의 정체성이 맞물리면서 극의 내적인 요소와 표현방식이 자연스럽게 결합된 형태로 완성되었다.

영상을 활용해 화려하게 연출한 무대 

영상을 활용해 화려하게 연출한 무대 

특히 이번 공연에서 3D맵핑과 사운드로 무신 천진권의 타격을 표현한 장면은 3차원의 무대에서 실존하는 배우에게 게임 속 캐릭터와 같은 효과를 주는 재미있는 연출이었는데, 현장 상황 때문에 타이밍이 미세하게 어긋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남경주 예술감독은 추후 야외상연이 아닌 일반 극장 안으로 작품이 들어가게 되면 이러한 디테일을 보완하고 극의 밀도를 높여서 완성도를 더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거대한 미디어 파사드를 LED로 대체할 경우 규모에서 오는 압도감은 다소 약해지더라도 디테일과 해상도 면에서는 비교할 수 없이 개선될 것임을 예상 가능하다.

미디어 파사드가 게임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로서 <묵화마녀 진서연>의 정체성을 보여주었다면 LDT무용단이 활약한 군무는 춤과 음악이 함께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뮤지컬이 관객에게 안겨주는 쾌감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오랜 시간동안 수준 높은 무대에서 단련된 빼어난 댄서들이 표현해낸 암흑에 물든 세계의 절망은 거대한 미디어 파사드에 비친 환상적인 이미지와는 또 다른 방식의 스펙터클을 선사해주었다.

화려한 탭댄스를 선보인 댄서들 

화려한 탭댄스를 선보인 댄서들 

원작 게임에서 유저들을 몰입시켰던 좋은 서사와 매력적인 캐릭터는 무대극으로 장르를 변환시켰을 때도 여전히 작품의 확고한 자산이 된다.  주인공이 복수해야 하는 대상인 악녀마저 보는 이들의 공감을 얻을 만큼 설득력 있게 자신의 복수에 모든 것을 걸고 질주하는  <블레이드 앤 소울>의 설정은 이번 공연의 모든 요소 중에서 가장 뮤지컬적인 방식으로 세련되게 형상화 되었다. 작품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는 막내와 진서연이 결전의 순간을 앞두고 자신의 고뇌를 담아내는 이중창은 관객들에게 두 주인공의 기구하고 비극적인 운명을 상기시켜 주었다.

뮤지컬에서 음악은 각 씬이 리듬감을 가지고 원활하게 이어지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블레이드 앤 소울>의 자랑인 풍부한 O.S.T 넘버들은 뮤지컬 <묵화마녀 진서연>에서도 적극적으로 쓰였다. 극의 서사에 맞게 가사를 손보기도 하고 음악의 정서에만 집중해서 게임에서와는 다른 시퀀스에서 활용하기도 했는데, 균일한 결과 유기성 면에서는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애초에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각 씬의 배경으로 쓰였던 음악을 뮤지컬 음악으로 가져와 활용하다보니 순간의 집중과 흡인력에는 유리했지만 극의 음악적인 연결성은 보완의 여지를 남겼다. 하지만 단 한 곡의 인상적인 아리아를 남기기만 해도 절반은 성공이라는 뮤지컬 음악의 공식을 생각하면 진서연의 카리스마와 매력이 폭발하는 ‘바람이 잠든 곳으로’는 이 작품의 든든한 일등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소력 있는 노래를 선보인 진서연 역의 리사 

호소력 있는 노래를 선보인 진서연 역의 리사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극중극, 아니 극중 이벤트도 있었다. <언프리티 랩스타>의 트루디와 헤이즈가 등장한 랩 배틀, 진서연과 막내의 마지막 결전을 블소 토너먼트 2015 챔피언쉽 결승전이라는 형식으로 풀어내면서 게임쇼 엠씨들이 소개하는 사물놀이와 탭탠스의 리듬 배틀은 관객들의 큰 호응 얻기도 했다. <묵화마녀 진서연> 공연 후 같은 자리에서 곧바로 챔피언쉽 결승전이 열린다는 점에서 착안한 아이디어였는데, 발상 자체로 흥미롭고 기발한 만큼 그 표현 방식에 있어서 좀 더 고민이 따른다면 통합장르로서 뮤지컬의 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을 듯하다.

트루디 & 헤이즈의 깜짝 등장 

트루디 & 헤이즈의 깜짝 등장 

<묵화마녀 진서연>이 초연에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것에 성공했다고 선언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던 도전의 결과물이 기대보다 더 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그것만으로도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묵화마녀 진서연>의 다음 행보가 기대될 수 밖에 없다.


무민김영주 2년간 방송작가, 7년간 기자로, KBS, 아리랑 TV, 공연 매거진에서 일했다. 과거에도, 현재도 삶을 주어진 것보다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작품과 사람에 대한 글을 쓴다.

묵화마녀 진서연 뮤지컬 영상 바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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