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25 엔씨라이프

일도 야구도, 놓치지 않을거예요

엔씨소프트 해외법무팀에 몸담고 있는 김정화 대리

엔씨소프트 해외법무팀에 몸담고 있는 김정화 대리. 차분하지만 또박또박한 말투로 미루어보건대, 소싯적 한 공부 하셨을 것 같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갔다’고 말하는 그녀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패스한 변호사입니다. 헌데 얘기를 나눠보니 또 범생이 스타일은 아닙니다. 애초에 순도 높은 범생이었다면 게임 회사가 아니라 좀 더 딱딱한 분위기의 직장을 선택했을지도 모르지요.

단순히 공부를 잘 했다는 이유만으로 김정화 대리를 [엔씨피플]에 모신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 모든 인터뷰는 그녀가 굉장한 야구팬이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 네. 그녀는 야빠입니다. 야구장에서 그물에 매달려본 일도 있는 열혈야빠…=ㅁ=엔씨소프트 사내 다이노스 팬들 사이에서는 “그녀가 휘두르는 단디봉에 맞아보지 않은자는 다이노스를 논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부터 고교야구까지. 야구를 탐닉하다 결국 야구단이 있는 회사에 입사하고 말았다는 김정화 대리를 만나보았습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엔씨소프트 해외법무팀 김정화 대리인터뷰 중 녹취에 대한 양해를 구했더니,
이런 경우는 OO한 이유로 ‘법적으로 문제 없다’며 친절하게 변호사 포스를 뿜뿜.


Q1. 소녀의 야구

♦야구에 빠진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면?
초등학교 6학년 즈음 한국시리즈 7차전을 직관할 기회가 있었다. 7차전이란 내일이 없는 경기다. 전쟁을 겪어본건 아니지만, 전쟁이란 이런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 당시 경기장의 분위기나 사람들의 목소리 같은 것들이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수만 관중 앞에서 마운드 위에 홀로 서 있는 투수는 참 고독해 보였고, 그런 부담을 이겨내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사춘기 때의 야구는 어땠나?
중학교 때 사춘기를 겪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나만의 세계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애들은 모르는 나만의 영역이 필요했던 것 같다. 야구를 혼자 보는 습관도 그 때 생겼다. 고등학교 때 야자 빼먹고 교복 입고서 혼자 직관하고 다녔다.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김정화 대리♦야구 자체가 좋았나?
한국 프로야구와 함께 메이저리그와 고교야구 모두 보았다. 고교야구 볼 때는 추신수 선수를 좋아했다. 정말 최고였다. 당시에도 야구를 잘 이해하고 경기를 지배하는 선수라는 느낌이 있었다. 이동현 선수도 좋아했다. 우리 학교에서 경기고가 가까웠는데 거기에 잘 생긴 오빠가 있다는 소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경기를 자주 찾아보았다. 추신수와 이동현이 대결했던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때가 경기고 100주년이었는데, 대통령배에서 추신수(의 부산고)가 우승하고 이동현(의 경기고)이 졌다. 그런데 다음 황금사자기에서 이동현이 끝내 경기고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탐 글래빈과 ‘무스’ 마이크 무시나를 좋아한다. 지금도 핸드폰 번호 뒷자리는 마이크 무시나와 관계 있는 숫자다. 팀으로 보면 시애틀 매리너스의 팬이다. 이치로가 진출하던 때라 NHK로 시애틀 중계를 볼 수 있었다. 고3 때라 저녁에 야구 보는 게 눈치 보였던 터라 아침마다 틈틈이 보는 메이저리그가 낙이었다. 짬 날 때 미리 녹화해둔 경기를 보기도 했다. 당시 야구를 이기면 공부가 잘 됐는데, 2001년에는 이치로가 신인상, MVP를 차지하고 팀은 역대 최대 승률을 기록했다. 굉장히 고마운 팀이다. 물론 그 때 시애틀이 월드시리즈에 나갔다면 나의 수능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인터뷰 질문을 듣고있는 김정화 대리♦야구관이 있다면?
요즘은 취향이 좀 바뀌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작전 능력이 좋고 상황을 만들어낼 줄 아는 똘똘한 리드오프 스타일을 좋아한다. 지금은 우리 팀 주루코치이신 전준호 선수(당시 현대 유니콘스)를 좋아했다. 기록이나 프런트의 야구단 운영에 대해 알게 되면서 야구를 더 깊게 뜯어보기 시작했다. 아빠가 신문 보시길 기다렸다가 경기 기록표만 따로 빼서 분석하고 달달 외웠다. 적절한 선수를 잘 데리고 오면 팀이 잘 하게 되는구나 생각했다. 혼자 이 선수 저 선수 조합해보며 나만의 야구단을 구성해보기도 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야구 시뮬레이션 게임 같은 건데, 그런 상상을 거듭하면서 나만의 야구관을 갖추게 되었다.

♦당시 소녀 김정화에게 야구라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공부는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었지만 야구는 달랐다. 내가 처음으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선택한 나의 세계였다. 야구 덕분에 사춘기 시절을 견딜 수 있었고, 이후로도 삶을 살아가는데 큰 영향을 받았다. 사실 야구를 좋아하는데 있어서 내가 어떤 ‘팀’의 팬이 되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 야구’에 맞는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와 팀을 좋아했다.


Q2. 성인 야구팬의 로망

♦대학 입학 후 야빠로 살기가 조금 더 편했겠다.
그 때 무한한 시간과 자유가 주어졌다. 사실 대학은 성적에 맞춰 선택한 것이었다. 때문에 대학 시절 내내 ‘이곳에 왜 속해있는가’에 대한 커다란 물음표를 갖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야구는 탈출구였던 셈이다. 본격적으로 경기장을 찾아 다녔다. 2002년은 월드컵 개최 등의 영향으로 인해 역대 최악의 야구암흑기였지만 한 해 동안 야구장에 40회 정도 갔었다. 대학생 때는 학과 생활보다 야구에 더욱 정성과 시간을 쏟았다. 2004년 비가 쏟아지던 한국시리즈도 직관했었다.

♦법대와 야구라니? 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서울대)법대에는 야구 동호회가 있는데, 그곳에서 활동하며 친구들에게 ‘감독님’으로 불리기도 했었다. 고시생들이나 법쪽에 있는 사람들이 유난히 야구를 좋아한다. 야구는 기록지만 봐도 경기가 그려지는 거의 유일한 스포츠다. 기록지를 보며 경기를 해석하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기본 룰을 바탕으로 사람이 판단을 한다는 점에서 법과 비슷한 매력이 있다.

♦특별히 좋아한 선수가 있었나?
나와 비슷한 또래인 프로 1년차 신인 선수에게 마음이 갔다. 조용준 선수를 좋아했고, 김진우 선수, LG 박용택 선수도 응원했다. 당시에 각종 기록을 분석하며 왜 김진우가 아니라 조용준이 신인왕을 받아야하는지에 대한 논리적인 근거를 만드는 등의 취미가 있었다.

♦야구 선수에게 애정을 품고 그들을 관찰하며 느낀 바가 있다면?
그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과 존경하는 감정이 동시에 일었다. 나는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하면서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찾지 못했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야구선수들은 벌써 수만 명의 관객 앞에서 전문가로 어떤 일을 책임 지고, 프로로서 현장에서 땀 흘리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이렇게 미성숙하지만, 같은 나이에 이미 사회에서 평가를 받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그들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야구 관련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가?
대학시절 선수협 대의원회에 봉사활동을 갔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허구연 해설 위원이 강의하러 왔었다. 위원님은 나에게 “학생은 전공이 무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대답은 “법학을 전공하는데 사실은 공부하기 싫어요”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그 말을 들은 위원님은 지나가는 말씀으로 “팬이든 선수든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야구를 즐겼으면 좋겠다. 학생도 그런 야구팬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까지 공부에 대한 도피처로만 야구를 생각해왔는데, 성숙한 야구팬이 되기 위해서는 ‘내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머리를 강하게 쳤다. 그 분은 기억 못하시겠지만 그 덕담 한 마디가 내가 한 사람의 ‘프로’ 사회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의 내가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공부를 했다면, 그 이후에는 훌륭한 야구팬이 되기 위해서 공부를 했다.

김진성 유니폼을 입은 김정화 대리가 공개한 애장품 일부. 최일언 투수 코치의 사인볼, 선수협 세월호 희생자 돕기 자선 경매 낙찰품인 박민우 선수의 선글라스, 한정판 휴대폰 케이스

김진성 유니폼을 입은 그녀가 공개한 애장품 일부. 최일언 투수 코치의 사인볼, 선수협 세월호 희생자 돕기 자선 경매 낙찰품인 박민우 선수의 선글라스, 한정판 휴대폰 케이스(SN 001/200)

♦첫 번째 직장(법무부)에서 게임 회사로 이직을 했다. 흔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늘 국내 기업에서 일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메이저리그도 좋아하지만 결국 한국 프로야구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그리고 일이란 결국 개인의 삶에 윤기를 주기 위해 하는 것인데, 첫 직장에서는 일을 하면서 내가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그렇다고 이직이 쉬운 결정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첫 직장에서의 일과 이 곳에서의 일이 전혀 다른 일이고, 첫 직장에서 나름대로 이뤄놓은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직을 하게 된 것은 야구 때문이다. 엔씨소프트가 다이노스의 모기업이라는 사실이 크게 내 마음을 움직였다. 야구단이 있는 회사에 도움이 되는 전문가가 되고 싶었고, 일을 하면서 그런 즐거움도 찾아나가고 싶었다. 야구와 함께 일을 한다면 인생에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언젠가는 야구단이 있는 기업에서 일을 해 보고 싶다는 로망도 있었다.

♦꿈꾸던 일이 현실로 이뤄졌다.
현실과 이상은 생각보다 가까웠다.  엔씨소프트가 만드는 게임과 야구단이 선보이는 플레이는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한다는 점에서 그 목표가 같다. 사람들은 본사와 야구단의 거리에 대해 많이 궁금해 하는데 생각보다 더 친밀하다. 다이노스 굿즈도 사무실에 많이 보이고, 사내 게시판 같은 곳에서 야구 얘기를 꺼내면 주어를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우리팀’은 ‘다이노스’다. 야빠라는 것을 당당히 커밍아웃 할 수 있는 환경이 굉장히 편하고 행복하다.

나 개인적으로도 예전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지금 다이노스와 함께 하고 있다. 선수 배트나 애장품 따위를 모으고 선물을 보내주는 등의 일들. 어렸을 때는 너무 수줍어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이제 성인 야빠로서 당당히 즐기고 있다. 최근에는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당연하지만 야구장에서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다…

♦한 사람의 오랜 야구팬으로 또 한 사람의 엔씨소프트의 직원으로서 엔씨다이노스에게 바라는 것은?
사실 그 답은 야구단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지금처럼만 해주기를 바란다. 더 자신을 가져도 되고 더 당당해도 된다.  스스로를 더 뿌듯해 했으면 좋겠다! 창단 2년 만에 가을 야구를 했다. 앞으로 다이노스는 더 강한 팀이 될 것이다. 다이노스는 올해 1군 2년차 팀이고 나는 2년차 변호사이니, 내 삶의 궤적은 다이노스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언제나 우리 팀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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