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27 리니지

영자의 전성시대 #1 신분을 감춰라!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까진 아니지만 ^ㅁ^;; 온라인 게임 운영자의 팬 카페가 생기고, 팬 미팅을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특히 <리니지> 초창기인 200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게임 운영자가 TV에 나와서 게임 프로그램을 진행할 정도였습니다.

누군가는 저 멀리 태평양 너머에서 운영자와 채팅을 하며 외로움을 달랬고, 또 누군가는 초콜릿과 팬아트 등 정성 가득한 선물을 운영자에게 보냈습니다. 지금은 “너희가 하는 일이 뭔데?” 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한때는 리니지 GM이 고객들과 함께 게임 안에서 달리기 대회도 하고 퀴즈도 풀며 심지어 주례도 봤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구요~. ㅠ_ㅠ”

소싯적 리니지 서버를 맡아 운영하며, 선물과 욕메일(!)을 함께 받았던 리니지 운영자 출신들을 한데 모았습니다. 게임 내에서만큼은 킹스맨처럼 철저하게 신분을 감췄던 그들! 그들이 말하는 ‘영자의 전성시대’는 언제였을까요? 엔씨소프트 게임 QA1팀 한신희 팀장, 김영기 차장, 정왕락 차장, 이영미 과장이 전합니다.



GM :
시크릿 에이전트

게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리니지 GM이라고 커밍아웃 하는 것은 “사실은 우리 집 되게 잘 살아.” 수준을 넘어서는 심각한 문제였다. GM이라는 게 밝혀지는 순간, 각종 회유와 협박은 물론이요 집요한 질문 세례에 시달리기 때문! 즐거운 게임 라이프는 물론이고, 일상 생활에도 지장이 있겠다 싶어 운영자라면 자신의 존재를 감추는 것이 기본이었다.

매너는 남자를 만든다…가 아니라 철저한 비밀 유지는 훌륭한 영자를 만든다!! 영자임을 밝힐 수 없었던 이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매너는 남자를 만든다...가 아니라 철저한 비밀 유지는 훌륭한 영자를 만든다비밀은 영자를 만든다! 

정왕락 차장 서버를 새로 맡았는데, 몇 주 동안 매일 아침이면 욕으로 도배한 메일을 보내는 고객이 있었어요. 출근하자마자 메일함 열면 또 그 고객인 거예요. 아무리 고객이어도 그렇지, 수위가 너무 세더라고요(웃음). 상대하면 피곤하겠다 싶어서 ‘네, 알겠습니다.’처럼 기계적인 답변만 보냈어요. 그런데 메일에 자기 정보를 하나둘씩 흘리더라고요? 예를 들면 나이나 사는 곳 같은 거요.

그동안 보냈던 메일 내용을 찬찬히 살펴 보니까 저랑 나이가 같더라고요. 이름도 낯이 익었고요. 알고 보니 저랑 친한 친구였어요. 전 그 친구가 리니지를 하는 줄도 몰랐는데 ㅋㅋㅋㅋ 진짜 황당하더라고요. 내가 누구라고 밝힐 수도 없고 나원참….

GM의 정체는 국가기밀 !? TOP SECRETGM의 정체는 국가기밀 !?

한신희 팀장 그 친구, 평소에는 멀쩡하다고 하지 않았어?(웃음) 저는 예전 삼성동 승광빌딩 시절이 기억에 남아요. 워크숍 다녀오는 길에 버스가 회사를 지나쳐서 삼성역 앞에 서는 거예요. 엥? 이게 뭐지 싶어 알아 봤더니  ‘승광 빌딩이 점령됐다.’는 긴급 연락이 오더라고요(웃음). 알고 보니 고객 분들이 회사 앞에서 단체로 농성(!)을 벌이고 있었어요. 게임하다 말고 열 받으니까 “야, 가자!” 하고 한 두명이 선동해서 결국 단체로 회사 앞에 찾아온 거죠.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 다음 워크숍 때는 “영등포에서 활동하는 ‘형님들’이 오셔서 성(승광빌딩)을 차지했으니 돌아오지 말라.”는 얘기가 돌았어요. 그냥 고객 분들도 회사 앞에 찾아 오면 무서운데 ‘형님들’이라니…그 분들과 마주쳤으면 음…어떻게 됐을지 상상조차 하기 두렵네요. ㅎㅎㅎ

김영기 차장 맞아요. 당시에는 운영팀이라는 걸 숨길 수 밖에 없었어요. 지인들이 게임 업데이트 내용이나 아이템에 대해 묻는데, 저희는 직업 윤리상도 그렇고 대답해 줄 수가 없으니까요. 알면서 왜 안 가르쳐 주냐고 하면 골치 아프니까, 애초에 운영자라는 걸 얘기 안 하는 거죠.

선배 중에서는 아예 명함 없이 회사 다니시는 분도 있었어요.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되니까요. 그만큼 철저했던 거죠.

명함..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명함…몰라..뭐야, 그거…

이영미 과장 명함 안 만든 선배 분 현명하시네요(웃음). 전  택시를 탔다가 아무 생각 없이 리니지 운영자라는 걸 말해 버린 적이 있었어요. 신부님한테 고해성사 하는 것도 아니고, 평소엔 말을 못 하니까 오히려 택시 기사 아저씨한테는 말하고 싶었나 봐요. 그런데 아.뿔.싸. 택시 기사 아저씨가 리니지 열성 고객인 거예요!

기사 아저씨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갑자기 운전도 난폭하게 하시고…이것저것 질문 폭탄을 던지시는데 ‘대답 못 해드린다.’ 고 했더니 안 내려 주시더라고요. “말해 줄 때까지 못 내린다.”고 하면서요! 그때 진짜 웃기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황당했던 경험이에요.

배우 이서진의 데뷔작 <공포택시> 말해줄 때까지 못내려(출처 : 배우 이서진의 데뷔작 <공포택시>) 


간담이 서늘했던 고객 간담회

지금이야 모든 공지를 온라인상에서 고객들에게 바로 전달해 줄 수 있지만, 리니지 초기에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지금처럼 잘 돼 있지 않았다. 때문에 에피소드 단위의 대형 업데이트를 진행할 때는 기자와 고객들을 직접 만나서(!) 기본적인 정보를 설명해 줘야 했다. 강성 고객들이 많기로 유명한 리니지…GM과 고객들이 공식적으로 대면하는 간담회 자리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한신희 팀장 고객 간담회라…이젠 정말 추억이네요(웃음). 간담회에 가면 GM은 밥 먹을 시간도 없었어요. 둥그런 테이블에 GM 혼자 덜렁 앉아 있고, 그 주변을 고객들이 둘러싸고는 쉴 새 없이 질문을 하거든요. 질문과 질문 사이에 다른 질문을 하시는 분들도 있고…GM 혼자 상대하기엔 버거웠어요. 가끔 무서운 고객들도 있거든요.

김영기 차장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는 간담회 분위기가 그런 줄 몰랐어요. 저는 GM이 너무 되고 싶었거든요. 제 입장에선 꿈에 그리던 리니지 운영자가 되어서 간담회를 간다니까,  너무 설레고 기대가 컸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선배들은 간담회 가는 걸 꺼려 하시더라고요. ‘왜 간담회를 꺼려 하지?’ 싶었는데 실제로 겪어 보니까 알겠더라고요(웃음).

정왕락 차장 실제로 겪어 보면 뭐, 선배들이 왜 그렇게 간담회를 두려워 했는지 이해하고도 남죠(웃음). 조폭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간담회도 있었어요. 지방 간담회에 갔는데, 그 지역의 유명한 혈맹의 군주가 운영자와 뒷풀이를 하고 싶다는 거예요. 분명 ‘초대’이긴 한데, 느낌이 약간 싸~했죠. 간담회 끝나고 따라 나가 보니 검은 각 그랜져가 세워져 있는 거예요. 다들 각 그랜져 이미지 아시죠? ㅎㅎ 얼떨결에 영문도 모른 채 차에 탔어요.

조폭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간담회도 있었어요. 대기하고 있는 조폭들영자님, 편히 모시겠습니다

정왕락 차장 ㅎㅎㅎ 그런데 차가 점점 건물이 없는 시골길로 가는 거예요. 괜히 무섭더라고요;; 날 어디로 데려가서 어떻게 하려나 싶기도 하고. 도착해 보니 허름한 상가 건물이었어요. 아시죠? 조폭 영화에 많이 나오는(웃음). 건물 구석 좁은 방으로 들어갔더니, 앞에 의자 5개가 놓여 있고 반대 편에 서른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거예요.

저희가 들어갔더니 군주님이  “영자님 들어오셨다!!” 라고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로 말했어요. 군주님 말이 떨어지자마자 건장한 서른 명의 청년이 일어나서  “안녕하십니까!” 하고 입을 모아 외쳤죠. 대체 이게 뭐지… ^ㅁ^;;; 잔뜩 긴장한 상태로 몇 시간 동안 앉아서 질문 세례를 받았어요. 진짜 리얼한 간담회였죠.

영자님이 오시자 건장한 서른 명의 청년이 일어나서  “안녕하십니까!” 마치 신세계의 한장면 같았던 상황영자님 오신다!!!!   (;◔д◔)

김영기 차장 재밌네요. ㅎㅎ 저는 검은 양복 생각하고 각오 단단히 하고 나갔던 자리가 정반대 분위기여서 당황한 적도 있었어요. 여성 고객들도 계시고, 아이와 함께 온 고객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분위기도 화기애애했고요. 고객 분들이 너무 잘해 주시니까 저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너무 긴장해서 주차하면서 사고를 낸 적도 있었어요.

이영미 과장 주차하다 박은 거면 양호하네요(웃음). 어떤 GM분은 간담회 뒷풀이에 갔더니 옆에 앉은 고객이 별말 없이 계속 술을 권하더래요. 알고보니 취하게 해서 정보를 캐내려는 거였어요(웃음). 끝까지 정신 안 놓으려고 버티다가 간담회 끝나고 집에 가서 완전 뻗었대요. 간담회 나갔다가 얼굴이 알려져서 단골 PC방을 옮긴 GM 분도 있었고요.

사실 생각해 보면 GM의 권한이 엄청나게 큰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여튼 GM이라는 신분이 노출되면 여러모로 불편한 게 많았답니다(웃음). 이젠 다 추억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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