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10 이세계 게임

이세계 게임 #1 스탠리 우화(The Stanley Parable)

이(this)세계에서 만들었지만 이(異)세계의 물건인 듯한 그런 게임을 소개하는 이세계 게임

첫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게임은 어째서 게임 속 내 캐릭터를 통제하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서 시작하는

<스탠리 우화(The Stanley Parable)>입니다.


이세계 게임 #1 스탠리 우화(The Stanley Parable)

여러분은 영화 ‘주먹왕 랄프’에서 이 장면이 기억 나시는지요? 안경쓴 겜순이가 영화 속 건슈팅 게임인 ‘히어로즈 듀티’ 플레이를 시작하자, 게임 내 세계에서 플레이어의 카메라를 맡은 로봇이 출동하고 주변 캐릭터들이 상황을 연기하던 장면 말이죠.

건 슈팅은 말이죠. 1p,2p 컨트롤러를 둘 다 들고 하면 폭풍 간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 물론 전 안 해봤습니다. (づ ̄ ³ ̄)づ

건 슈팅은 말이죠. 1p,2p 컨트롤러를 둘 다 들고 하면 폭풍 간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 물론 전 안 해봤습니다. (づ ̄ ³ ̄)づ


게임 속 세계가 플레이어 카메라를 중심으로 캐릭터들이 연기를 하고 있으며 액션 신호가 있어서 게이머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도록 주인공을 맡은 캐릭터와 NPC들이 신경을 쓰고 있다는 설정이죠.

사실 이런 게임 속 세계가 우리가 현실에서 영화를 찍듯 캐릭터들이 연출된 것이라는 개념은 아주 예전에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전게임인 SEGA의 <수왕기> 엔딩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죠. 게다가 최근에는 유니티 1인 개발을 공부하다 보면 게임 오브젝트들을 컨트롤하는 객체를 GameDirector라 부르고 언리얼의 액터의 개념 등 엔진에서 게임을 구성하다 보면 가상세계 안에서 영화를 찍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됩니다.

1988년작의 시대를 앞선 <수왕기>의 엔딩. 그러니까… 게임 내 개발자들은 다 유령이라는 거죠(?)

1988년작의 시대를 앞선 <수왕기>의 엔딩. 그러니까… 게임 내 개발자들은 다 유령이라는 거죠(?)


좋습니다. ‘주먹왕 랄프’에서 보듯이 게임 안엔 정말로 사실 연출 감독이 있으며 연기자들이 있다고 치고, 만약 우리가 게임을 플레이 하다가 연출 감독의 말을 어기고 허용되지 않은 부분들을 탐험하며 설정되어 있던 부분들을 엉망진창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 게임은 어떻게 될까요?

이젠 우리가 게임을 농락할 차례입니다.

이세계 게임 첫 번째 코너. <스탠리 우화(The Stanley Parable)>를 여기 소개합니다.

<스탠리 우화>는 원래 2011년 <하프라이프2>의 모드게임으로 개발되었었지만 굉장히 독특한 내러티브로 호평을 받아 2013년 스팀에 독립게임으로 리메이크되어 출시된 게이ㅁㅡ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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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스탠리 우화>를 이해하기 위한 간단한 실험을 하나 했습니다. 저는 문단을 통해 독자분들의 행동을 통제하고 조정하려 했죠. 하지만 이 문장을 읽는 여러분들은 저 이상한 문장을 읽고도 제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고 스크롤을 내렸을 겁니다. ‘게임이 행하는 통제와 조정을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이것이 <스탠리 우화>를 이해하는 가장 첫 번째 관문이죠.

※주의※

지금부터의 소개는 게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게임을 플레이하실 분들은 1회차라도 하신 후에 본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THE END IS NEVER THE END IS NEVER THE END IS NEVER THE END IS 로딩화면

<스탠리 우화>는 원래 2011년 <하프라이프2>의 모드게임으로 개발되었지만 굉장히 독특한 내러티브로 호평을 받아 2013년 스팀에 독립게임으로 리메이크되어 출시된 게임입니다. 스토리 텔링만으로 이루어진 게임으로 어떤 형태의 게임인지 설명하는 것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정도의 독특함을 자랑하지요.

그러면 스팀에서 게임을 구입하고 게임을 실행하여 첫 타이틀 화면을 볼까요? 컴퓨터가 있고 그 안에 또 <스탠리 우화>의 타이틀 화면이 있죠.

게임을 이해하게 되면 사실 바로 이 부분부터 페이크가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게임 타이틀의 화면 안의 컴퓨터엔 또 <스탠리 우화>의 타이틀 화면이 있습니다. 단순한 그림이 아닙니다. 마우스 조작을 하면 화면 안의 타이틀 화면도 똑같이 커서가 움직이죠.

사실 이것은 게임을 하는 우리들이 <스탠리 우화>를 하는 것이 아니고 <스탠리 우화>를 플레이하는 사람의 시점으로 우리가 조종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메인 메뉴 조작을 할 때마다 커서음이 아닌 키보드 소리가 나는 것부터가 그 증거입니다. 이 사실은 진엔딩으로 취급되는 ‘선택’ 엔딩을 보면 더 확실하죠.

게임으로만 표현될 수 있는 프랙탈이랄까..

게임으로만 표현될 수 있는 프랙탈이랄까..


인간은 선택하고 노예는 복종한다
–앤드류 라이언(바이오쇼크)-

이 이야기는 ‘스탠리’라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스탠리는 큰 건물에 있는 회사의 427번 직원으로 일했습니다. 427번 직원의 업무는 간단했습니다. 427번 방의 책상에 앉아 키보드의 버튼을 누르는 것이죠.

지시는 책상 위의 모니터를 통해, 어떤 버튼을 누를지, 얼마나 오랫동안 누를지, 그리고 어떤 순서로 누를지 전달됐습니다. 이 작업이 427번 직원이 매일, 매달, 매년 했던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것이 고리타분 하다고 말하지만, 스탠리는 지시가 내려오는 매 순간을 즐겼답니다. 마치 그가 이 업무만을 위해 만들어진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요. 그리고 스탠리는 행복했습니다.

게임을 하는 우리들과 비슷해 보인다면 큰 착각입니다.

게임을 하는 우리들과 비슷해 보인다면 큰 착각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책상 앞에서 거의 한 시간을 앉아 있었지만, 스탠리는 단 하나의 지시도 모니터에 내려오지 않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무도 스탠리 앞에 나타나서 지시를 내리거나, 회의를 하자고 하거나 인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완벽한 고립상태는 그가 이 회사에서 일했던 일생 동안 한번도 없었던 일입니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놀라고, 얼어붙은 상태에서, 스탠리는 오랫동안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린 후, 책상에서 일어나 그의 사무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이것은 제가 쓴 글이 아닙니다. 영국식 억양이 넘치는 게임 속 나레이터가 말하는 대사 입니다. 일반적인 게임의 나레이터는 게임에 관여하지 않는 제 3자로서 배경 설명을 할 뿐이죠. 하지만

스탠리가 열린 두 개의 문 앞에 도착했을 때, 그는 왼쪽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문 양쪽이 열리며

스탠리가 열린 두 개의 문 앞에 도착했을 때, 그는 왼쪽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레이터의 말을 듣는 순간 첫 번째 위화감을 느낍니다.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음에도 나레이터가 게임에 개입하여 플레이어를 통제하려고 드는 ‘상대’로 인식되기 시작하죠. 통제를 따라 진행하면 원래 시나리오대로 미스테리한 스토리와 함께 스탠리는 건물 밖으로 나가며 게임은 끝나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허무하게 끝나버립니다.

그러면 두 번째 진행으로 나레이터의 통제를 어기면서 진짜 게임을 진행 해보도록 하지요. 오른쪽 문을 선택하면서 게임의 목적이 처음과는 완전히 바뀌어버립니다. 강제로 길을 막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스탠리에게 대화를 걸기도 합니다. 심지어 조롱까지 하죠. 더 이상 안되겠다 싶으면 스탠리를 죽여서 다시 시작하게 유도하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자길 벗어나고 싶으면 가서 아직 미완성 맵이나 하라고 내치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길 벗어나고 싶으면 가서 아직 미완성 맵이나 하라고 내치기도 합니다.

이 게임이 싫으면 가서 다른 게임을 하라고 직접 보내주기도 하구요.

이 게임이 싫으면 가서 다른 게임을 하라고 직접 보내주기도 하구요.

마인 X래프트, 포X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스탠리 우화>를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마인 X래프트, 포X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스탠리 우화>를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오시면 이제 나레이터의 정체를 알 수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바로 ‘개발자’죠. 정확히는 우리 개발자의 명령을 받은 ‘객체’입니다. 플레이어에게 즐거움을 줘야 하는 존재 말입니다.

그런데 본분을 망각한지 자기 뜻대로만 하고 있죠. 게임 내내 플레이하는 우리들은 스탠리라는 체스말을 가운데 두고 나레이터와 신경전을 벌이게 됩니다.

특정 루트에서는 게임의 룰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면 이 게임을 하는 것이 스탠리가 아니고 진짜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 챕니다. 네, 마우스를 굴리고 치보드를 치는 ‘우리’ 말입니다.

제4의 벽을 넘는 순간, 메타픽션을 처음 경험한다면 소름이 돋을 수 있습니다.

제4의 벽을 넘는 순간, 메타픽션을 처음 경험한다면 소름이 돋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나레이터는 더욱 더 강제적이고 억압적으로 변합니다. 오류 투성이가 되어 갈수록 게임은 엉망진창이 되어가죠. 이 폭주를 멈추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선택 엔딩, 게임을 벗어나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을 하지 않는 것

선택 엔딩, 게임을 벗어나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을 하지 않는 것


게임은 현실과 같이 선택의 연속입니다. 무슨 무기를 장착할까, 무슨 기술을 배울까 어디로 이동할까 등과 같이 말이죠. 하지만 선택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면 게임은 더 이상 게임으로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그냥 그래픽 뷰어(Viewer)일 뿐이죠 선택을 하지 않으면 플레이어는 스탠리라는 구속에서 벗어나 더 이상 나레이터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됩니다. 유일하게 스탭롤이 나오는 이 엔딩에서만이 스탠리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내 게임은 또 다시 처음부터 시작되죠.

이 글 처음에 언급한 무한히 반복되는 로딩화면의 문장이 기억나시나요.

THE END IS NEVER THE END… 영문으로만 표현될 수 있는 이 무한 문장. 이 말 그대로 THE END! 라는 글씨를 보기는 했지만 혹시 아직도 진짜 의미로 사실은 이 게임의 끝을 못 본 게 아닐까요?


나와 절대로 만날 없는 평행선그러나 평행선은 변하지도 않지만 항상 옆에 있지 타카토 요이치(소년탐정 김전일)-

좀 더 다른 루트를 살펴보도록 하죠.

그전에 한번 생각해 봅시다 개발자와 게이머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컨텐츠 창작자와 소모자? 만드는 자와 즐기는 자? 생산자와 소비자? 그것을 알기 위해 잠시 리니지 자유 게시판이라도 가보겠습니다.

무엇이 보이나요?

매일매일 동향 게시판을 모니터링 해주시는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 ̄(エ) ̄*)

매일매일 동향 게시판을 모니터링 해주시는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 ̄(エ) ̄*)


네. 바로 개발자에게 청원하는 수없이 많은 욕들이죠.

전세계 다른 어떤 온라인 게임의 게시판을 가보아도 같습니다. 결제 유도의 불만일 수도 있고 클래스 성능에 대한 불만일 수도 있고 서버 상태의 불만이기도 하죠. 재미라는 두뇌적 보상을 받기 위해 즐기는 게임에 수많은 바람이 있고 개발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게임을 만들기를 갈구합니다.

또 개발자인 우리들은 게이머들이 원하는 것을 게임에 넣으며 그와 동시에 자신이 추구하던 이상향을 개발하는 게임에 실현시켜 게이머들이 그것을 재미있어 하기를 원하죠.

개발자와 게이머는 애증의 관계입니다.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서로를 지배하고 싶어합니다. 또 그와 동시에 서로에게 얽매이지 않은 자유를 갈망하죠. 서로에게 타협을 하되 완벽하게 맞춰줄 수 없는 둘은 언제나 영원한 평행선입니다.

그런데 그 평행선이 만나지도 않지만 언제나 옆에 있죠. 그래서 이 서로는 닮았음에도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서로가 닮았기에 이 역할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죠. 야구선수가 투수와 타자를 번갈아가며 할 수 있듯이 우리 개발자도 동시에 게이머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다시 돌아와서 <스탠리 우화>가 진짜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보도록 합니다.

언리얼 에셋 브라우저를 현실로 옮기면 이런 느낌일 겁니다.

언리얼 에셋 브라우저를 현실로 옮기면 이런 느낌일 겁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나레이터가 스탠리를 죽이려고 하는 순간 제 3자가 개입하는 루트가 있습니다.

‘박물관’ 루트에서 만나게 되는 나레이터와 플레이어 모두를 전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어쩌면 게임PD 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 여성의 목소리는 플레이어와 나레이터를 나무라듯 둘이 얼마나 소모적인 신경전을 하고 있는지 꼬집습니다. 결국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직접 말해버리죠.

ESC버튼을 누른 다음 ‘나가기’버튼을 누르세요!!

ESC버튼을 누른 다음 ‘나가기’버튼을 누르세요!!


게임을 꺼버리고 다시는 오지 말라구요? 정녕 그것밖에 없는 건가요?

실제로 <스탠리 우화>엔 스팀 도전과제를 지원하고 있으며 과제 중에 5년 동안 게임을 중단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상정하여 만든 과제가 확실하고 또 이 게임같지 않은 게임의 의도 중 하나이기도 하지요.

실제로 나레이터가 ‘기획의도’라는 이름으로 플레이어에게 자기가 원하는대로 행동하길 강요하고 플레이어에게 즐거움 보다는 짐만 지어주는 행동을 보면 할 일만 많고 재미없는 양산형 게임 메타를 꼬집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단지 ‘게이머에게 해야 할 것만 일방적으로 쌓아주고 재미없는 게임은 그냥 꺼버리고 하지마라’라는 식으로만 이해한다면 ‘너희가 이런 시장을 만들었어, 하기 싫으면 하지마!!’ 라는 투정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이 게임을 끌 수는 없습니다.


게임이라는 것은 몇 시간, 경우에 따라서는 수십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다른 이의 인생을 그만큼 구속해 놓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 따위를 도대체 무엇 때문에 만든단 말입니까?
-센스이 이즈루(기가도쿄 토이박스)

게임은 ‘유일한 양방향 미디어’입니다.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와 게이머가 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 무한한 가능성의 대화를 하는 곳이죠.

서로가 없이 성립될 수 없는 이 디지털 대화의 무대에서 이전 게임들이 생각하던 과제나 보상 같은 요소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어떤 대화를 할 수 있는가 또 이런 표현은 게임이 아닌 수단으로는 절대 해낼 수 없다는 것’이 <스탠리 우화>를 만든 이유이며 진짜 의미인 것입니다.

스태린 우화 울트라 디럭스 확장판

<스탠리 우화>에는 제가 언급한 루트 외에도 게이머와 개발자 사이에 가능한 모든 대화를 시도한 수 많은 엔딩들이 더 숨어 있습니다. 게다가 2019년 올해에는 더 많은 실험과 엔딩이 추가된 울트라 디럭스 확장판이 한 번 더 출시 될 예정이지요.

개발하는 게임이 조금 재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겐 돈과 시간과 감각이 항상 최적으로 주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이 우화 속 나레이터처럼 게임을 만들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아직 경험이 부족할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 게임의 제목이 왜 우화(Parable) 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게이머와 개발자는 언제나 같은 곳을 쫓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이 우화 속에서 플레이어와 나레이터가 함께 공감하는 찰나의 순간입니다.

게이머와 개발자는 언제나 같은 곳을 쫓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이 우화 속에서 플레이어와 나레이터가 함께 공감하는 찰나의 순간입니다.

게이머와 개발자는 평행선이지만 그 상반되는 역할에도 불구하고 게이머와 개발자 모두 최고로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같은 이상향을 쫓고 있습니다.

설마 그것이 꿈과 같아도. 환상이라 불릴지라도. 경제 논리에 쫓겨 자본주의에 먹힌 물건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몇 번의 실패를 넘어서라도 게임을 만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옆에는 언제나 같은 곳을 보고 있는 게이머들이 있으니까요.


박지균

박지균

손가락을 마음대로 컨트롤하기 시작할 때
숟가락 쥐는 법보다
게임패드 잡는 법을 먼저 배운 이펙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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