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30 NC 다이노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야구단이 있는 회사에서 다른 팀을 응원하는 야구팬의 일상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마치 엔씨소프트 직원이 퇴근하면 맨날 아제*스로 떠나는 듯한…그런 느낌적인 느낌일까요? ㅋ_ㅋ

어린 시절부터 일편단심 해바라기처럼 LG만을 응원했으나 엔씨인이 된 뒤 야구팬으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바위처럼 흔들리고 말았다는 그!  구단주와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기도 하는 상황에서, LG팬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란 결코 쉽지 않아 보이는데…

다이노스 크리에이터 이정현 대리의 웃픈(?) 사연을 지금부터 들어 보실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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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잠실 야구장에 출근 도장을 찍다

94년, 저는 LG트윈스의 팬을 자처하는 어린이였습니다. 솔직히 그때 제가 뭘 알았을까요. 그냥 잘하는 팀을 좋아했던 거지요…

세월이 흘러 기억이 많이 무뎌졌지만, 1994년 한국 시리즈 4차전에서 김용수 선수가 마무리로 등판해 승리를 확정지었던 그때 그 모습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그땐 정말 몰랐어요. 2002년 이후 10년 간의 암흑기를 거치며 ‘내가 왜 놓지도 못할 이 팀을…ㅠ_ㅠ’ 이라고 한탄하게 될 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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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봐도 가슴이 찢어지는 2002~2011 순위 

10년의 암흑기를 거치면서 LG 팬들은 다른 팀 팬들에게 조롱 아닌 조롱(?)의 대상이 됩니다.  ‘엘롯기’나 DTD(내려갈 팀은 내려간다ㅠ) 등의 신조어가 이때 등장했고, 시즌 초반 잠깐 상위권에 올라가도 ‘DTD는 과학입니다.’라는 조롱 섞인 예언이 현실이 되는 아픔을 몇 년간 겪으며 팬들도 어느새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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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성웅은 <무릎팍 도사>에서 이런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한때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KIA는 2009년 조범현 감독(현 KT위즈)의 지휘 아래 한국 시리즈 우승, 같이 비밀번호 찍던 롯데는 로이스터 감독 부임 이후 3년 연속 가을 야구에 진출하는 성과를 보이며 멀어져 갔습니다. (안 돼~가지 마~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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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화백 불암갑은 이러한 상황을 꼬집는 엘롯기 아일랜드 편을 남깁니다.

(출처: 네이트 스포츠 카툰 ‘불암콩콩코믹스’) 

 
2011년 12월, 엔씨소프트 입사 후 처음 맞은 프로야구 시즌을 맞이해 59명의 동기 중 단 ‘한 명’뿐이던 또 다른 LG 팬과 함께 잠실 야구장에 출근 도장을 찍기 시작합니다. 응원석의 신 나는 분위기와 가까운 거리의 홈 팀을 응원하는 재미에 푹 빠졌던 시기였더랬죠. 물론 성적에 대한 욕심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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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러했다

사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우승은 커녕, 가을 야구 진출도 어려울 거라 생각한 게 사실이었습니다. -_-a 야구장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건 8회가 끝나고 다같이 부르던 응원가나, 정말 가끔 터지는(…) 끝내기 안타 이후 종합운동장 역까지 이어지던 응원가 메들리였으니까요.

# 다이노스의 1군 데뷔, 그리고 10년만의 가을 야구

2013년, 다이노스는 퓨처스 리그르를 압도적으로 평정하고 1군 리그에 데뷔하게 됩니다. 마산 홈 개막전부터 시작해서 잠실에서 LG를 상대로 거둔 역사적인 첫 승리, 그 후에도 있었던 수많은 ‘최초’의 기록들.

자연스럽게 회사 내에서도 야구의 인기가 높아졌고, 시합이 있는 날은 식당 TV에서 야구 중계를 보는 게 당연한 일이 됐습니다. 다이노스의 공격 이닝이 끝날 때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일어나는 광경도 더 이상 특별하지 않게 됐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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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노스 1군 무대 첫 승리의 현장에서 찰칵! 

회사에서는 종종 티켓을 지원해 줬고, 저는 동료들과 함께 잠실, 목동, 인천까지(…) 찾아가서 경기를 즐겼습니다. 잠실에서 LG를 상대로 시합을 할 때면 ‘누가 이기든 양쪽 다 잘해라.’라는 입장에서 응원을 했고, 시합이 끝나면 근처 식당가를 습격해 음주를 즐기며 그 날의 시합을 복기하곤 했습니다. (*이 기회를 빌어 매번 힘써 주시는 총무팀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_^)

다이노스는 시즌 초반 어려움을 겪었으나, 뒤로 갈수록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7위라는 나름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고, 대략 이 때쯤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엔씨소프트 다니는 사람들은 다 NC다이노스를 응원하나요?”

저는 (속으로) 외쳤습니다. 여전히 내 마음속 첫 번째 팀은 LG트윈스!! 라고요. (구단주님 죄송여 =ㅁ=) 특히 다이노스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2013년 시즌 후반기에는 LG 역시 화제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다름아닌 10년 만의 가을야구 진출 가능성 때문이었죠.

5월 22일 삼성 전 이후 극적인 반등에 성공한 LG는 많은 야구팬들의 주목을 받았고(가을 야구 하나? vs 어쨌든 내려갈 팀은 내려 간다…), 그 와중에 여기저기서 LG 팬임을 고백하는 ‘엘밍아웃’을 하는 사람들도 나타나곤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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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나도 그 맘 알아여…

리그 최종 전 당일까지 안심할 수 없었던 치열한 순위 싸움은 두산을 상대로 한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정규리그 2위, 플레이오프 직행을 확정지으며 그렇게 마무리 됐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두산에게 탈탈 털리고 말았지만요…

다음주 월요일에 출근하니 플레이오프 4차전, 두산 오재일 선수의 그라운드 홈런을 바라보며 나라 잃은 표정을 지었던 제 얼굴이 카메라에 잡혀 다음날 동료 분들에게 위로를 듣기도 했습니다. (경기 하이라이트 보는데 제 얼굴이 나와서 깜짝 놀라셨다고…)

# 공룡의 거침없는 질주, 그리고 첫 가을 야구

첫 시즌을 그렇게 보내고, 길고 길었던 오프 시즌을 거쳐 드디어 다시 시작된 야구 시즌. 다이노스는 시즌 초반부터 쭉쭉 치고 나가며 순항했지만, LG는 시즌 초반 거짓말처럼 어려운 시간을 겪어야 했습니다.

DTD라고 놀리는 다른 팀 팬들에게 ‘이제 더 내려갈 곳도 없다.’고 한숨 쉬며 대답했던 가슴 아픈 시기였지요. 시즌 초 ‘올해는 시즌 티켓이라도 끊을까 ^_^’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제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욕심은 만악의 근원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매일같이 곱씹어야 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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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들과 함께 했던 마산 개막전 경기 원정

하지만 또 다시 기적 같은 반등과 함께 준 플레이오프 진출…상대는 바로 다이노스였습니다. 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과연 경기장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잠실 구장에 도착했고, 그곳은 LG 팬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날은 겉으로 티를 내지 않고 얌전히 경기만 보고 왔으나, 다음날 4차전에서는 자제가 안 되더군요!  😈 응원가를 신 나게 따라 부르며 플레이오프 진출을 마음껏 자축하고 왔습니다. 더불어 3년 동안 다녔던 잠실 구장에서 처음으로 ‘홈 어드밴티지’를 제대로 느꼈지요.

나중에 다이노스 데이 행사 때 이호준 선수에게 물어 보니 ‘그렇게까지 상대 팀의 응원에 압도되었던 적은 없었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아마도 그때의 충격(?)으로  2015 시즌 시작 전에 다이노스 응원가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 다이노스의 시작과 함께한 ‘진짜’ 야구 팬으로서의 삶

돌이켜 보면 ‘진짜’ 야구 팬으로서의 삶은 엔씨소프트에 입사하면서부터였다고 생각합니다. 시즌 중에는 잠실 야구장에 매일같이 출근 도장을 찍었고, 회사에서 만난 동기들과 함께 야구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이 기회를 빌어 외칩니다. 11기 여러분 사랑합니다 ^0^)

시기상으로 다이노스의 창단과 묘하게 맞물리기도 하죠. 팀의 탄생부터 시작해서 1군에서의 혹독한 신고식, 성장, 그리고 거짓말 같은 2년차의 가을 야구 데뷔, 더더욱 거짓말 같은 리그 1위 질주까지 지켜보며 팀의 모든 역사를 온전히 내 기억에 담아둘 수 있게 된 걸 생각하면, 이것 역시 내가 응원하는 팀에 대한 애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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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다이노스는 단순히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팀’ 이상으로 저에게 각별한 존재가 되었네요. 저 뿐만 아니라 야구를 좋아하시는 많은 분들이 원래 응원하던 팀이 서로 다를지라도, 다이노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좋은 건, 내가 응원하는 팀이 졌을 때의 답답함을 상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겁니다. 응원하는 두 팀이 모두 이기면 제일 좋고, 두 팀 중 한 팀만 이기더라도 ‘그래 한 팀이 이겼으니 됐어.’라고 위안하는 거죠. (2013년 시즌 초반처럼 두 팀이 모두 부진에 빠져서 하루에 두 팀이 동시에 지면 스트레스가 두 배가 된다는 점은 함정…)

다이노스의 연고지는 마산이지만, 저희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 역시 또 다른 연고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응원하는 두 팀 모두 제 생활 터전(LG는 서울, 다이노스는 회사!)을 연고로 하고 있으니 야구팬으로서의 제 삶은 엄청나게 축복받은 게 아닐까요?   😀


이정현

이정현

시즌권을 끊어서 주말에’만’ 경기장에 가는
사치를 부리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회사 생활 4년 차의 독거 노인 (예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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