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22 커리어

그 프로그래머가 책을 읽는 법


독서가 취미를 넘어 생활이 되어버린 남자 엔씨소프트 지정환 팀장

대한민국 국민의 양대 취미는 음악감상과 독서라고들 합니다. 원서나 이력서 한 켠 ‘취미’ 란을 채우기에 그만큼 무난한 취미도 없죠.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연평균 독서량은 성인 1인당 9.2권(2013 국민독서실태조사, 문화체육관광부)으로, 이는 OECD 가입국 중 최하위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ㅜ_ㅜ. 이런 상황에서 정말 독서를 국민 취미라 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러나 여기, 독서가 취미를 넘어 생활이 되어버린 남자가 있습니다. 일 년에 몇 권의 책을 읽는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얼마나 많은 시간 읽었는지를 중시하는 사람도 있죠. 남들이 다양한 일을 할 때 자신은 책을 읽을 뿐이라는 겸손왕, 바로 엔씨소프트의 지정훈 팀장입니다.

컴퓨터 학원에 다니며 컴퓨터 공부에 매진하던 어린 시절을 거쳐 한성과학고와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진학한 순도 100% ‘공돌이’ 지정훈 팀장은 2015년 런칭 준비 중인 엔씨소프트의 신작 MXM에서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습니다. 학업부터 직업까지 너무나도 순도 높은 공돌외길인생인 그의 독서는 인문학부터 철학, 픽션부터 논픽션까지 장르와 카테고리를 가리지 않는다 해요. 몇 권을 읽었는지보다, 한 권의 책을 어떻게 기억하고 얼마나 많이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 여기는 지정훈 팀장. 겸손함으로도 숨길 수 없는 책 읽는 개발자의 독서 내공을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


배고플 때 밥 먹듯, 당연하게 읽기

독서가 취미를 넘어 생활이 되어버린 남자 엔씨소프트 지정환 팀장 2♦ 책은 얼마나 읽나?
작년에는 한 50권? 사실 정확한 권수를 세면서 읽지는 않아요. 한 권으로 보기 애매한 책들도 많고, 읽다가 이 정도면 다 본 것 같다 싶어 덮는 책들도 많죠. 일반적인 기준으로 주당 한 권 이상은 읽는 것 같아요.

♦ 언제부터, 어떠한 계기로 책을 읽게 되었나?
다짐하고 실행한 것은 아니었고요.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인쇄소를 하셨었는데, 어렸을 적 가게에 놀러 가면 한쪽 벽면 전체에 활자가 가득히 꽂혀있었죠. 무언가를 읽는 것이 어렵거나 힘들지 않았어요. 주변 사람들 영향도 컸어요. “올해는 겨우 백 권을 넘겼네”라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하이텔 SF소설 동호회에서 만난 친구들과 지금도 잘 지내고 있는데요, 이분들도 시간이 나면 책을 읽어요. 배고프면 밥을 먹는 것처럼 당연하죠.

엔씨라이브러리♦ 책은 주로 어디서 읽나? 서점? 집?
사실 대중은 없어요. 생각해보면 동선에 맞춰 늘 책이 있는 것 같네요. 화장실에 한 권, 침실에 한 권, 핸드폰 안에도 한 권, 가방에도 한 권 등등. 여러 가지 책을 동시에 병렬로 읽는 편이에요.

♦ 주로 어떤 장르의 책을 읽나? 지금도 SF소설을 주로 읽나?
SF소설을 안읽은 지는 오래되었어요. 장르는 가리지 않고 재밌을 것 같으면 다 읽죠. 몇 년 전부터는 매해 큰 주제를 정해놓고 책을 읽고 있어요. 예를 들자면 2014년에는 셰익스피어, 2015년에는 데카르트가 주제였죠.


주제별로 읽기, 2015년은 데카르트

♦ 주제별로 책을 읽는다는 것이 특이하다. 그렇게 하게 된 이유는?
‘오에 겐자부로’라는 일본 작가는 스승의 권유대로 3년에 하나씩 주제를 정해서 공부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흥미를 느꼈습니다.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전하기 시작했어요. 주제를 정한다고 해서 그 주제에 해당하는 책만 읽는 것은 아니에요. 모든 책을 다 읽지만 메인 주제가 있는 것뿐이죠. 대중없이 다 읽지만, 데카르트 위주로 읽어보자는 목표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네요.

♦ 읽어야 할 책을 사전에 리스트업하나?
중요한 서적들은 사전에 미리 정해두는 편이에요. 셰익스피어가 주제일 때는  4대 비극을 가장 먼저 쭉 읽었죠. 그 이후에는 절판된 책과 구하기 어려운 책을 제외한 뒤 하나씩 찾아보면서 흥미가 느껴지는 책을 고르죠. 과학적이거나 체계적인 방법으로 리스트업하지는 않아요. 기준은 오로지 재미입니다(웃음).

엔씨라이브러리 풍경♦ 이 많은 책을 모두 사 읽나? 아니면 엔씨 라이브러리? 가장 궁금하다
공공도서관과 엔씨 라이브러리를 가장 많이 이용해요. 제가 읽으려는 책 중에는 일반적이지 않은 것들도 많아서 라이브러리에 없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요, 이런 책들은 라이브러리에 있으면 좋겠다 싶을 경우 사서 분들에게 신청해요. 양심적으로, 이게 라이브러리에 있어봤자 나 혼자 읽겠지 싶으면 제가 사서 보고요. 하지만 나 한 명만 볼 것 같은데 비싸서 부담스러운 책은 가끔 양심을 외면하고 회사에 신청하는 유연성도 있습니다(웃음). 비싸다고 반려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는데, 제가 워낙 마이너한 책들을 신청하다 보니 사서 분들이 난감해 하시기는 하는 것 같아요.


권수는 중요하지 않다

♦ 책을 고르거나 할 때 아쉬운 점이 있었나?
제가 원하는 수준의 책을 찾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예를 들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제라고 하면, 중고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쉬운 책이거나 철학 전공자들이나 이해할 만한 아주 높은 수준의 책뿐이죠. 중간이 없어요. 저는 개론보다는 깊고, 전공보다는 가벼운 난이도를 원하거든요. 이해는 해요. 개론서나 전공서적밖에 없다는 것은 결국 그런 책을 읽을 다른 사람이 없다는 뜻이거든요. 읽을 사람도 읽힐 책도 없는 셈이죠.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모든 지식의 보고는 책인데, 왜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가’ 같은 말을 할 줄 알았다
‘피에르 바야르’라는 작가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책을 아시나요? 만약 ‘책을 읽었는데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으면, 그것은 책을 읽은 것인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 책이죠. 사실 인터뷰를 앞두고 책을 몇 권이나 읽느냐는 질문을 받을 거란 예상은 했어요. 하지만 저도 제가 정말 읽었다고 말할 수 있나, 이 숫자가 의미가 있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해요. 사실 많이 읽은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한 권을 읽어도 더 많이 생각하고, 더 오래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독서가 취미를 넘어 생활이 되어버린 남자 엔씨소프트 지정환 팀장 3♦ 일반적인 다독자들과는 접근 방식이 다른 것 같다
반만 읽어도 다 읽었다 느껴지는 책이 있고, 반을 읽었는데 내가 이걸 읽을 필요가 있나 싶은 책도 있어요. 어떤 책은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페이지의 어떤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결국 전부를 놓치는 경우도 있고요. 당연히 권 수는 의미가 없고,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법도 없죠. 인문 서적들의 경우에는 문장이 좋으면 문장을 읽는 재미로 책을 읽기도 하고요. 책마다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수 김광석은 라이브 공연 1,000회를 넘겼을 때 이런 소회를 밝힌 바 있습니다.

“조치훈 바둑 기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바둑을 이기려고 두진 않았습니다. 그저 돌 하나하나 정성 들여 놓다 보니 기성도 되고 명인도 됐지요.’ 저도 1,000회가 목표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매회 한 줄 한 줄 정성들여 쳤지요. 그러다 보니 1,000회가 되대요.”

무언가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잘 짠 계획도 중요하지만,  계획을 묵묵하게 지키는 꾸준함 또한 필요합니다. 마침내 취미를 넘어 생활이 되었을 때 진정한 ‘취미’라 부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독서가 생활이 된 지정훈 팀장의 말처럼 권수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단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더 많이 생각하고,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저도 머리맡에 두고 잠들 수 있는 책 한 권 가벼운 마음으로 구입해 보려 합니다. 여러분도 함께 해 BoA요. ( ͡° ͜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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