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07 내 인생의 게임

내 인생의 게임 #6 울티마 온라인

게임회사 사람들이 꼽는 ‘내 인생의 게임’은 무엇일까요?

내 인생의 게임, 이번엔  MMORPG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울티마 온라인’에 얽힌 추억을 소개할까 합니다.

처음 온라인 게임이라는 신세계를 접하고 전화비 폭탄(!)을 맞았다는 정진걸 대리의 웃픈 사연을 만나 보시죠~.  ( ͡° ͜ʖ ͡°)


때는 바야흐로 1990년대 후반, 당시 나는 초등학교 졸업 기념으로 부모님으로부터 56k 모뎀을 선물받고 인터넷이라는 세계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컴퓨터를 이용해서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보라는 의미로 모뎀을 사주신 거였지만, 어린 나는 컴퓨터를 그저 비싼 게임기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인터넷이라는 신세계를 접하게 해 준 56k모뎀

인터넷이라는 신세계를 접하게 해 준 56k모뎀

캡션 양식

마침 그 무렵 PC방이 주변에 하나둘씩 생겨 나면서, PC게임을 주로 즐기던 나와 친구들은 오락실에서 PC방으로 자연스레 놀이 공간이 바뀌었다.

용돈을 모아 PC방을 들락날락하며 바람의 나라, 리니지 등의 MMORPG를 플레이했었다.

아~바라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곳  ( ͡° ͜ʖ ͡°)_PC방

아~바라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곳  ( ͡° ͜ʖ ͡°)


당시 처음 접한 MMORPG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다른 세계에서 또 다른 ‘나’를 키우는 재미에 빠지자 헤어나올 수 없었다.

MMO라는 MMO는 다 섭렵하고 싶었는데, 그땐 인터넷 매체가 지금처럼 발달해 있지 않아서 게임 정보는 주로 월간 게임 잡지에 의존해야 했다.

PC를 너무 사랑해서 붙인 이름(?)이라는 월간 PC사랑 

PC를 너무 사랑해서 붙인 이름(?)이라는 월간 PC사랑


MMORPG의 시초로 불리는 ‘울티마 온라인’도 게임 잡지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모 잡지에서  울티마 온라인 플레이 후기를 여행기 형식으로 푼 기사를 연재했는데,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재미있어서 게임을 꼭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브리타니아는 평화롭습니다

오늘도 브리타니아는 평화롭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단골 PC방에서 울티마 온라인 패키지가 진열돼 있는 걸 발견했다. 부푼 마음으로 PC방 PC에 클라이언트를 설치하고 패치를 받기 시작했는데, 속도가 느려도 너~~무 느렸다!

결국 패치만 받다가 돈이 다 떨어져서(…) 게임은 플레이해 보지도 못한 채 아쉬운 마음으로 집에 가야 했다. (당시 PC방은 1시간에 무려 2천 원!)

여기 속 터지는 초딩 하나 추가요_버퍼링

여기 속 터지는 초딩 하나 추가요


집에서 울티마 온라인을 하려면 ‘게임타임’이라는 정액제 쿠폰을 구매해서 계정에 등록해야 했다. 게임타임을 사기 위해 양말 안에 돈을 숨기고 험난한 용산 던전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드디어 우여곡절 끝에 게임에 접속! 일본식 RPG 게임에 길들여져 있던 나는 기존에 학습된 행동으로 NPC에 다가가 비비적대며 마우스 클릭과 스페이스키를 연타하며 메뉴를 불러오려고 했다. 하지만…메뉴는 보이지 않았다.

왜 메뉴가 안 보이냐고!_주토피아 짤

왜 메뉴가 안 보이냐고!


몇시간을 낑낑댄 결과, 울티마 온라인은 직접 채팅창으로 말하듯이 텍스트를 쳐야만 NPC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게임이었다. 이럴 수가…이는 엄청난 컬쳐쇼크였다.

울티마 온라인은 몬스터를 잡아 경험치를 얻고 레벨을 올리는 방식이 아닌, 내 행동에 맞는 스킬을 조합해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게임이다. (마법을 쓰면 지능이 오르고, 땅을 파면 힘이 오르고, 화살을 쏘면 민첩성이 오르고…)

스킬은 총 0부터 100까지 수치가 있는데, 해당 스킬이 100이 되면 해당 스킬에 대한 ‘Grand Master’라는 영광스런(?) 칭호를 부여받게 된다.

Begging 지수 100이니까 ‘그랜드 마스터 거지’ 되겠습니다

Begging 지수 100이니까 ‘그랜드 마스터 거지’ 되겠습니다


스킬 종류는 매우 다양했다. 전투 스킬은 물론, 대장 기술과 목공술 등 생산 스킬도 여러 가지였다. 또한 그 당시 다른 게임에서는 볼 수 없던 하우징 시스템이 잘 구비돼 있어 집을 꾸미는 재미도 쏠쏠했다.

생산 스킬을 100까지 올린 뒤 아이템을 만들면 일정한 확률로 제작자의 아이디가 아이템에 새겨지는데, 이를 본 나는 토니 스타크처럼 군수업계의 거물이 되어 내 이름을 명품 브랜드처럼 알리고 싶은 꿈에 부풀었다. 그래서 매일같이 탄광에 가서 철광석을 캤다…

이상은 토니 스타크인데 현실은...

이상은 토니 스타크인데 현실은…


매일 광산에 출근해 하루 종일 고단한 삽질을 하고, 그러다 동료 광부들과 친해지고, 간간히 쳐들어 오는 머더러(PK)들을 동료들과 힘을 합쳐 곡괭이로 물리치며 치열한 하루를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치열하게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간접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땐 몰랐어요 직장생활이 철광석 캐는 것만큼 힘든 줄 _ 미생_장그래

그땐 몰랐어요 직장생활이 철광석 캐는 것만큼 힘든 줄


길드 사람들의 도움(ex_은행대출)을 받아 집을 사게 되었을 때의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실제로 집을 사도 이런 기분이 들까?  현실에서도 그런 경험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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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집 마련, 그래도 게임에선 해 봤어요


울티마 온라인을 처음 접했을 때는 마침 방학 시즌이어서 충분한 시간을 게임에 할애할 수 있었다.

게임에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주변에서는 왜 집 전화가 안 되냐는 불만이 쇄도하곤 했다. (*당시엔 집 전화와 인터넷을 동시에 쓸 수 없었다. 아, 옛날이여…)

아랑곳하지 않고 게임에 빠져 지낸 결과, 전화비 크리티컬을 맞아 무려 백 만 원 대의 전화비가 청구되었다. 그때 부모님의 망연자실한 표정이란…

전화비가 배..백만 원!? _ 짤

전화비가 배..백만 원!?


늦었지만 이 자리를 빌어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 전하고 싶다. 어머니, 아버지, 불효자는 웁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ㅇ벗...짤

뭐라 드릴 말씀이 ㅇ벗…


전화비 폭탄 사건을 빌미로 동네에 ADSL이 서비스되자마자 설치하는 혜택(?)을 누리게 되었고, 더더욱 신이 나 통신비 걱정 없이 게임을 하다가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수차례 당하기도 했다.

확장팩이 나오면서 게임 시스템이 바뀌었고, 다른 온라인 게임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길드 사람들은 하나둘 울티마 온라인을 떠났다. 나라고 다를 쏘냐.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오그리마 지붕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다른 게임으로 갈아타서 미안합니.. 짤

다른 게임으로 갈아타서 미안합니..


지금은 추억이 된 게임이지만, 울티마 온라인은 그만의 분명한 매력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월등히 센 영웅이 몬스터를 잡아 레벨업을 하며 남들보다 강해지는 게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울티마 온라인은 스탯과 스킬의 제한이 있어 캐릭터의 능력과 장비로 다른 캐릭터를 압도하기 어려웠다. 난세의 영웅이 아닌 소시민으로서 게임을 플레이할 때, 또 다른  세계의 내가 새로운 일상을 경험하는 기분이 들곤 했었다.

게임 속 캐릭터는 또 다른 나 자신

게임 속 캐릭터는 또 다른 나 자신


음악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게입 도입부에서 흘러나오는  ‘Stones’는 울티마 5에서 게임 내 이벤트를 통해 멜로디 일부분이 공개됐으며, 추후에 곡으로 완성되었다.

이 곡이 주는 은은하고 감미로운 분위기는 게임과 조화를 이루어 울티마 시리즈를 대표하는 BGM이 되었다. 지금도 이 음악을 들으면 그 시절 울티마 온라인을 즐겼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의 존재를 일깨워 준 울티마 온라인.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다른사람들과 가상 세계에서 웃고 떠들며 싸우고 여행했던 기분 좋은 추억들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정진걸

정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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