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02 게임 에세이

게임 에세이 #3 주호민_혹시 나도 게임 불감증?

나도 한 땐 게임 덕후였어

내가 게임을 처음 한 건 초등학교 때였다. 게임을 무척 좋아하는 사촌 형이 있었는데, 재믹스부터 시작해서 패미콤, 메가 드라이브, 슈퍼 패미콤, PC엔진 등등… 집에 없는 게 없었다. 주말이면 사촌 형네 놀러 가서 게임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 사촌 형은 <드래곤 퀘스트>나 <파이널 판타지> 같은 RPG 게임의 레벨 올리기 노가다(!)를 나에게 시켜놓고 학원엘 갔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주구장창 레벨 올리기에 몰입했고, 형은 내가 레벨을 올려놓으면 흡족해 하며 스토리를 진행했다. 나는 형 옆에서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앞으로 어떤 모험이 펼쳐질 지를 기대했다. 일본어도 모르고, 공략집 같은 것도 없었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엔딩에 다다랐을 땐 눈물이 앞을 가리면서 감격의 탄성이 나올 정도였다.

그 후 우리 집에도 PC가 생겼고 나도 명작을 접할 기회가 생겼다. 특히 <대항해 시대2>는 잊을 수 없는 게임이었다! 항해에 참고하려고 사회과부도를 PC 옆에 펼쳐놓곤 했으니까. 그 시절 세계지리를 열심히 공부한 덕일까? 지금도 지중해 지도 정도는 눈 감고도 척척 그릴 수 있다. 부끄러운 썰을 하나 풀자면, <대항해 시대>의 OST를 직접 연주하고 싶어서 싸구려 피아노까지 샀었다. 😳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자마자 홀랑 팔아버려서 결국 흑역사로 남긴 했지만. 나는 그 정도로 게임에 푹 빠져 있었다.

우리 동네에 PC방이 처음 생긴 건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 대한민국 인터넷 보급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게임은 <스타 크래프트>였다. 2000년의 <디아블로 2>, 전역 후 2005년에 접한 <월드 오브 워 크래프트>까지. (남자라면 호드!! 😎 ) 나는 여타의 대한민국 남성들과 다르지 않게 게임과 함께 자라온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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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패로도 영언히 게임 업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햇는데 그랫능데…

 

그런데 갑자기…게임이 재미 없어졌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상하게 게임이 재미가 없어졌다. 어떤 게임을 해도 한 시간 정도 플레이를 하면 흥미가 뚝 떨어졌다. 신 나서 장만한 콘솔 게임기도 지금은 두 살배기 아들의 유아용 DVD 플레이어가 돼 버렸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일이 바빠서? 그건 아닌 것 같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야 말로 게임이 가장 재미있다는 건 게이머라면 누구나 공감할 얘기 아닌가! 이유를 찾지 못해 주변에 물어보니 돌아오는 대답들은 한결 같았다. “나이 먹어서 그래.”

정말 나이를 먹어서 게임에 시들해진 걸까? 그러던 어느 날, 어렸을 때 했던 <드래곤볼 Z> 카드 배틀 게임을 해 봤다. 그런데 이게 웬~걸!? 게임을 하는 동안은 유체 이탈을 한 것마냥 몰입했다. 간만에 느껴 보는 재미였다. 어라, 나 게임 불감증인 줄 알았는데 아니잖아? 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마저 나왔다.

그러다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 느끼는 재미는 <드래곤볼 Z>를 처음 접했던 초등학생 시절의 나, 그때 그 시절의 추억과 재미가 모두 합쳐진 것이었다. 마치 얼마 전 불었던 <무한도전>의 ‘토토가’ 열풍처럼 말이다. 실제 그 시절의 음악이 어마어마하게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 시절 그 음악을 들으며 자랐던 우리의 추억이 떠올라서 웃음도 나고 눈물도 글썽이게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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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겜덕 인생에 적신호가 켜졌다?!

나는 이렇게 게임 불감증을 극복했다

일종의 진리와도 같은 사실을 깨닫자 슬퍼졌다. 앞으로 영영 새로운 게임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어쩌지? 그런데 아들의 유아용 DVD를 플레이어에 넣으면서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금방 자란다. 아들 녀석은 내가 그랬듯이 무수히 많은 게임을 하며 자랄 것이다. 아들과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낄낄 대며 조이 패드를 잡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렇구나! 아들과 새로운 추억을 만들면 되겠구나!

그 순간 마음이 편해지며 즐거움도 되살아 나는 것 같았다. 아들과 대전 액션 게임을 하며 ‘얍삽이’의 무서움을 알려 줘야지. RPG 레벨 모으기로 스펙 쌓기의 지난함을 훈련시킬 것이고, 또 레이싱 게임을 통해 안전 운전을 가르칠 것이다. 남편과 아들이 그러고 있으면 아내가 도끼눈을 뜨겠지만 다행히 아내도 게임을 좋아한다. 특히 <심즈> 마니아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게임이지만…(엔딩이 없는 게임을 도대체 왜 하냐고! 😯 )

어쨌든 <심즈>를 통해서도 아들에게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를 테면 치트 키 없는 인생이 얼마나 고단한 지에 대해서…(나는 왜 항상 이런 쪽으로 흘러가는 걸까?) 이제 나는 더 이상 게임 불감증을 가지고 고민하지 않는다. 조이 패드 두 개를 준비해 놓고, 아들이 자라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No Game, No Life! 게임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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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민

만화 만큼 게임에도 조예가 깊은 만화가. 2005년 본격 군대 체험 웹툰 <짬>으로 데뷔, 2010년부터 네이버에 3년 동안 연재한 <신과 함께>로 ‘믿고 보는 작가’ 대열에 올랐다. 최근에는 올레 마켓 웹툰에 육아 체험기 <셋이서 쑥>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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