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24 리니지2

ALL ABOUT 리니지2 #1

리니지2 기획자 김형진 상무 인터뷰

소포모어 징크스를 파.괘.하라

1998년 성공적으로 런칭한 리니지. 그 무렵 게임은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닌 ‘콘텐츠’ 로서 주목받기 시작하였고, 엔씨소프트는 리니지로 MMORPG 뿐 아니라 한국 게임계 전반에 지각변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리니지의 열기가 여전히 뜨겁게 타오르던 2004년, 엔씨소프트는 두 번째 작품을 앞두고 큰 도전의 서막을 올리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3D.

김형진 상무는 리니지 2에 3D라는 승부수를 걸었습니다. 전무후무한 3D MMORPG의 등장에 게임업계는 다시 세차게 요동쳤고 리니지2 발매 이후 엔씨소프트는 한국의 대표 게임제작사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한국 게임 역사상 가장 성공한 게임의 후속편을 낸다는 것, 그 의미와 무게는 과연 어떠한 것이었을까요…? 리니지2의 기획자였던 김형진 상무에게 그 ‘무모한’ 도전에 대해 들어 보았습니다.  🙂



너무 흥한 전작의 ‘거대한 무게’

리니지가 세상에 나왔을 때 우리 중 그 누구도 그만큼의 큰 성공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 당시 유행하던 패키지 게임은 보통 몇 개월 안에 수명이 다해 잊혀지기 일쑤였으며, 온라인 게임의 역사라고 해봐야 고작 시작된지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리니지의 흥행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불안에 떨었다. 흥행에 대한 예측 자체가 불가하니 흥행의 정도와 유효기간 또한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표면상으로 여전히 잘 나가던 리니지를 두고 후속작을 기획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당시 사내에서는 수많은 팀이 각자 다양한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자연스럽게 팀과 팀 사이에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었다. 우리 팀이 리니지 2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회사 내부에서도 말이 많았다. “굳이 지금 리니지2를 개발해야 하나”, “왜 이 팀에서 개발을 하는가” 같은 이야기도 나왔다. 돌이켜 보면 하루하루가 고비였고, 고민과 번뇌 때문에 어찌할 줄 몰랐던 때도 있었다. 리니지는 한국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MMORPG였다. 리니지2는 그 리니지의 후속작이다. 모습이 크게 다를 수 없다. 우리의 가장 큰 고민도 이 지점에 있었다.

리니지가 아직도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그 후속작의 이름을 걸고 어떻게 다시 성공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리니지를 닮았으면서도 리니지와는 다른, 리니지2만의 매력을 가질 수 있을까? 

리니지 2 포스터


잠 못 드는 밤 리니지2는 탄생하고

먼저 기존의 리니지1 개발팀 일부를 뽑아서 팀을 구성해나갔다. 그들이 기존 유지보수 작업을 진행하며 리니지2의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후 계속해서 팀원을 충원했다. 그럴듯 하게 팀 체제를 갖춘 후 아이디어를 내며 이런저런 고민을 해봤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리니지2를 만들겠노라고 호기롭게 말이야 했지만, 전편의 큰 성공이 늘 마음 한 구석 부담으로 남아 있었다.

2000년 여름 즈음,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를 마칠 무렵 훈련소에 입소했다. 야간 보초를 서는데 피곤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해서 메모장에 리니지2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한 것이, 일단 회사에서 한 발짝 떨어져 보니 회사 안에서 떠오르지 않던 각종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나왔던 것이다. 세계관부터 스토리텔링 방식 등 게임의 기본 설계를 기록했는데, 나와서 다시 읽어보니 리니지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무엇이었다. 드디어 실마리가 잡힌 것이다. 이 메모가 리니지 2의 기본 뼈대가 되었다. 회사로 돌아와 훈련소에서 적은 메모를 그대로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리니지2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리니지2는 전작을 뛰어넘는 게임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다른 게임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결국 리니지 2는 전편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것부터 시작했다. 컨셉부터 세계관까지 모두 새로 구성해나갔다. 원작의 이름만 빌어 온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가기로 한 것이다.

리니지2 기획자 김형진 상무 인터뷰 2


‘살아남은’ 게임, 리니지2

당시에는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 진행하면서 그 중 가장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게임을 론칭하는 형태로 회사가 운영되고 있었다. 물론 이게 무슨 슈퍼스타NC도 아니고, 서바이벌 프로그램처럼 하나의 프로젝트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규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게임이라는 콘텐츠의 특성상 개발을 시작한다고 무조건 완성이 되고 론칭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회사 입장에서도 리니지 후속작의 성공 여부가 중요했던 만큼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프로젝트를 시작해 나간 것이다.

당시 가장 큰 프로젝트는 리니지2와 리니지 포에버였다. 이 두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되며 내외부적으로도 주목을 많이 받았다. 같은 이름에다가 기본적인 게임 형태도 비슷한 점이 많았다. 회사에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직원들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경쟁의식이 생겼을 것이다.

리니지 2와 리니지 포에버는 2002년 카멕스에서 동시에 공개되었다. 그리고 쇼가 끝나고 얼마 후, 리니지 포에버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 리니지 2에 ‘경쟁에서 이긴’ 또는 ‘선택받은’ 등등의 타이틀을 붙여주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 그것은 승패 같은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리니지 2는 이긴 것이 아니었다. 그저 접히지 않고 계속 개발할 수 있었던 것 뿐이다.

우리는 오로지 게임을 완성시키는데 온 정신을 쏟고 있었다. 리니지 2는 단지 그 안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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