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10 아이온

ALL ABOUT 아이온 #1 Do or Die

현 엔씨소프트 CTO, 부사장 & 아이온 개발 총괄 우원식 부사장

우원식

현 엔씨소프트 CTO, 부사장 & 아이온 개발 총괄

대한민국 3대 고수로 명성을 떨친 ‘코딩 괴물’

  2000년대 중반은 와우의 공습과 타 장르 게임의 선전으로 국산 MMORPG 게임이 최악의 위기를 겪었던 시절이다. 출시를 앞둔 아이온마저 무너지면 끝이라는 압박감을 엔씨소프트뿐 아니라 모든 게임 제작사가 공유하고 있었다. 리니지 시리즈의 연이은 성공은 엔씨소프트의 MMORPG를 한국의 MMORPG 시장과 동일시하게 했다.

아이온은 하늘을 납니다.

엔씨소프트의 세 번째 작품인 아이온이 처음 공개되는 순간, 비행 능력을 탑재한다는 김택진 대표의 한 마디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침체되어 있던 한국의 게임 시장에 희망의 빛이 들었다. ‘아이온이라면 가능하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그렇게 등장한 아이온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성공을 거두었다. 론칭 이후 무려 160주 연속 국내 PC방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거기에 대한민국게임상과 독일 게임스컴의 최고 온라인 게임상, 아시아 온라인 게임 어워드 대상 등을 휩쓸며 국내 MMORPG 게임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절망과 희망 사이, 아이온의 극적인 성공 뒤에는 현역 프로그래머 시절 한국의 3대 고수로 명성을 떨쳤던 ‘코딩 괴물’ 우원식과 그의 팀원들이 있었다. 아이온 개발 당시 PD였던 우원식 현 엔씨소프트 CTO, 부사장에게 아이온 개발기를 들었다.


현 엔씨소프트 CTO, 부사장 & 아이온 개발 총괄 우원식 부사장 2


서자 출신
아이온의 서바이벌

아이온의 시작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이후 혹독한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 다른 곳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MMORPG 게임에 대한 전망 자체가 비관적이던 시절이었다. 아이온까지 망하면 끝!이라는 것은 업계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아이온이 내부의 기대를 받는 게임이었던 것은 아니다. 엔씨소프트의 ‘코어’라 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아무래도 리니지 시리즈였으니까.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리니지는 적자, 아이온은 서자였다. 그만큼 지원이나 관심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2005년 말, 아이온의 기본 틀을 가지고 내부 직원들과 기자들 몇 명을 대상으로 비공개 테스트를 했는데 결과가 썩 좋진 않았다. 테스트에 대한 김택진 대표님의 답은 이러했다.

“E3 쇼에 나가서 반응 좋으면 계속 진행하고, 아니면 이 프로젝트는…”

아이온이 맞이한 위기이자 기회였다. 하지만  MMORPG 장르가 워낙 고전을 면치 못하던 시기였으므로 회사는 신중하게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E3 출품을 목표로 전력을 쏟았다. 게임 업계에서 론칭하는 것을 수능이라고 보면, 그 전에 게임쇼에 나가는 건 모의고사 같은 느낌이다. 모의고사 점수가 안 되면 공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니, 모두가 절박해질 수 밖에 없었다.

E3에서 아이온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우려와 달리 반응이 아주 좋았다. ‘이제 살았다’ 싶었는데,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터졌다. 게임 소개용으로 넣은 비행 연출 화면의 반응이 좋았는데, 문제는 사람들이 그것을 실제 게임으로 오해를 한 것이다. 질문이 빗발쳤고, 행사 현장에서 대표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온은 하늘을 납니다!”

현장에 온 사람들은 술렁거렸고, 우리는 큰 충격을 받았다…컨셉에 불과했던 비행 콘텐츠를 실제로 적용해야 하는 숙제가 생긴 것이다. 기획을 전면 수정하고, 프로그래밍도 처음부터 다시 체크해야 했다. 오해에서 비롯한 해프닝이었지만, 당시 구현했던 비행 능력은 이후 아이온을 대표하는 콘텐츠가 되었다.

아이온을 대표하는 콘텐츠, 비행능력

네가 날아야 우리가 산다! 날개야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날자꾸나!


리니지와 와우 사이

아이온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달라야 했다. 엔씨의 게임을 한 마디로 정의해 보자면, 리니지는 프로그래머가 만든 게임이고 리니지 2는 아트 기반의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정의한 아이온은 잘 기획된 여러가지 콘텐츠가 조화를 이루는 게임이었다. 리니지가 게임 안쪽을 비움으로써 유저에게 자유를 주었다면, 아이온은 다양한 퀘스트와 콘텐츠를 채워넣으며 스토리 체험에 중점을 두었다.

아이온 개발 과정에서 와우와 차별화하겠다며 의도적으로 와우를 무시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와우를 통해 비주얼 요소나 퀘스트를 엮어 내는 노하우 등을 많이 배운 것이 사실이다. 아이온은 리니지2와 와우의 중간 정도로 방향성을 정했다. 평소에는 개인 혹은 소그룹 별로 퀘스트를 진행하고 던전을 돌면서 콘텐츠를 소비하지만, 전쟁이 발생하면 서로가 힘을 합쳐 상대 종족을 막아야 하는 형태로 풀어 냈다. 전쟁터를 따로 구성하고 종족간의 대결을 유도했다.게임의 형태 또한 RvR(Realm vs Realm) 혹은 PvPvE(Player vs Player vs Environment) 형태로 3각 대립 구조를 가지는 식으로 차별화했다.

결과적으로 아이온은 리니지가 하지 못했던 콘텐츠 기반의 게임을 구현해 냈으며, 와우의 시스템을 보완해 사용자에게 더 깊은 몰입감을 주었다. 기존의 굵직한 작품들을 계승하면서, 사용자가 더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대중성을 갖춘 게임이었다. 요컨대 아이온은 당시 절정에 달한 엔씨소프트 개발 기술의 정수가 담겨있는 작품인 것이다.


아이온 개발자가 말하는 아이온 뒷담화 # 1.
  • 개발하기 까다로운 게임을 기획할 때, 프로그래머와 기획자 사이에는 갈등이 생긴다. 그런데 아이온 개발팀은 기획자가 요구하는 것을 어떻게든 게임 상에 구현시켜주었다. 프로그래머들의 뛰어난 능력이 기획자에게 많은 힘을 실어 준 것이다. 사실 프로젝트를 이렇게 이끌어 갈 수 있었던 것은 우원식 부사장님의 공이 크다. 국내 최고의 프로그래머가 프로젝트를 리드했으니, 프로그래머들은 그 어떤 기획이라도 ‘구현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아니었나 싶다. (기획자 이XX)
  • E3에서의 반응이 좋아 ‘이제 살았다’ 싶었는데, 비행 능력이 공지(!)돼 버렸으니 기획팀에서는 비상이 걸렸었다. 어느날 PD님이 저녁을 사주시겠다고 나를 불렀다. 평소에 그렇게 구박하시더니 웬일로 스테이크를 사 주신단다. 그 때 PD님이 고기를 썰고 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레벨 디자인 하자. 2주 줄게.” 아웃X 스테이크 한 번 얻어 먹고 2주간 집에 거의 못 들어갔었다. (기획자 민XX)
  • 2005년에 내부적으로 평가가 좋지 않았을 때도 있었다. 당시 삼성동 사옥을 짓던 중이었는데, 이사 일정과 아이온 론칭 일정이 겹쳤다. 아이온 개발팀 사이에 괴담이 돌기 시작했다. “우리는 저기에 못 들어간다는 소문이 있어…” 다행히 2006년 E3에서 잘 날아준 덕분에 우리도 새로운 건물에 들어올 수 있었다. (프로그래머 백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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