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7 내 인생의 게임

내 인생의 게임 #37 심시티 2000

게임회사 사람들이 꼽는 ‘내 인생의 게임’은 무엇일까요?

나만의 도시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심시티 2000>을 조동환 님이 소개합니다.


내 인생의 게임 #37 심시티 2000


나만의 도시를 건설하는 색다른 경험

바야흐로 1990년대 중반, 당시 초등학생인 나는 삼촌의 컴퓨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삼촌은 <심시티 2000>이라는 게임을 하고 있었고, 나는 난생처음 시뮬레이션의 세계를 경험했다.

<심시티 2000>은 맥시스라는 게임사에서 만든 게임이다. 현재까지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유명 게임 <심즈>를 처음 만든 회사다. 물론 당시에는 그런 것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나만의 도시를 세우고 싶다는 야망으로 가득 차있었다. 습득한 제조 기술이라고는 레고나 프라모델을 만들던 수준이었다. 이런 초딩에게 나만의 도시를 건설한다는 건 환상적인 일이었다.

텅 빈 황무지를 평평하게 다듬어 아스팔트 도로를 깔고, 시민들을 위한 집과 상점을 지었다. 기반 시설을 확충하며 대도시의 모습을 만들어갔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학교에서 배우던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경험과 성취감을 안겨줬다.

아무런 기술 없이도 만들 수 있었던 나만의 도시

아무런 기술 없이도 만들 수 있었던 나만의 도시


모니터 속의 작은 도시

<심시티>의 시스템은 꽤 체계적이다. 단순히 건물만 짓는 게 아니다. 도시의 성격에 따라 구획을 나누고, 주거지역과 상업지역, 공업지역의 비율을 맞춰야 한다. 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에 전기와 수도 공급이 차질 없도록 전신주와 수도관을 건설해야 하고, 세금도 적정 수준으로 책정하여 도시 재정이 파탄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범죄율을 낮추려면 경찰서와 교도소를 짓고, 교육수준을 높이기 위해선 학교와 도서관을 지어야 한다. 병원을 지어 시민 보건을 챙기고,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친환경 발전소도 세워야 한다. 자칫 도로를 잘못 깔면 교통 체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나는 이 게임을 하면서, 한 도시의 시장 역할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게임 속 가상 도시도 이렇게 신경 쓸 일이 많은데, 우리가 사는 실제 도시를 운영하려면 과연 얼마나 복잡한 절차와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할까?

신경 쓸 일이 너무나도 많은 도시 건설과 운영

신경 쓸 일이 너무나도 많은 도시 건설과 운영


평범함을 거부한 ‘재난’ 설정

번듯한 도시를 완성한 후에는 일부러 ‘재난’을 일으킬 수도 있다. 나는 ‘화재’를 발생시켜 소방차를 출동시키거나, ‘지진’을 일으켰다. 심지어는 ‘외계인’을 불러 도시를 파괴하며 쾌감을 느꼈다. 마치 어릴 때 바닷가에서 근사한 모래성을 지어놓고 집에 돌아가기 전에 발로 신나게 뭉개는 것과 비슷한 행위랄까.

그렇게 한바탕 도시를 때려 부수고 나면, 다시 열심히 복구를 한다.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도시가 망가졌다면 저장해 놓은 파일을 불러오면 간단히 해결된다.

재난 설정 중, 외계인의 침공 (출처: 제작사)

재난 설정 중, 외계인의 침공 (출처: 제작사)


맥시스는 <심시티 2000>과 연동되는 확장 게임을 출시하기도 했다. 헬기를 타고 도시를 탐사하는 <심콥터>나 차동차로 달리는 <스트리트 오브 심시티> 같은 게임이다. 잡지 부록을 받아서 몇 번 해봤는데 별로 재미가 없어서 바로 삭제했던 기억이 있다. 기존 인기 게임을 다른 장르로 확장한다는 아이디어는 좋았다. 하지만 <심시티>를 즐기는 기존 유저들의 성향을 고려하지 않았으니 호응이 없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지..

유저의 성향을 고려했더라면..

<심시티> 유저의 성향을 고려했더라면..


등짝과 맞바꾼 건설 시뮬레이션 게임

건설 시뮬레이션 게임은 오롯이 혼자 하는 게임이다. 그래서 저장과 불러오기를 반복하면서 나만의 페이스로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 자유로운 플레이 환경으로 인한 중독성은 상당했다. 매번 다른 콘셉트의 도시로 새롭게 판을 짜서 하다 보면 완전히 질리기 전까지 끝이 안 난다. 방에 틀어박혀 과자를 까먹으며 플레이하다보면 새벽 1~2시가 넘어가는 건 기본이고, 어느새 들어온 엄마에게 등짝을 맞는 건 정해진 수순..

등짝 스매싱

<심시티 2000> 이후로도 재벌 경영자를 꿈꾸던 나의 열망은 <트랜스포트 타이쿤>과 <롤러코스터 타이쿤>으로 이어지며 불타올랐고, 엄마에게 맞는 횟수가 늘면서 등짝도 함께 불타올랐다.

교통수단을 운영하는 과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출처: 각 제작사)

교통수단을 운영하는 <트랜스포트 타이쿤>과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롤러코스터 타이쿤> (출처: 각 제작사)


더 즐거운 인생을 꿈꾸며

오랜만에 <심시티>에 대해서 실컷 썰을 풀고 나니, 다시 해보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심시티 2000>을 지금 하기엔 좀 그렇고, 수작이라고 평가 받는 <심시티 4>를 시작해볼 심산이다.

2003년에 출시된 의 진화된 그래픽 (출처: Steam)

2003년에 출시된 <심시티 4>의 진화된 그래픽 (출처: Steam)


모니터 속의 작은 도시를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던 소년은 어느덧 30대 중반의 아저씨가 됐다. 여전히 모니터를 쳐다보며 마우스를 딸깍거리고 있지만, 이제 게임이 아닌 삶을 플레이하고 있다. 더 화려한 도시, 아니 더 즐거운 인생을 꿈꾸면서.


조동환 | 게임처럼 즐거운 인생을 꿈꾸는 커뮤니케이터

조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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