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3 내 인생의 게임

내 인생의 게임 #40 리니지

게임 회사 사람들이 꼽는 ‘내 인생의 게임’은 무엇일까요? ( ͡° ͜ʖ ͡°)

이번 ‘내 인생의 게임’에서는 <리니지>의 장수 비결이 공개됩니다. 인간의 욕구를 가장 잘 이해한 게임, <리니지>에 얽힌 이야기를 김진 님이 풀어봅니다.


내 인생의 게임 #40 리니지

“당신 인생의 게임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건 너무 쉬웠습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뻔한 대답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저에게 <리니지>는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할 정도로 영향이 컸던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내 생애 첫 MMORPG

내 인생의 게임 #40 리니지
<리니지>를 처음 접했을 때의 놀라웠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자주 가던 PC방 사장님이 플레이 하는 걸 보고, 재밌어 보여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을 했었죠.

사실 그 전까지 게임이란 부모님이 사 주신 슈퍼 컴보이를 통한 16비트 게임이 전부였습니다.


내 인생 첫 게임기 ‘현대 슈퍼 컴보이(출처: 현대전자 TV광고 장면)’와 즐겨 하던 게임 이 얼 쿵푸

내 인생 첫 게임기 ‘현대 슈퍼 컴보이(출처: 현대전자 TV광고 장면)’와 즐겨 하던 게임 <이 얼 쿵푸>


16비트 게임만 하던 저에게 처음 접한 MMORPG의 세계란 마치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리니지>를 하는 건 즐겨보던 만화 『슬레이어즈』의 주인공 ‘리나’가 되어 판타지 세계에서 모험을 하는 듯했습니다.

1990년 인기 만화 『슬레이어즈』

1990년 인기 만화 『슬레이어즈』


주사위, 은기사 마을, 선착장 등 바로 추억 소환되는 리니지만의 시스템

<리니지> 추억팔이를 하자면 몇 날 며칠을 떠들어대도 끝이 안 날 것 같지만, 기억에 남는 몇 가지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초창기 <리니지>를 하셨던 분이라면, 분명 추억에 잠기실 것입니다.

1. 주사위 지옥

초창기 <리니지>를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주사위를 굴려 좋은 스탯을 맞추는 관문을 거쳤을 것입니다. 당시 캐릭터를 생성하려면, 원하는 스탯을 선택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주사위를 통해서 랜덤으로 초기 스탯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주사위로 나올 수 있는 STR 수치는 19가 최대였습니다. 물론 저 또한 “남자면 힘!”이라며, 힘 19가 나올 때까지 몇 시간이고, 주사위만 굴렸습니다.

무한 클릭을 하며 주사위를 돌리다가 몇시간 만에 원하는 스탯이 나왔는데 실수로 한번 더 굴려버렸을 때의 좌절감이란 아,,, 다들 클릭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악마한테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로그인 화면과 클래스 선택 화면

로그인 화면과 클래스 선택 화면


2. 은기사 마을

은기사 마을에서 허수아비 훈련장으로 가는 입구에는 초보 유저들을 죽이는 악랄한 유저들이 상주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초보 유저들은 공격 대상이 나만 아니길 빌며, 동시에 훈련장으로 뛰었고 저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모습은 마치 사자의 공격을 피해 가젤 무리가 도망치는 모습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게임의 시작부터 ‘아 리니지는 정말 약육강식의 세계구나’ 라고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가젤 무리를 공격 하는 사자(좌), 은기사 마을 입구에서 초보 유저를 공격하는 모습

가젤 무리를 공격 하는 사자(좌), 은기사 마을 입구에서 초보 유저를 공격하는 모습


3. 게임의 무법자들

저는 <리니지>를 하면서 성선설 보다는 “인간은 원래 악하다”는 성악설을 믿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게 됐다고 할까요.

‘인간은 원래 악하다’는 주장을 한 순자

‘인간은 원래 악하다’는 주장을 한 순자


그 이유는 바로 무분별하게 PK(Player Kill)을 하는 유저들 때문이었습니다. (내 +6일본도를 가져간 막피는 아직도 <리니지>를 할까???) 가상의 세계에서 법규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 많은 악행들이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무분별한 PK(살인), 사기, 사냥터나 보스의 통제 등을 보면서, 인간은 원래 감성적인 욕망에 주목하며, 후천적인 교육을 통해 이를 교정해야 한다는 순자의 주장에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카오틱 신전에 상주하던 에볼 법피단(좌) 과 요정 활피단(우) – 악의 무리들

카오틱 신전에 상주하던 에볼 법피단(좌) 과 요정 활피단(우) – 악의 무리들


4. 선착장

선착장은 이제 막 초보자 딱지를 떼고, 아덴 대륙으로 더 큰 모험을 하려는 유저들로 언제나 붐볐습니다. 말하는 섬과는 다른 사냥터에서 강한 몬스터를 처치하고, 성장할 생각에 아덴 대륙으로 떠나는 길은 너무나 설레었습니다. 학생 때 스페인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기 전보다 더 설레었던 것 같습니다.

말하는 섬을 떠나 아덴 대륙으로 떠나기 위해 선착장에 모인 유저들

 말하는 섬을 떠나 아덴 대륙으로 떠나기 위해 선착장에 모인 유저들


인간의 욕구에 충실한 게임

게임 기획자가 된 후, <리니지>가 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지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내린 결론은 인간의 욕구를 가장 잘 이해한 게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1943년에 임상 심리학자였던 에이브러햄 매슬로우(AbrahamMaslow)가 발표한 욕구 단계 이론을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에이브러햄 매슬로우는 ‘인간은 자기실현을 향해 끊임없이 성장하는 생물’이라고 가정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욕구를 저 차원에서 고차원으로 5단계로 분류했습니다. ‘생리적 욕구’, ‘안전과 안정의 욕구’, ‘소속과 애정의 욕구’, ‘자아 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입니다.

에이브러햄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이론 (이미지 출처: The Pale Blue Dot 블로그)

에이브러햄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이론 (이미지 출처: The Pale Blue Dot 블로그)


이 모델의 특징은 하위 욕구가 충족되면 좀 더 상위 욕구를 추구하는 마음이 강해진다는 점입니다. 반면에 현재 상태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한, 상위 욕구는 그다지 의미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굶어 죽기 직전이라는 생리적 욕구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자아 존중이나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는 별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리니지>를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생리적 욕구 (생존 욕구)

생리적 욕구 (생존 욕구)


생리적 욕구란 허기를 면하고 생명을 유지하려는 욕구로써,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초보 유저는 아이템 및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여, 자주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초보 유저의 가장 큰 욕구는 살고자 하는 생존 욕구입니다.

안전의 욕구 (경제적, 정서적 안정)

안전의 욕구 (경제적, 정서적 안정)


안전의 욕구란 생리 욕구가 충족되고서 나타나는 욕구로써, 위험, 위협, 박탈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불안을 회피하려는 욕구입니다. 생존에 성공한 유저는 안정적인 플레이를 지속하기 위해, 아이템을 맞추고 자신에 맞는 사냥터에서 플레이를 진행하며 안전의 욕구를 채우려고 노력합니다.

사회적 욕구 (소속과 애정의 욕구)

사회적 욕구 (소속과 애정의 욕구)


사회적 욕구란 어느 한곳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 친구들과 교제하고 싶은 욕구,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욕구입니다. 어느 정도 초보 티를 벗고 안정적인 플레이가 가능해진 유저들은 사회적 욕구를 느끼게 됩니다. 보통 그런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혈맹(소속)을 가입합니다. <리니지>의 혈맹은 어떤 타 게임보다 끈끈한 유대 관계로 맺어진 커뮤니티였습니다.

존경의 욕구

존경의 욕구


존경의 욕구란 소속 단체의 구성원으로 명예나 권력을 누리려는 욕구로 혈맹(소속)에 가입하고 나면, 혈맹원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혈맹을 이끄는 군주 또는 간부(수호기사)가 되고, 굳이 간부가 되지 않더라도 강한 혈맹의 일원이 되어 다른 유저로부터 존경을 받고 권력을 누리려고 합니다. <리니지>의 꽃인 공성전을 통한 성을 가진 혈맹 원, 주요 사냥터를 독점하고 통제하는 권력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아 실현의 욕구(성장 욕구)

자아 실현의 욕구(성장 욕구)


마지막 욕구인 자아 실현의 욕구란 자신을 계속 발전시켜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욕구입니다. 다른 욕구와 달리 욕구가 충족될수록 증대되는 경향을 보여 ‘성장 욕구’라고도 불립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죠. 하위 욕구를 다 채우더라도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만 커질 뿐이죠. 남들 보다 더 강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성장하고 경쟁합니다. 마치 <리니지>에서 더 강해지기 위해 매일 같이 레벨업을 하는 모습이죠.

‘재미’를 창출하기 위해 이런 인간의 욕구 충족을 위한 요소들을 잘 버무린 <리니지>는 한국형 MMORPG의 대표가 되었고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많은 유저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아직도 들으면 가슴 설레는 리니지 BGM

아직도 들으면 가슴 설레는 <리니지> BGM


내 인생의 게임 #40, 김진

김진

성공한 <리니지> 덕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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