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6 내 인생의 게임

내 인생의 게임 #41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게임 회사 사람들이 꼽는 ‘내 인생의 게임’은 무엇일까요? ( ͡° ͜ʖ ͡°)

이번 ‘내 인생의 게임’에서는 전장에서의 좌절과 성공의 경험치로 박슬기 님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예술작 <WoW>를 소개합니다.


내 인생의 게임 #41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그다지 끌리는 그래픽은 아니었는데

<리니지> 한 서버의 상위 랭커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가 2005년 즈음이었는데, 한창 PC방에서 <리니지>를 즐기고 있다가 별안간 어설픈 그래픽의 게임이 눈에 들어왔다. SEGA의 <버추어 파이터3>를 떠오르게 하는 폴리곤의 투박한 3D PC 게임의 모양새였다. 화면 속에선 대머리 아저씨, 후덕한 아줌마와 살점이 썩어가는 해골, 갓파 닮은 요괴가 해괴한 몽둥이를 들고 서로 둔탁한 소리를 내며 싸우고 있었다.

화려한 물약 이펙트와 멋진 데스나이트의 칼질을 표현한 2D게임과 비교하면서, 3D 표현을 왜 저 정도밖에 못할까 의구심이 들었다. <WoW>는 그저 그런 첫인상을 남겼다.

흐린 기억 속의 WoW의 그래픽

흐린 기억 속의 <WoW>의 그래픽


<WoW>에 입문할 수밖에 없었던 예비 기획자

2006년 개인적인 일로 <리니지>를 잠시 쉬게 되었고, 게임회사에 취업 준비를 하면서 <WoW>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당시 <WoW>의 인기는 날로 고공행진이었다. 또한 게임트릭스*에 집계된 이 게임의 PC방 점유율 지표는 어마어마했다. 도대체 왜 이 게임에 모든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게임 기획자로서 분석이 필요했다. <WoW>라는 커다란 아제로스 대륙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 게임트릭스: PC방 게임 전문 리서치 서비스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격전지 아제로스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격전지 아제로스


<WoW> MMORPG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다

<리니지>에 익숙한 나에게 <WoW>는 쇼킹 그 자체였다. RvR을 고려한 진영 선택, 명확한 직업 선택, 대미지 이펙트 출력, 자유롭게 커스텀이 가능한 HUD, 원하는 스킬을 만들 수 있는 스크립트, 착용 장비 출력, 죽었을 시 패널티 유령 시스템, 자유로운 채널 개설, 날아다니며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탈 것, 회복이 되는 낚시, 부가적인 도움이 되는 전문기술, 40명이 모여서 진행하는 레이드, 어그로 시스템, 네임드를 배출한 전장과 투기장 등등 <WoW>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이 시스템들을 기억할 것이다. 이 많은 게임 속 시스템들을 알아가고 배워가는 재미가 상당한 게임이었다.

Lua 스크립트로도 작성이 가능한 매크로

Lua 스크립트로도 작성이 가능한 매크로


‘드루이드’가 살렸다

처음 선택한 직업은 도적이었다. 도적을 선택한 이유는 당시 <WoW>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당신의 성향에 맞게 직업을 선택하게 해주겠다’는 친절한 가이드 때문이었다.(젠장!!) 이 과한 친절함 덕분인지 대부분 사람들이 도적을 선택하게 되었고, 서버 안에는 도적이 바글바글했다.

공격대에 가입하고 싶어도 “도적 풀염” 파티 인던도 “도적 ㅈㅅ” 투성이라 도저히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현실도 어려운데 가상 세계에서도 똑같다니.. 현타가 심하게 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직업이 뚜렷한 만큼 패치때마다 직업에 대한 불균형도 만만치 않았다. (와우의 유명한 짤방)

직업이 뚜렷한 만큼 패치때마다 직업에 대한 불균형도 만만치 않았다. (와우의 유명한 짤방)


도적을 육성한 시간이 아깝지만 최종 콘텐츠 중 하나인 레이드 공격대를 포기할 수 없었다. 두 번째는 철저하게 희소성 있는 직업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오리지널 시절 가장 클래스의 선택 비율이 낮았던 드루이드가 눈에 띄었다. 하이브리드라는 명목하에 애매한 클래스 포지션, 하지만 전투 부활이라는 공대에서 막강한 스킬 하나로만으로도 굉장히 대우받을 수 있는 직업이었다.

레벨업은 정말 우유팩에 강낭콩 키우듯 참을성을 요구했다. 딜이 약하다 보니 육성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사람들이 왜 욕하면서 키우는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Lv 60 달성 후, 자신 있게 “드루이드 공대 구합니다” 멘트를 전체 채팅창에 날리자 마자 귓말이 쇄도하였다. 그동안 참아왔던 서러움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도적이었을 때를 생각하면, 같은 게임을 하는게 맞나 싶을 정도로 파티 구하기가 너무 쉬었다. 물론 아이템도 독차지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드루이드의 장점은 탱커, 근거리 딜러, 원거리 딜러, 힐러가 가능하다는 것

드루이드의 장점은 탱커, 근거리 딜러, 원거리 딜러, 힐러가 가능하다는 것


10시간 레이드도 끄떡없었던 시절

지금 이 ‘모바일 게임 시대’의 생태계를 생각하면, 어떻게 당시에 40인을 모으고 4시간 이상 레이드를 했는지 믿기지 않는다. 하루에 짧게는 4시간 길게는 10시간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레이드를 진행했다. <WoW>하면서 체중이 8Kg 가량 빠졌었다. 우스갯소리로 게임하면 살 빠진다는 말이 있는데 그 당사자였다.

기억에 남는 보스가 많이 있지만 그중 검은날개 둥지의 ‘타락의 밸라스트라즈’가 생각난다. 이 녀석은 자리 선정도 중요하고 화염 저항 스펙 필수, 엄청난 DPS, 그리고 핵심 AI인 아드레날린! 이 아드레날린이 걸리면 탱커는 100% 사망하고 어그로가 튄다. 탱커의 어그로 연계성이 중요한 보스였다.

가물가물한 14년 전 기억을 되살려보면, 광폭화 상태에서 HP 2000이하로 남은 상태인 적이 있었다. 탱커도 모두 죽고 남은 인원이 5명정도 있었는데 마지막 탱커가 아드레날린으로 죽기 직전 나는 바로 곰으로 변신했고 ‘밸라스트라즈’ 앞으로 야생의 돌진 후 어그로를 끌었다. 물약+사탕(생명석)+무(채찍뿌리 줄기)를 먹으면서 간신히 버티며 공략 클리어!! 당시 공대장이 센스 있게 잘했다고 칭찬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봐도 흉악하고 공포스럽지만 그만큼 성취감이 컸던 밸라스트라즈

지금 봐도 흉악하고 공포스럽지만 그만큼 성취감이 컸던 밸라스트라즈


역시 <WoW>의 꽃은 전투

<WoW>의 꽃은 전투이다. 퀘스트하다 엄마, 아빠 부르는 필드 RvR, 대놓고 싸우라고 만들어준 전장, 하드코어 하게 소수로 싸울 수 있는 투기장, 레이드 입구에서 펼쳐지는 RvR, 도시 쳐들어가는 RvR 등 산발 분산적인 PvP를 즐길 수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필드 전투 콘텐츠 중 하나는 구루바시 투기장이었다. 당시 오리지널은 장신구가 많지 않았다. 그중 굉장한 아이템인 최고 검투사의 징표는 유일하게 피해를 흡수하는 장신구였다. 궤짝에서 나오는 전문 검투사의 징표 12개를 모아야 만들 수 있는 아이템으로 시련을 12번 성공해야 한다. 투기장에서 은신하고 기다릴 때 긴장감은 가히 최고였다. 화면에는 안 보이는 적이 몇 명인지 모르는 긴장감. 여기선 아군도 적군도 없었다. 모두가 적이다.

궤짝을 열기 위해 캐스팅할 때 긴장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궤짝을 열기 위해 캐스팅할 때 긴장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필자는 드루이드였다. 드루이드는 변신 때문에 이동 속도가 빠른 장점이 있다. 이 장점을 기반으로 전쟁노래 협곡에서 굉장히 중요한 기수 역할을 도맡았다. 전쟁노래 협곡은 10vs10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빠르게 진행할 수 있어 인기 있는 전장이었다. 또한, 투기장 없던 시절에 굉장히 하드코어한 전장으로 평가됐다. 미친 듯이 전장에서 살았고 팀 없이 순수 노력으로만 작전 사령관을 달았던 기억이 난다.

상대의 진영으로 침투하여 깃발을 훔치고 우리 진영에 깃발이 있을 때 꼽으면 승리!

상대의 진영으로 침투하여 깃발을 훔치고 우리 진영에 깃발이 있을 때 꼽으면 승리!


투기장 상위 1% 랭커로!

<WoW>를 잠시 쉬었던 적이 있다. 그러다 투기장이란 하드코어 PvP 콘텐츠를 하고 싶어 다시 시작했다. 당시 드루이드는 회복이 좋은 밸런스를 보였고 힐러 연습이 필요했다. 전장에서 알게 된 네임드 유저와 전드(전사+드루이드)를 정말 많이 연습했었다. 하지만 첫 시즌은 초라한 성적으로 마무리됐다. 완벽한 팀플레이와 상대 조합에 대한 이해도가 필요함을 느꼈다.

일리단의 유명한 대사. 난 투기장 할 준비가 안 된 듯했다

일리단의 유명한 대사. 난 투기장 할 준비가 안 된 듯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은 좀 달랐다. 전 서버에서 유명한 도법(도적+법사) 랭커 팀이 있었다. 그분들과 함께 3vs3 도법드를 운영하여 손쉽게 검투사를 찍을 수 있었다. 그 해 세계 대회를 준비를 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팀을 해체하게 되었다.

맵에 따라서도 밸런스가 달라진다. 위의 맵은 로데론의 폐허 투기장

맵에 따라서도 밸런스가 달라진다. 위의 맵은 로데론의 폐허 투기장


죽기(죽음의 기사) 등장 이후 회드(회복 드루이드)는 하락세였다. 회드의 주력 힐은 도트 힐이였다. 죽기는 강력한 딜과 함께 도트 힐을 삭제하는 능력을 가졌다. 죽드(죽음의 기사+드루이드) 조합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검투사는 달성하지 못했다. 당시 죽드 조합으로 국내 1위, 세계 랭킹 19위에 달성하는데 만족했다. (세계랭킹 자료가 유실된 게 아쉽다)

냉혹한 검투사 호칭을 주던 시즌이 나의 <WoW> 마지막 시즌이자 전성기였다. 당시 징드로 세계 3위, 국내 1위를 3vs3에서는 징사드로 1위를 달성했다. 시즌 종료 시간 2분 전 1위 2위를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결국 2위로 마무리되었는데, 아쉽게 냉혹한 검투사 호칭을 얻는데 실패했다. 당시 투기장 실력이 알려지면서 각 서버의 유명 네임드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그들과 게임을 하면서 남긴 추억이 많다.

간지나는 검투사 서리 고룡 탈것

간지나는 검투사 서리 고룡 탈것


아제로스를 떠난 아재

30대를 넘기면서 일상이 바빠지니 자연스레 <WoW>를 즐기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리치왕의 분노 에피소드를 끝으로 게임을 쉬어야 했다. 간간이 에피소드 소식은 듣긴 했으나 다시 게임할 엄두가 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 다시 하고 싶었던 적이 있다. 바로 <WoW 클래식> 업데이트 소식이었다. 그때 그 감성을 느끼고 싶었지만 추억은 추억으로 남기기로 했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아제로스 대륙을 밟을 지도 모른다. MMORPG <리니지>과 <WoW>의 경험치는 오늘날 내가 여기에 있게 만들어 준 고마운 예술작으로 기억될 것이다.

오래된 추억의 캐릭터 스크린 샷

오래된 추억의 캐릭터 스크린 샷


내 인생의 게임 #41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 박슬기

박슬기

게임은 접는 게 아니라 평생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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