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19 이세계 게임

이세계 게임 #2 스펙 옵스 : 더 라인(Spec Ops : The Line)

이(this) 세계에서 만들었지만 이(異)세계의 물건인 듯한 그런 게임을 소개하는 이세계 게임

두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재미라는 명목으로 폭력성이 용인 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서 시작하는

〈스펙 옵스 : 더 라인(Spec Ops : The Line)〉입니다.


이세계 게임 #2 스펙 옵스 : 더 라인(Spec Ops : The Line)


게임은 현실을 반영한다

“오늘, 우리는 인간 본성에서 가장 나쁜 악을 보았습니다.”  – 2001. 9. 11. 조지 W. 부시 대통령 연설 中 –


외국인의 입장에서도 충격적인데 미국인의 시각에선 더 엄청났을 것이다..

외국인의 입장에서도 충격적인데 미국인의 시각에선 더 엄청났을 것이다..


여러분은 21세기 대사건 중 9·11 테러를 기억하시나요?

특파원의 TV실시간 중계를 보면서도 이게 뉴스가 아니고 영화를 보는 게 아닌가 라고 착각했던 바로 그 역사상 최악의 테러사건 말입니다. 이 끔찍했던 사건은 미국에서 터진 일이지만 그 여파는 무시무시하여 온갖 미디어 매체 문화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게임도 포함이 되었죠. PS2시절 명작중의 명작인 〈메탈 기어 솔리드 2 : 선즈 오브 리버티〉는 9·11 테러로 인해 발매 연기에 테러를 연상 시키는 이벤트 신까지 수정되었습니다.

〈GTA 4〉는 배경이 되는 리버티 시티가 뉴욕과 비슷한데다 그 참혹했던 테러 현장인 쌍둥이 빌딩까지 구현되어 있어 출시 전에 맵에서 빌딩을 통째로 지워야 했고 탑승 수단에서 비행기도 삭제해 버렸죠.

이 뿐만이 아닙니다. 북미 출시가 되지 못한 게임도 있었습니다. 출시가 되었다 하더라도 9·11 테러를 조금이라도 연상시키는 것들은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수정이 있었을 겁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어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국내에 출시 예정인 게임에 세월호 참사가 조금이라도 연상되는 장면이 있다면 가차 없이 수정해야 했겠죠.

결국 2001년 10월 7일 9·11 테러 이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날에 부시 전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항구적 자유 작전이라는 이름의 복수를 시작합니다.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40여 개국의 지지 아래, 이라크, 이란, 북한이 악의 축으로 규정되었고 온갖 군사 작전들이 10년이 넘도록 행해졌죠.

현실은 게임에 영향을 끼치고 게임도 언제나 현실을 반영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역사적 사건들이 이후의 게임들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을까요?

먼저 FPS라는 장르가 바로 이 시점 이후로 수없이 흥행하기 시작합니다.

밀리터리와 가장 밀접해 있으며, 또 가장 대중적인 이 장르는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나 〈카운터-스트라이크(Counter-Strike)〉를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즐기는 게임이 되었습니다.

이 게임들 속에서는 대체 역사나 논픽션의 성격을 띄면서 죽여야 하는 적들이 처음엔 독일군이었던 것이 자국인들의 분노를 대변하듯 중동인들로 변해가고 북핵 문제가 대두되며 이후엔 북한군까지 적으로 합세합니다.

부시 전 대통령이 연설에서 말했듯 현실에선 우리와 똑같이 숨을 쉬며 똑같이 몸 안에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 점점 악의 축으로 규정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FPS게임들을 신나게 즐기면서 내면에서는 스스로 느끼지 못했던 어떠한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밀리터리 게임에서 ‘죽여도 되는 대상’의 변화를 보면 그 증오의 고리를 알 수 있다.

밀리터리 게임에서 ‘죽여도 되는 대상’의 변화를 보면 그 증오의 고리를 알 수 있다.


바로 게임 속에서 인간을 죽이는데 어떠한 거부감도 들지 않게 된 것이죠.

〈둠(Doom)〉을 필두로 하는 초기 FPS에서 보통 일반적인 적은 인류에게 위협이 되는 괴물들이었습니다. 물론 〈둠(Doom)〉에는 겉모습은 인간 병사인 적들도 많지만 악마에게 혼을 빼앗긴 좀비라는 설정이 붙어있죠. 그렇게 게임에서 당연히 죽여서 없애야 하던 존재들이 점차 시간이 흐르더니 어느새 우리들은 게임에서 같은 인간을 쏴 죽이고 있었습니다.

우주명작 〈언차티드 2 : 황금도와 사라진 함대(Uncharted 2 : Among Thieves)〉의 마지막 보스전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나를 괴물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넌 나와 다를 것도 없어 드레이크. 지금까지 몇 명이나 죽였나? 오늘 하루… 몇 명이나 죽였나?”


너는 지금까지 먹은 빵의 개수를 일일이 기억하냐?

너는 지금까지 먹은 빵의 개수를 일일이 기억하냐?


어쩌면 너티 독(Naughty Dog)의 개발자들도 일찍이 이런 이변을 감지 했을지도 모르겠군요.

아주 극단적으로 말해서 플레이어가 수많은 게임들에서 하는 짓이라고는 정신없이 같은 인간을 쏴 죽이는 행위 밖에 없는데 게임의 마지막엔 엔딩 크레딧과 함께 평화를 지켜냈든, 최종 악당을 물리쳤든, 영웅으로 끝이 납니다.

어쨌든 ‘게임이란 건 원래 다 이런 식이다’ 라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시장이 형성되어 가고 있는 와중에 별반 다를 것 없이 똑같아 보이는 웬 듣보잡 총질 전쟁 게임이 하나 등장합니다.

바로 이 게임이 이제 소개할 〈스펙 옵스 : 더 라인(Spec Ops : The Line)〉입니다.


※ 주의 ※

본 내용은 게임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인류가 전쟁을 끝장내지 않는다면 전쟁이 인류를 끝장낼 것이다.  -존. F. 케네디-

원래 〈스펙 옵스(Spec Ops)〉라는 게임은 1998년부터 제작되었던 고전 3인칭 전략 슈팅 게임으로 히트작도 아니었고 그다지 유명했던 작품도 아닙니다. 2002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출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12년 〈스펙 옵스 : 더 라인(Spec Ops : The Line)〉을 출시하면서 왜 이 이름을 가져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아무도 이 게임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디 한번 저와 함께 이 게임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도록 하죠.


거꾸로 걸린 국기는 다른 국가의 도움을 바란다는 상징이 있다고도 합니다.

거꾸로 걸린 국기는 다른 국가의 도움을 바란다는 상징이 있다고도 합니다.


한글 패치를 적용한 후 타이틀을 보면 모래폭풍으로 황폐해진 두바이와 성조기가 이 전쟁속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배경 음악으로 미국 국가인 별이 빛나는 깃발(The Star-Spangled Banner)이 흐르는데 흔히 영화에서 듣던 그 음악이랑은 뭔가가 미묘하게 다릅니다. 사실 이 음악은 1969년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 지미 헨드릭스가 반전의 메시지를 담아 왜곡한 버전입니다(주1).

게다가 성조기 마저 찢어지고 뒤집혀 있죠. 범상치 않은 이 타이틀 화면은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요?

게임을 시작하면 주인공들은 모래로 휩싸인 두바이 빌딩을 휘저으며 헬리콥터에서 처절한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야기는 6개월 전으로 돌아갑니다.

사막 최대도시 두바이가 사상 최대의 모래 폭풍과 함께 고립되었습니다. 존 콘래드라는 대령이 이끄는 33부대는 두바이에서 구조 활동을 하고 있었죠. 구조 활동 중 폭풍이 더 악화되어 도시를 버리라는 부대의 명령이 있었지만 이를 위반하고 도시에 남아 행방불명 되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2주 전 죽은 줄로만 알았던 콘래드 대령의 무전이 모래폭풍을 넘어 우연히 포착됩니다.

두바이 대피 작전은 완벽한 실패로 돌아갔다. 사망자 수가 너무 많다..”

평소 콘래드를 진정한 군인으로 존경해오던 델타포스 소속 워커 대위는 대령의 생사확인과 생존자를 찾는 비밀 정찰 임무에 자원하게 되고. 애덤스 중위와 루고 중사와 함께 모래폭풍이 휘몰아치는 두바이에 진입하게 됩니다.


제군들, 두바이에 온 것을 환영한다.

제군들, 두바이에 온 것을 환영한다.


도시에 진입하면서 33부대원의 시체를 발견하고, 반군 세력과 조우하면서 도시 내에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되죠. 놀랍게도 반군을 주도하는 것은 CIA였고 33부대 또한 반군에 대응하여 민간인들에게 총격을 가하고 있는 아비규환의 상황이었습니다.

워커는 33부대 또한 내분이 있다고 예상하며 참군인 콘래드 대령이 이유 없이 이런 상황으로 부대를 내몰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콘래드를 만나 진실을 듣기 위해 계속 전진합니다.

33부대는 명령을 듣지 않는 자들을 처형까지 해가며 도시의 현상 유지를 해오고 있었고 이 세력간의 생존을 위한 전쟁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금지된 무기 백린탄까지 사용하는 33부대의 변질을 보게 된 워커는 33부대를 탈영병으로 판단, 적으로 간주하고 델타포스의 명예를 걸고 두바이를 구하기로 합니다.

워커는 인질로 잡혔다가 죽은 CIA요원 굴드가 남긴 쪽지를 통해 중요 거점인 관문의 위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거점에 도착해보니 수많은 33부대가 관문을 지키고 있었고 이를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한 워커는 그 자리에 있던 금지된 무기 백린탄을 사용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를 본 루고가 사용을 말리며 한마디를 합니다.

선택은 언제나 할 수 있습니다.”

루고의 만류에도 33부대를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한 워커는 백린탄을 사용하고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지금까지 본 33부대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지만 이곳은 민간인들을 혼란에서 보호하고 있던 부대였던 것이죠. 백린탄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를 불태워버렸고 부대원들은 혼란에 빠집니다.


콘래드 때문입니다. 그가 한 짓입니다. 전부..

콘래드 때문입니다. 그가 한 짓입니다. 전부..


이 광경을 보고 루고와 아담스가 뭐라며 외치지만 혼란스러운 워커의 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왜 민간인들이 이곳에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직 임무를 끝내지 못했고 콘래드를 만나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관문을 지나자 버려진 무전기에서 콘래드의 무전이 들려옵니다.

“생존이네, 대위. 단순명료하지? 두바이에 온 걸 환영하네, 제군”

콘래드는 고립과 물자 부족의 혼란에서 질서 유지를 하기 위해 명령에 불복종하는 자들을 처형하고 있었고 그가 이 모든 사태를 조종하고 있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물을 훔친 도둑과 체포하는 과정에서 살인을 한 군인. 어느 쪽이 더 죄인인가?

물을 훔친 도둑과 체포하는 과정에서 살인을 한 군인. 어느 쪽이 더 죄인인가?


콘래드는 워커에게 계속해서 무전을 하며 아비규환의 두바이에서 질서 유지를 위해 지금까지 해 온 행위와 같이 죄인 둘 중 더 나쁜 죄인을 사살하라는 선택의 테스트를 하기도 합니다.

이후 계속해서 나아가던 워커는 또 다른 CIA요원 릭스를 만나게 됩니다. 릭스는 33부대를 박살내기 위해 전 도시의 식수를 책임지고 있는 저수조의 물을 탈취하는 계획을 제안합니다. 워커 부대는 여기 동의하고 결국 물을 탈취하는데 성공하지만, 트럭이 전복되며 도시의 모든 식수가 증발해 버립니다.

릭스는 트럭에 깔려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목적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CIA의 목적은 바로 33부대가 저지른 모든 민간인 살해와 관련된 범죄를 뒤덮기 위해서 도시의 모든 생존자를 갈증으로 죽여버리는 것이었죠.


현실도 아닌데 우리가 왜 신경 써야 하나요?


콘래드가 직접 나타나 워커의 행동을 질책합니다.

콘래드가 직접 나타나 워커의 행동을 질책합니다.


상황은 혼란스럽지만 콘래드의 33부대를 막아 무고한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의 목적과 엇나가고 있는 것 같지만 이건 현실도 아닌데 여러분이 왜 신경 써야 하나요?

무전기로 조롱을 하는 최종보스 콘래드를 만나면 그를 체포하고 군사 재판에 넘겨 사태의 책임을 물어 군에서 사형을 선고 받는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와 같은 결말이 날 것입니다.


괜찮아요. 게임에서 재미를 위해 죽이는 것은 진짜도 아니고 현실과 무관하니까요.

어찌 됐든 게임은 계속 진행됩니다. 33부대의 일부를 통솔하고 있는 라디오맨을 만나고, 최종 목표인 콘래드를 만나기 위해 헬기를 타고 콘래드가 있는 빌딩으로 나아갑니다.

33부대가 계속해서 앞길을 막지만 주인공 보정으로 다 죽여버립니다. 결국 헬기 전투 신이 등장하던 프롤로그까지 도달했군요. 이때 워커가 한마디 던집니다.

“잠깐. 잠깐, 이거 뭔가 이상해! 우리 이런 적이 있었어!”

설마 게임 캐릭터가 프롤로그에서도 싸웠던 것을 기억하는 걸까요? 적의 공세에 결국 헬기는 추락하고 워커의 앞에는 지금까지 죽어가던 NPC들의 환영이 보입니다.

“두바이에는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아 있었어. 자네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야.”

이게 무슨 소리인가요? 괜찮습니다. 게임에서 재미를 위해 죽이는 것은 진짜도 아니고 현실과 무관하니까요. 늘 하던 FPS처럼 움직이는 적들을 쏴 죽이는 그저 게임일 뿐입니다. 어찌 됐건 이 모든 상황은 당신의 콘래드의 잘못이고 워커 부대는 그저 거기에 대응하여 임기응변을 해 온 것뿐입니다.

콘래드가 있는 빌딩을 향해 계속 나아가는 도중, 루고가 성난 군중들에게 잡혀 교수형을 당합니다. 군중들이 주변을 막아 앞으로 갈 수가 없는 상황에서 분노하는 애덤스의 사격 요청대로 청색으로 뜨는 조준점(주2)을 보면서도 시민을 쏠 지 위협 사격만 할지 선택할 수 있죠(주3).

만약 루고가 살아서 나간다면 PTSD(주4)로 고통 받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는 정말로 운이 좋았던 것입니다.

이제 분노에 찬 워커의 목적은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모든 일의 원흉인 콘래드를 죽이는 것.

앞을 가로막는 33부대의 잔존병력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환영을 계속 보게 됩니다. 루고의 환영이 워커를 원망하고 예전 고의로 사고로 당신 콘래드 때문에 백린탄으로 죽은 민간인들까지 등장해 괴롭힙니다. 애덤스마저 워커를 원망하며 홀로 전장으로 달려가버리죠.

콘래드를 만나는 결말만을 남겨두고 워커는 빌딩의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잘했네, 워커. 자넨 폭풍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어, 33대대를 박살내는 거 말이야. 이제 좀 영웅이 된 기분이 드는가?”

네. 저 콘래드를 잡고나면 늘 그랬듯 영웅이 되고 엔딩 크레딧이 나올테죠.

마침내 만난 콘래드 대령은 태연하게도 백린탄으로 타 죽은 민간인들을 그리고 있었고. 콘래드는 민간인들을 죽이라고 명령한 것은 워커이며 누군가는 죗값을 치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후에 그는 그림판 뒤로 돌아가는데 따라가 보니 아무도 없습니다… 대신 난간에 있는 의자에 앉은 누군가를 발견하는데..


콘래드는 이미 죽어있었죠.

콘래드는 이미 죽어있었죠.


충격적이게도 사실 콘래드는 이미 예전에 자결한지 오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그동안 대체 누구와 싸운 것일까요? 만신창이가 된 표정의 워커 뒤로 콘래드가, 아니 정확히는 콘래드의 환영이 나타나 말을 합니다.

아무래도 내 생존보고는 너무 과장됐지 싶군.”

이건 말도 안 돼…”

아, 장담컨대, 말이 된다네.”

어떻게?”

“’어떻게’가 아니라, ‘어째서’겠지. 자네는 여기까지 올 필요가 없었어.”

임무의 시작을 다시 한번 회상하는데 워커 부대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콘래드의 생존확인과 상황파악이었지 두바이를 구한다거나 33부대를 심판하라는 거창한 임무가 아니었습니다.


왜 여기에 왔는지 기억은 나시나요?

왜 여기에 왔는지 기억은 나시나요?


여기서 일어난 일들은 내가 어쩔 수 없었어.”

그랬을까? 자네가 그냥 돌아갔다면 이 모든 일들은 일어나지도 않았어. 그런데도 자네는 계속 전진했지. 대체 뭘 위해서였나?”

당신들을 구하려 했던 거야.”

자네는 구원자가 아니야. 자네의 재능은 다른 데에 있었지.”

이 순간 백린탄 학살 사고 당시 루고가 뭐라고 외쳤는지 똑똑히 다시 들을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이 우릴 빌어먹을 살인자로 만들었다고요!”

실제로는 워커의 앞엔 아무도 없고 혼잣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눈앞의 것을 거부하려면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 그리고 만약 진실을 거부할 수 없다면, 자신만의 걸 창조해내는 거야. 진실은 말이지, 워커, 자넨 자네가 될 수 없는 무언가가 된 것처럼 느끼고 싶었기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것일세. 영웅 말일세.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자네가 스스로 벌인 짓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야. 그게 자넬 망가뜨렸어. 자넨 비난할 누군가가 필요했어, 그러니 책임을 나한테 떠민 거지, 망자한테 말이야.”


이세계 게임 #2 스펙 옵스 : 더 라인(Spec Ops : The Line)
진실은 이렇습니다.

그동안 콘래드에게 받은 무전은 환청이었고 백린탄 사건 이후 입수했던 무전기는 고장 난 상태였습니다. 죄인 둘 중 한쪽을 선택하라는 테스트가 있었을 때는 둘 다 죽어있는 시체였고 루고와 애덤스는 이때, “선택은 무슨 놈의 선택이요?”, “어서 여기서 나가기나 하자고요.”라고 했는데 이것은 콘래드에게 놀아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으니 탈출이나 하자는 뜻이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콘래드와 대화한 것은 워커밖에 없었고 루고와 애덤스가 콘래드의 무전에 응답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죠. 처음에 두바이 구조 작전의 실패와 33부대원들의 내분이 시작될 때부터 콘래드는 마지막 구조 요청을 보내고 역사가 자신에게 내릴 평가를 두려워하며 자결을 택한 것 입니다.

진실을 받아들인다는 게 힘든 걸 알고 있네, 워커. 하지만 이제 때가 되었고, 자네만 남았어. 그리고 우린 이렇게 거짓된 삶을 영원히 살 수는 없다네. 다섯을 센 후에 방아쇠를 당기겠네.”

당신은 진짜가 아니야. 다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거야.”

정말로 확신하나? 어쩌면 내 꿈속일지도 모르지. 하나.”

아니야, 이 모든 일은… 전부…… 당신 잘못이었어.”

그게 자네가 확신하는 거라면, 나를 쏘게, 둘.”

나… 난 아무도 해치려고 한 게 아니었어.”

그 누구도 그러고 싶어 하지 않아. 워커, 셋.”

정신이 붕괴된 당신은 워커는 콘래드의 총에 죽거나(그 역시 자살을 택하거나), 거울 속 콘래드를 쏴서 최후의 최후까지도 스스로의 잘못을 부정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하든 자유입니다.

결말은 여러분이 직접 확인하시길 바랍니다(주5). (관련 링크)


스펙 옵스 : 더 라인(Spec Ops : The Line)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스펙 옵스 : 더 라인(Spec Ops : The Line)〉의 충격적인 스토리는 1899년 조지프 콘래드(대령 콘래드의 이름과 같습니다)의 소설 「어둠의 심연」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도 그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최종 보스가 사실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는 클리셰(cliché)의 스릴러로 볼 수도 있지만 사실 이 게임은 서론에서 이야기했던 현대 게임의 만연한 도덕적 추락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하고 있는 게임입니다.

〈스탠리 우화(The Stanley Parable)〉처럼 직접적으로 플레이어를 언급하는 장면은 없지만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 같은 게임을 기대하고 이 게임을 산 유저들을 향한 메시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이 게임의 진짜 숨은 의미들을 알아보죠.


루고는 게이머의 ‘양심’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

백린탄을 쏠려고 할 때 그는 “선택은 언제나 할 수 있습니다.” 라는 대사를 하는데 상징성으로 볼 때 이는 워커가 아닌 게임을 하는 우리들에게 말하는 내용입니다. 게다가 백린탄 직후에 절규하는 루고가 손가락 질을 하는데..


이건 당신 잘못이에요! 제기랄!

이건 당신 잘못이에요! 제기랄!


손의 방향을 자세히 보면 워커가 아니고 그 어깨 너머의 카메라를 향하고 있죠. 루고가 워커를 가리킬 땐 어떤 경우에도 항상 경어를 썼는데 이때는 그냥 ‘YOU’라고만 말합니다.

또한 양심을 상징하는 루고가 게임에서 가장 먼저 죽게 되는데 이 죽음의 순서 또한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애덤스는 게이머의 ‘이성적 판단’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인질이었던 CIA요원 굴드와 민간인 사이에서 본래 임무인 민간인을 구하자는 의견을 말하기도 하고 영웅심리로 두바이를 구하겠다는 워커에 동의하며 게임 초반부에 의도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장치의 역할을 하죠.

하지만 헬기 추락 후 환영을 보고도, 게임을 계속하는 양심(루고)이 죽은 플레이어를 향해


루고는 너 때문에 죽은거야, 내가 아니라..

루고는 너 때문에 죽은거야, 내가 아니라..


이때는 횔씬 더 노골적으로 카메라를 가리킵니다. 이 이벤트 후에 애덤스 마저 워커를 떠납니다. 마지막 남은 이성마저 사라져 버린 거죠.


워커는 게임 주인공들의 ‘안티테제(Antithese)’ 자체입니다.

게임 내내 “옳은 일을 하도록 하자.”,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놈들은 대가를 치를 것이다” 등의 보통의 게임이었다면 영웅적인 대사들이 결말까지 보고 나면 오히려 악당이 세계를 파멸시키겠다는 대사와 다를 바가 없죠.

백린탄 사격 중에 조준 화면에 워커의 얼굴이 비치는데 사실 이 장면에서 이목구비가 모호해서 비치는 대상이 워커인지 또 다른 누군지 확실히 알 수가 없습니다. 검은 액정화면, 이 블랙 미러를 게임을 하는 여러분이 본다면 이 화면엔 과연 누구의 얼굴이 같이 비칠까요?


사실 이 장면의 메시지는 디스플레이 반사율에 달려있습니다.

사실 이 장면의 메시지는 디스플레이 반사율에 달려있습니다.


게임 내내 우리는 워커를 조종합니다.

하지만 3인칭 시점을 가진 게임이기 때문에 워커를 항상 관찰자 시점으로 보는 데다가 게임을 겉으로 보면 워커만 계속 비난 받기 때문에 플레이어와 독립된 존재로 보기 쉽지만 “잠깐. 잠깐, 이거 뭔가 이상해! 우리 이런 적이 있었어!”라는 대사를 통해 플레이어가 보는 것과 같은 것을 보아 왔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워커는 곧 플레이어의 분신 자체였음을 알려줍니다.


워커 때문입니다. 그가 한 짓입니다. 전부!

워커 때문입니다. 그가 한 짓입니다. 전부!


게임 내 학살들이 플레이어가 한 것들이 아니라고 한다면 워커가 콘래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도 워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죠.


콘래드는 우리가 그 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진실’입니다.

특히나 마지막 반전에 “자넨 자네가 될 수 없는 무언가가 된 것처럼 느끼고 싶었기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것일세. 영웅 말일세.”라는 이 말은 워커가 아닌 플레이어에게 직접적으로 던지는 이 게임의 주제를 관통하는 대사 그 자체입니다.


이 역시 콘래드의 총구는 카메라를 겨누고 있습니다.

이 역시 콘래드의 총구는 카메라를 겨누고 있습니다.


게임의 폭력성 문제는 아주 오랫동안 화두가 되어 전 세계의 게이머와 개발자 모두를 괴롭혀 온 문제입니다. 강력 범죄와 게임의 상관성 문제에 대하여 끓임 없는 찬반에 이어 WHO의 게임 이용장애 질병 코드 부여까지 다다른 것처럼 말이죠.

저 역시 한 명의 개발자로서 게임 규제 정책들엔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폭력적인 게임들이 정말로 우리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게 정말이라면 게임에 심의 등급도 필요가 없을 겁니다. 현실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랍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폭력적 게임을 한다고 폭력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폭력적이기만 하고 아무런 메시지도 없는 게임을 후대에도 길이 남길 수 있는 좋은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대놓고 ‘살인’에 대한 게임으로 논란이 됐던 〈헤이트리드(Hatred)〉

대놓고 ‘살인’에 대한 게임으로 논란이 됐던 〈헤이트리드(Hatred)〉


그렇습니다. 우리는 영웅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게임 속에서 수천을 죽이고 나온 살인마도 아닙니다. 주인공 워커와 같은 자신을 영웅으로 착각했던 살인마는 더더욱 아닙니다.

〈스펙 옵스 : 더 라인(Spec Ops : The Line)〉이 단순히 폭력 게임과 거기에 취한 게이머들에 대한 비난이 목적이었다면 마지막 선택지 또한 없었을 겁니다.

게임이 그저 악마들을 샷건으로 잔인하게 죽이기만 해도 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폭력적이든 얼마나 잔인하든 신선하고 재미만 있다면 용서되던 때가 있었죠.

어쩌면 이것도 게임이라는 미디어가 나이가 들어가며 좀 더 성숙해지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어릴 적에 우리의 앞을 가리고 세상을 즐겁고 아름답게만 보여주던 유치한 색안경이 벗겨지고 도망칠 수 없는 죽음과 부조리함, 절망이 있는 세상을 마주하는 것과 같은 과정 말이죠.


[1] 정식 명칭은 Woodstock Music & Art Fair로 1969년 8월 15일부터 4일간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전설적인 록 페스티벌. 32팀의 밴드가 참가했으며 입장객은 최소 30만에서 40만으로 추정되는 60년대 히피문화의 상징과도 같다. 초반에는 정상적인 버전처럼 들리지만 기타음을 최대한 왜곡시켜 폭격기가 폭격하는 소리 같은 전장의 소음처럼 들리게 연주한 버전이다.

[2] 아군을 조준했을 때 나오는 조준점

[3] 위협만 하면 선을 넘지 않았다는 도전과제가, 사살하면 선을 넘었다는 도전과제가 달성된다. 게임의 부제 THE LINE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4]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생명이나 신체를 위협할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나 정신적 외상을 경험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 질병. 우울증, 불안장애, 또는 공황장애를 동반한다.

[5] 게임 전체 연출에서 상징적으로 환상은 흰색으로 페이드아웃(fade-out)되고 현실은 검은 암전으로 페이드아웃된다. 이 의도를 알고 엔딩을 보면..


박지균

박지균

손가락을 마음대로 컨트롤하기 시작할 때
숟가락 쥐는 법보다
게임패드 잡는 법을 먼저 배운 이펙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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