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4 이세계 게임

이세계 게임 #3 소마(SOMA)

이(this) 세계에서 만들었지만 이(異)세계의 물건인 듯한 그런 게임을 소개하는 이세계 게임

세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인간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소마>입니다.


이세계 게임 #3 소마(SOMA)


게임만의 카메라, 일인칭 시점

“제가 한 것은 게임의 시점을 바꾼 것뿐입니다.” – 존 카멕, 평생공로상 수상소감 –

게임과 영화는 미디어 중 서로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 매체입니다. 그래픽과 연출의 발전 과정에서 게임은 영화를 따라 하려 했습니다. 현대에는 역으로 영화를 게임처럼 만드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그중 일인칭 카메라라는 개념은 <둠(Doom)>의 아버지, 존 카멕에 의해 시작되어 영화에서 일인칭 카메라를 연출하는 역영향까지 오게 되었죠.

게임 같은 영화 과

게임 같은 영화 <판더믹>과 <하드코어 헨리>


그만큼 일인칭 카메라 시점은 게이머와 주인공을 동화시켜 밀접하게 연결을 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때때로 이런 일인칭 카메라 장치는 단순히 시점을 넘어 게임적인 표현 장치로 이용되기도 하죠.

인디 게임 중 <포니 아일랜드>라는 게임은 언뜻 보면 브라운관 방식의 스크린 형태로 왜곡해 놓은 횡스크롤 레트로 게임처럼 보입니다. 사실 이 게임의 제목인 <포니 아일랜드>는 게임 속 게임의 제목일 뿐입니다. 진짜 정체는 <포니 아일랜드>를 플레이하고 있는 사람을 일인칭 카메라로 조종하고 있는 게임이죠. <포니 아일랜드>는 이런 설정에 의거해 온갖 기상천외한 연출을 보여줍니다.

절대로 포니에 대한 게임이 아닙니다. 일인칭 포확찢 게임이죠.

절대로 포니에 대한 게임이 아닙니다. 일인칭 포확찢 게임이죠.


이세계 게임 2편에서 FPS의 유행과 흥행에 대하여 언급했을 때, <둠>을 필두로 한 초기 FPS들은 공포 요소가 있다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일인칭 시점은 게임 내 주인공과 가장 밀접하게 동화된 시점인 만큼, 게이머에게 공포를 전달하는데 이만큼 효과적인 시점도 없었죠.

3D 그래픽의 발전과 함께 주인공에게 더 이상 강력한 무기를 주지 않았습니다. 성냥이나 손전등 정도만 준 채로 흉측하고 섬뜩한 적이 돌아다니는 어둡고 좁은 공간에 주인공을 던져놓았습니다. 이는 적을 피해 그 공포의 공간을 탈출해야 하는 일인칭 호러 게임 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유행을 발생시킵니다.

게임의 내용이 어떤지는 알고 싶은데 무서워서 스스로는 못하겠고, 누군가 대신 플레이하는 것을 구경 할 수 있다면? 곧 이 장르의 유행은 이후에 게임 스트리머라는 직업이 생기게 하는 촉매가 되기도 하였죠.

게임 스트리머의 선구자 퓨디파이도 프릭셔널 게임즈가 없었다면 지금의 명성이 없었을지도?

게임 스트리머의 선구자 퓨디파이도 프릭셔널 게임즈가 없었다면 지금의 명성이 없었을지도?


일인칭 호러 게임을 유행시키고, <암네시아> 시리즈로 유명한 프릭셔널 게임즈라는 개발사가 있습니다. 단 5명의 멤버로 이루어진 이 회사에서 <암네시아> 이후, 2015년 신작을 출시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지금부터 소개할 문제작 <소마> 입니다.


※ 주의 ※

본 내용은 게임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나’인가.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철학 분야에서 난제 중 하나인 ‘테세우스의 배’ 패러독스에 대해서 집고 넘어가야 합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치고 테세우스와 아테네의 젊은이들이 탄 배는 서른 개의 노가 달려 있었고, 아테네인들에 의해 데메트리오스 팔레레우스의 시대까지 유지 보수되었다. 부식된 헌 널빤지를 뜯어내고 튼튼한 새 목재를 덧대어 붙이기를 거듭하니, 이 배는 철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자라는 것들에 대한 논리학적 질문’의 살아있는 예가 되었는데, 어떤 이들은 배가 그대로 남았다고 여기고, 어떤 이들은 배가 다른 것이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플루타르코스(출처: 굽시니스트의 오만잡상툰)

플루타르코스[1](출처: 굽시니스트의 오만잡상툰)


이해하기 쉽게 이를 우리나라에 대입해 설명해보겠습니다. 국보 1호 숭례문은 2008년 방화 사건으로 대부분이 불탔습니다. 이후에 현대의 건축 자재들로 복구를 한 것이죠. 그렇게 현대의 자재들로 복구된 숭례문을 불타기 이전의 역사적 가치가 있던 숭례문과 ‘같은 것으로 볼 수가 있는가?’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논점을 사람에게 적용해봅시다.

뇌를 포함하여 사람의 신체의 대부분을 기계로 대체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치지요. 좀 더 좋은 지능과 기억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전자 두뇌가 개발됐습니다. 돈을 계속 모아가며 처음엔 30% 그다음엔 50%로 바꿔가는 중인 여러분이 있습니다. 100%가 되어 완전한 기계 몸을 가진 여러분은 몸이 기계로 변하기 이전의 나와 같은 ‘나’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전의 ’나’를 구성하던 부분이 완전히 사라졌는데도?

무엇이 ‘나’인가는 이를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전의 살과 피로 이루어진 ‘나’와 기계 몸의 ‘나’ 모두 똑같은 기억과 정보를 보유하며 동일한 인격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나’라고 보는 관점에서는 기억정보가 ‘나’를 정의하는 기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트랜스휴머니즘(주2)이 성행하고 있는 최근의 SF 미디어에서 보이는 관점이기도 하죠.

기계 몸의 나는 복제품에 불과하다는 관점도 있습니다. 이전의 살과 피의 나는 사라지고 새로운 기계 몸의 내가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죠. 이는 물리적인 물질이 ‘나’를 정의하는 기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는 사람의 뇌를 인격체의 기준으로 보는 경향이 짙어, 뇌의 유지 여부를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경계로 보기도 합니다. 이것은 과거의 SF 장르에서 많이 보이던 관점이었습니다.


SOMA = 1.
체세포 2. 축을 이루는 몸체 3. 정신과 대비되는 인간의 몸

<소마>는 이러한 테세우스의 배에서 비롯된 사물의 변화와 그 정체성의 지속에 대해, 게임의 배경인 심해만큼이나 깊게 들어가는 게임입니다. 그러면 테세우스의 배를 기억하며, 바로 게임을 시작해보지요.

필립 K. 딕이 쓴 현실에 대한 명문장과 함께 시작된다.

필립 K. 딕[3]이 쓴 현실에 대한 명문장과 함께 시작된다.


게임은 철저하게 2015년 캐나다 토론토에 살고 있는 주인공 사이먼 재럿의 일인칭으로만 진행됩니다. 사이먼은 자동차 사고로 친구인 애슐리를 잃고 자신도 영구적인 뇌 손상을 입은 청년입니다. 지속적인 치료 없이는 몇 개월을 넘길 수 없게 된 사이먼은 좀 더 긴 생명 연장을 위해 뇌 스캔 임상 실험에 지원했습니다. 뇌 스캔 장치가 눈앞을 덮고 기계가 다시 올라간 후에 눈을 뜬 사이먼의 눈앞에 들어온 광경은 더 이상 자신이 봤던 실험실이 아니었습니다.

버스에서 졸다가 정비소까지 온 느낌? 아니 그보다도 더 멀리 온 것 같다.

버스에서 졸다가 정비소까지 온 느낌? 아니 그보다도 더 멀리 온 것 같다.


버스에서 졸다가 종점에서 깬 것보다 몇 백배는 더 혼란스럽습니다. 미지의 검은색 유기물로 침식되고 있는 정체불명의 시설에서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믿고 있는 로봇과 기계들에게서 환청이 들리기까지 합니다. 눈앞을 가리는 노이즈 속을 헤매던 사이먼은 자신 외엔 살아있는 인간이 아무도 없는 이 시설에서 해답을 찾기 위해 탐험을 시작합니다.

근처에서 칼 셈켄의 시체를 발견했는데, 웬 로봇 하나가 자기의 손을 보라면서 자기가 사람인 칼 셈켄이라고 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로봇의 말을 잘 기억하자)

근처에서 칼 셈켄의 시체를 발견했는데, 웬 로봇 하나가 자기의 손을 보라면서 자기가 사람인 칼 셈켄이라고 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로봇의 말을 잘 기억하자)


시설을 돌아다녀보니, 지금은 2104년이며 이곳은 심해 속의 파토스-2(Páthos: 그리스어로 고통이란 의미)라는 시설 속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람들은 다 죽어있고 죽은 사람의 행세를 하는 로봇 아니면 이성을 잃고 날뛰는 로봇밖에 없었습니다. 혹시 뇌 스캔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켜 타임머신이 돼버린 건 아닐까요?

랭크전의 성적이 바닥을 기면 이런 곳으로 쫓겨난다고 합니다(?)

<LOL> 랭크전의 성적이 바닥을 기면 이런 곳으로 쫓겨난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통신실에 연락이 들어옵니다. 자신을 캐서린이라고 소개한 그녀는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는 방법을 사이먼에게 알려줍니다. 사이먼은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나 이 모든 상황의 진실을 알 수 있다는 생각에 서두르지만 통신실이 무너져 바닷물이 밀려들어옵니다. 이대로 죽는 것인가 하는 그 순간..!


진짜 인간? ‘진짜’의 기준이 뭐지
?

바닷물 속인데 익사는커녕 멀쩡한데다 그동안 보이던 손은 갑자기 기계로 보인다.

바닷물 속인데 익사는커녕 멀쩡한데다 그동안 보이던 손은 갑자기 기계로 보인다.


이 게임에서 가장 충격적인 이벤트로 지금까지 멀쩡한 손이 보여서 인간으로 알고 있었던 사이먼조차도 로봇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전에 자신을 칼 셈켄으로 알던 로봇이 자신의 손을 보라며 인간이라고 우기던 상황과 너무나 똑같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죠. 어쨌든 캐서린을 만나야 이 모든 일의 전말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심해 속을 전진하여 캐서린이 있는 기지에 들어왔지만 아직도 사람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군요. 캐서린의 목소리를 쫓아 방에 들어가 눈에 들어온 것은..

사람도 없고.. 동물도 없고.. 이 안엔 로봇만 있다. 이게 내 결론이다.

사람도 없고.. 동물도 없고.. 이 안엔 로봇만 있다. 이게 내 결론이다.


캐서린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캐서린은 자신의 정신이 로봇 안에 있다는 상황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죠. 심지어 자신의 정신이 담긴 칩을 단말기로 옮겨 달라고 합니다.

캐서린은 사이먼에게 현재 상황과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줍니다.

2103년, 혜성 충돌로 인해 지구의 표면은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목숨을 건졌으나 역시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된 파토스-2의 사람들에게도 절망만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 캐서린은 뇌 스캔을 통해 복제된 자신들의 정신을 ARK로 명명된 컴퓨터 속 가상 세계에 담았습니다. 이 컴퓨터를 로켓에 실어 우주에 쏘아 올려 ‘별들 사이에서 영원토록’ 살아가게 함으로써 인류의 존속을 도모했습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ARK는 지구를 떠나지 못한 채 발사되지 않았습니다. 눈을 뜬 캐서린은 자신의 정신이 로봇 안에 있었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음에 좌절하고 있었던 것이죠.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사이먼은 캐서린을 도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찾아 그들 자신과 함께 우주로 쏘아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ARK의 위치를 추적하여가는 여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됩니다. 지구 표면의 멸망 이후, 시설 전체를 관리하는 인공지능 WAU(Warden Unit)는 심해 기지 파토스-2의 인류들을 보존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WAU는 단지 인간을 보존 시키는 것을 우선시한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무엇이 인간인지에 대한 정의가 결여되어 있었죠. 그저 검은색 유기물인 구조 젤을 생산하여 인간의 살을 대신하고, 사람들의 복제된 뇌 스캔 데이터를 로봇에 업로드하여 반복 양산 시킬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ARK 프로젝트는 참여자들 사이에서도 수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뇌 스캔 된 정신이 전자화되어 ARK로 복사되면 낙원 같은 ARK과 시궁창 같은 현실에 두 명의 자신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뇌 스캔이 완료되면 현실의 자신은 자살을 하여 자신은 하나만 존재하는 상태를 유지시켜야 한다는 사상이 시설 내에 퍼지고 있었습니다.

단일 연속성을 위해 원본은 죽고 복사본만 남긴다.. 듣기엔 논리적이지만..

단일 연속성을 위해 원본은 죽고 복사본만 남긴다.. 듣기엔 논리적이지만..


문제는 WAU에 의해 그렇게 스캔 된 사람들이 ARK로 가지 못하고 로봇에 들어가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는 것이었죠. 그리고 주인공 사이먼의 2015년 캐나다에서 스캔 된 데이터도 발견됩니다.

단일 연속성 유지를 위한 자살 논리에 동의한다면 여기서 데이터 삭제를 하면 된다.

단일 연속성 유지를 위한 자살 논리에 동의한다면 여기서 데이터 삭제를 하면 된다.


2015년의 사이먼은 결국 뇌 손상으로 사망하였고, 이후 사이먼의 데이터는 뇌 스캔 기술의 연구를 위하여 인공지능 연구용 템플릿으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이 데이터와 잠수복을 입은 채 사망한 연구원의 시체를 바탕으로 만든 로봇이 바로 주인공 사이먼인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WAU가 인간을 학습하며 신체를 새로 생산하듯 만들어, 다른 괴물들이랑은 다르게 사이먼의 의식도 안정적으로 정착되었죠.


동전 던지기. 앞이 나오면 나. 뒤가 나오면 나(였던 것).

ARK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더 깊은 바다로 들어가야 했지만 잠수정을 사용할 수가 없게 됩니다. 사이먼의 잠수복을 오미크론 연구실의 강화복으로 바꿔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되죠. 하지만 사이먼의 정신이 들은 두뇌 칩이 잠수복 자체와 일체화되어 있어 잠수복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게 됩니다. 그것은 지금의 사이먼의 몸처럼 시체가 들은 강화복에 두뇌 칩을 넣고 구조 젤로 합성시키는 것이죠. 또 다른 몸을 만들어 캐나다 토론토의 사이먼이 복사되어 지금의 잠수복에 이식된 것처럼 똑같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이먼은 어떤 불안함을 느끼며 작업을 하지만 이내 이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알게 되죠.

눈 뜨고 일어났더니 또 다른 자신을 본다면?

눈 뜨고 일어났더니 또 다른 자신을 본다면?


스캔과 복사 과정은 순식간인데 새 강화복에서 일어나는 순간 잠수복 사이먼이 아직도 자신과 똑같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사이먼은 이 과정의 역겨움을 알게 됩니다. 역정을 내는 사이먼을 향해 캐서린은 이전의 사이먼을 정지시키고 싶으면 원하는 대로 하라고 타이르죠. ARK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왜 스캔 완료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심해로 내려가는 승강기에서 사이먼이 말합니다.

“만약에 사후 세계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곳에 내가 있을 자리가 마련되어 있을까? 진짜 나는 백 년 전에 죽었잖아. 그러면 내 자리는 남아있는 걸까? 또, 오미크론에서 내가 죽인 사이먼은 어떻고? 어떻게 생각해, 캐서린? 같은 사람의 복제들로 가득 찬 천국이란 것이 존재할까? 만약 그곳이 있다면 누가 감히 ‘가짜’라고 말 할 수 있을까? 난 그저 동전 내기를 한 거고 만약 반대편이 나왔다면 오미크론에서 썩어갔을 테니까 말이야”

“내 말은, 알 길이 없잖아 안 그래? 네가 ‘사이먼이 올바른 몸에서 깨어나는 버튼’을 누른 건 아니잖아?”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한 대사입니다. 정신이 복사되는 과정을 흔히 동전 던지기에 비유를 합니다. 정신이 복사되는 과정을 제3자의 눈으로 본다면 똑같은 사람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고, 원본과 복사본은 분명히 구분됩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철저한 일인칭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복사 과정에서 이전과 이후의 시점이 그대로 연속이 됩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의 사이먼이 잠수복 사이먼으로 연결되는 과정, 잠수복 사이먼이 강화복 사이먼으로 연결되는 과정, 정신이 이동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와 동시에 이동하지 않고 남아있는 사이먼의 시점도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죠.

복사가 되기 전, 눈을 감았다면 복사 후에 어느 몸에 자신이 있을지 눈을 뜨기 전까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ARK를 발사하기 위해 가는 여정이 곧 어떤 일을 의미하는지 결말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갑니다.

초심해의 밑바닥에도 더 바닥이라는 것이 있다.

초심해의 밑바닥에도 더 바닥이라는 것이 있다.


초심해 속에 있는 마지막 시설에서 ARK는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ARK 프로젝트는 발사 직전까지도 인류가 우주에서 가상 공간 속을 살아가는 것을 마지막 인간성의 말살로 생각하여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대기권을 뚫지 못할 가능성을 제기하며 ARK의 발사를 반대하였습니다. 결국 반대하는 사람들이 ARK를 발사하려는 캐서린을 사고로 죽게 했고, 1년이 넘도록 시설 구석에서 발사를 보류하고 있었죠.

최후의 인류와, 생전의 시체를 확인하는 캐서린

최후의 인류와, 생전의 시체를 확인하는 캐서린


ARK를 지키던 최후의 인류인 사라 린드웰의 안락사를 시켜달라는 부탁을 들어줄지는 개인의 선택입니다. ARK를 인계받고 발사 준비를 하며 사이먼은 말합니다.

“있지. 오늘 침대에서 일어났었어. 그게 일어난 지 백 년도 더 된 일이라고. 난 누구인 거지? 난 누구지?”

정체성에 대한 수많은 생각을 하면서도 ARK에 정신이 전송되면 사람의 몸을 가지고 푸르른 자연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사이먼과 캐서린은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설사 그것이 가상이라 할지라도 생물학적 인류가 멸종한 지금 더 이상의 차선책이 없습니다.

ARK의 발사 준비가 끝나고 발사 카운트다운과 동시에 오미크론 연구소에서 했던 것처럼 ARK에 캐서린과 사이먼의 정신을 복사하게 되는데..

사실 정말로 잘못된 건 없습니다. 여태까지 계속 그래왔고..

사실 정말로 잘못된 건 없습니다. 여태까지 계속 그래왔고..


ARK에 정신이 복사되었고 우주로 날아갔는데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거쳐온 사이먼들과 같이 정신이 복제되었고 복제할 때의 원본은 여기 그대로 있는 것뿐입니다. 단지 남아 있는 원본의 시점에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뿐이죠. 동전 던지기에서 진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죠.

100년 전에 죽은 사이먼처럼. 오미크론에 남아있는 사이먼처럼.

백 년 전에 사이먼도, 오미크론의 사이먼도. 자신의 복사본이 자신을 밟고 나아갔다는 것을 알았다면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입니다.

백 년 전에 사이먼도, 오미크론의 사이먼도. 자신의 복사본이 자신을 밟고 나아갔다는 것을 알았다면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입니다.


분노하는 사이먼을 뒤로 캐서린은 전력이 끊어지고, 사이먼의 외침만이 심해에서 공허하게 울리며 게임은 엔딩 크레딧을 맞이합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역설적이게도 게임의 제목인 ‘SOMA’란 사전적 의미로서 생물학적 인간의 체세포로 이루어진 신체를 말합니다. 하지만 작 중에서 온전한 인간의 신체를 가진 인물은 마지막 인류인 사라 린드웰 말고는 아무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마저도 생명 유지 장치로 생명을 유지하는, 스스로의 표현대로 마른 건포도 같은 신세죠.

이세계 게임 #3 소마(SOMA)

‘SOMA’라는 단어 자체는 작 중에서 딱 두 번 등장하는데. 바로 ARK 내 가상 환경을 시뮬레이션 할 때와 마지막 업로드 때입니다. 먼저, 가상 환경에서 사용할 육체의 명칭으로 등장하는데 체세포로 이루어진 진짜 육체도 아닌 가상의 육체를 ‘BODY’도 아닌 ‘SOMA’라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죠.

이것은 곧 ‘진짜 육체’라는 것은 그것이 기계이든 가상이든 스스로가 인식하고 제어할 수 있는 자신의 육체가 곧 진짜 육체이지 거기에 물질적인 경계를 두어 구분하는 것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죠. 마찬가지로 이 세계에선 ‘진짜 인간’도, ‘진짜 나’라는 것도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란 무엇일까요? 앞서 말한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처럼 정보와 연속적인 기억만이 인간의 본질인 걸까요?

이 게임에서 파토스-2의 인공지능 WAU는 인간이란 정보와 기억만이 인간을 정의하는 기준이라 생각합니다. 바로 그 정보와 기억이 담긴 뇌 스캔 데이터를 로봇들에게 주입하여 그것이 인간을 존속시키는 수단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혼란과 인간성의 말살을 낳을 뿐 이였죠.

그래서 WAU는 인간의 몸에(사망한 인간이지만) 이 시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오래된 인간의 정신을 넣어 주인공 사이먼을 만들어냈습니다. 정보가 답이 아니라면 물질적으로 인간에 가까우면 어떨까 하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본질을 이해해보려고 한 것이죠.

결과적으로 사이먼의 탄생은 ARK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연결되지만 ARK 프로젝트는 정말 성공적인 걸까요?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ARK로 복사된 사이먼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에필로그가 숨어있습니다.

ARK의 세계는 멸망 전의 지구를 재현해 놓았습니다.

ARK의 세계는 멸망 전의 지구를 재현해 놓았습니다.


이것으로 정말 다 괜찮은 걸까요?

이것으로 정말 다 괜찮은 걸까요?


이어서 나오는 유일한 3인칭 카메라 이벤트에서, 카메라는 발사된 위성을 비추며 ARK의 환경과는 대조적으로 파괴된 지구를 비추고 우주를 향해 점점 멀어져 가는 ARK를 보여주며 어둡게 암전되며 끝을 맺습니다.

태양광 발전이라 해도 유지 보수가 필요한 기계인 만큼 그것은 절대로 무한하지 않고 소행성이라도 맞는 순간 ARK 역시 끝장입니다. 결국 ARK 프로젝트 또한 가상세계인 만큼 그저 인류의 임시적인 도피처일 뿐이라는 암시적인 연출과 함께 게임은 정말로 끝납니다.

WAU가 시행착오를 계속 해왔지만 비록 시체이긴 해도 결국 온전한 정신의 인간의 육체를 가진 사이먼을 만들었듯이 어쩌면 새로운 환경에서 인간을 정말 계속해서 존속시킬 수 있는 새로운 ‘SOMA’를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그것이 한 새로운 인류의 기준이 되었겠죠. 게임 도입부에서 필립 K. 딕의 ‘현실’에 대한 문장이 삽입된 의미 또한 ARK와 같은 가상 세계가 아닌 외면하려고 해도 사라지지 않는 현실에서 답을 찾아야 했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소마>는 테세우스의 배와 같이 설명하기 힘든 모호한 개념을 일인칭 어드벤처 게임으로서, 게임만이 설명할 수 있는 것을 게임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게임이 철학적인 고찰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죠.

결국 인간은 무엇일까요?

처음에 물음을 제기한 고대 그리스부터 게임의 배경인 2104년에 이르기까지도 인류는 경험이 부족하기에 여전히 답을 내릴 순 없겠지만 <소마>같은 게임이 있는 한 우리는 언젠가 답을 찾을 것입니다. 늘 그랬듯이. 모 영화의 명대사처럼.



[1] 서기 46년 출생 120년 사망 추정. 그리스 로마 제정기의 시인. 로마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관직에도 있었으나 귀국하여 많은 전기 작품을 썼다.

[2]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인 한계나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인간의 모든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생명 공학, 기계 과학, 나노 기술, 의학 기술 등 인류의 모든 기술을 통해 신체를 개조하고 변형시켜 발전시켜야 한다는 사상. 그 과정에서 기존의 사회 통념이나 윤리적 문제점들 보다 신체 개조를 통한 인류의 발전을 더 우선시한다.

[3] 1928년 출생 1982년 사망. <마이너리티 리포트>, <토탈 리콜>, <블레이드 러너> 등 유명 헐리우드 영화의 원작 SF 소설가,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있다는 것만으로 그 위상을 대변한다. 생전엔 자본주의, 대기업, 할리우드를 적대시하여 사후에나 그의 소설들의 영화화될 수 있었다.


박지균

박지균

손가락을 마음대로 컨트롤하기 시작할 때
숟가락 쥐는 법보다
게임패드 잡는 법을 먼저 배운 이펙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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