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3 Creator Crew

NC TYPE PLAY – 게임, 생동하는 언어로 다시 태어나다. 디자이너 조규형

Creator Crew:
엔씨의 콘텐츠와 자신의 크리에이티브를 연결해 즐거움을 확장시키는 사람들

키보드를 두드리면 컴퓨터 화면에 글자가 아닌 그림이 떠오른다. 알파벳 ‘A’를 눌렀더니 용사 2명이 나타나 칼을 휘두르는 그림이 나타난다.  문자가 아닌 그림으로 구성된 이런 형식의 서체를 그림 언어라고 한다. 엔씨소프트의 게임 속 Play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그림 언어로 탄생했다. < NC TYPE PLAY >를 통해 게임을 그림 언어로 재해석한 디자이너 조규형. 그는 그림 언어 디자인 작업으로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그를 만나 < NC TYPE PLAY >의 재미있는 그림 언어들이 어떤 과정으로 탄생했고, 이 언어들이 어떻게 즐거움의 영역을 확장할지 들어본다.

∙ 랜선전시회 입장하기 → https://nctypeplay.com



모든 순간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발견하다


이번에 참여한 엔씨의 < NC TYPE PLAY >
는 어떤 프로젝트인지 소개해 달라.
< NC TYPE PLAY >는 엔씨소프트 게임 속의 다양한 PLAY를 모티브로 만든 그림 언어이다. 흔히 딩벳폰트라고도 한다. 알파벳이나 한글 서체에 라이트체와 볼드체, 이탤릭체가 있듯이 < NC TYPE PLAY > 그림 언어도 두 가지, 레귤러체와 레벨업체로 만들었다. 문자의 조합에 따라, 서체에 따라, 취향에 따라 무수히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

< NC TYPE PLAY > 에는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되었나.
스웨덴 유학 시절 스토리텔링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작품으로 그림 언어 디자인 작업을 했는데, 감사하게도《월페이퍼》표지에 실렸다. 그 후 알파벳과 한글을 그림 언어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그 당시에 내가 작업한 그림 언어들은 대중적으로 활용되는 용도가 아니라 예술 작품이라는 의미가 더 강했다. 그렇다 보니 시간이 흘러 생명력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번 < NC TYPE PLAY >는 누구나 쓸 수 있도록 살아 숨쉬는 개방형 그림 언어를 만드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많은 사람이 서체를 다운받고, 소유하며,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라 생각되어 기쁜 마음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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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에서 스웨덴 유학과 스토리텔링 학과 졸업이 눈에 띈다. 디자이너로서 스토리텔링 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과거 국내 브랜딩 회사에서 클라이언트의 이야기를 함축해서 시각화하는 CI 작업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이젠 나만의 이야기를 정형화되지 않는 과정으로 표현하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어 유학을 결심했다. 스토리텔링학과에서는 이야기 본연에 집중하고 다양한 미디어로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을 훈련한다. 모든 것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에 어떠한 과정도 어떠한 결과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본인의 작업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나의 작업은 일상에서 어떤 대상을 관찰하고 그걸 상상으로 확장해 이야기를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를 그저 감상하거나 소유하기보다 일상에서 사용해야 그 의미가 더 커진다고 생각한다. 그림 언어도 액자에 담긴 회화 작품이 아닌 서체 형식으로 만든 것도 사람들이 직접 사용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림 언어이야기의 사용성 보여주는 중요한 작업 같다. 처음 그림 언어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과정과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당시 나에겐 언어가 간판이나 책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쉴 새 없이 일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언어에 자유를 주기 위해 정보 전달 기능을 지우려고 했다. 그럼 언어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언어를 만들어보려 했고 그 결과 그림 형태의 언어가 탄생했다.

다음 단계로 그림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림 언어를 제품화하기 위해 만질 수 있는 언어를 생각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노랫말이 그림 언어 패턴이 수놓아진 담요가 되고, 사별한 남편에게 받은 러브 레터가 그림 언어 벽지가 되었다. 궁극적으로는 이야기가 직접 만져지고 사용될 수 있는 사물이 된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주목을 받으며 내 대표작이 되었다.


게임, 생동하는 언어로 태어나다

< NC TYPE PLAY > 게임이 언어가 되는 작업이었다. 평소 게임에 관심이 있었나
나도 게임에 몰입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또 게임 자체가 뇌를 말랑말랑하게 유지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엔씨소프트 게임 영상이 워낙 아름답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눈여겨보고 있었다. 엔씨의 게임 콘텐츠는 종류도 많은 데다가 리니지 1, 2 버전도 다르다. 동양적인 콘텐츠와 서양적인 콘텐츠가 섞여 있고 특히 형태와 크기, 스토리가 변주되는 몬스터들이 흥미로웠다.

게임을 재해석하기 위한 자료 조사는 어떻게 진행했나.
먼저 게임 이미지와 스토리를 읽고 분석해서 영감을 얻었다. 게임도 보고 유저의 반응도 확인했다. 특히 ‘플레이’ 자체가 동작에 관한 이야기라서 게임 그래픽 영상을 수없이 반복해서 봤다.

게임에 몰입하기 위해 내가 캐릭터가 되어 ‘만약 적과 싸운다면 어떻게 공격할까?’, ‘어떤 구도에서 싸워야 유리할까?’, ‘어떤 캐릭터를 나의 동료로 삼아야 이길 수 있을까?’ 등등 여러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았다. 그 과정에서 이야기를 문자로 엮어 구조를 짜며 엄청난 양의 드로잉을 했다.

그림 언어 디자인하는 과정에는 어떤 기준이나 규칙이 있었나.
< NC TYPE PLAY >에서는 글자를 만들기 위해 소스를 찾는 것이 아니라, 먼저 흥미 있는 캐릭터의 동작과 상황을 낱개로 다 그렸다. 실제 적용된 것보다 세 배수 이상 그렸을 것이다. 예를 들어 A에는 삼각형과 사선 두 개가 필요하다. 그럼 내가 그린 그림 중에서 그런 요소가 있으면서 동작도 어울리고, 스토리의 변주도 줄 수 있는 그림을 추려낸다.


알파벳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여러 캐릭터가 어우러져 하나의 문자가 만들어지는 모양이다. 각 알파벳에 어울리는 캐릭터는 어떻게 선정했는지 궁금하다.
계속 A를 예로 들어보면 삼각형에 사선 두 개가 필요하니까 용사 두 명과 삼각형 형태의 몬스터가 들어가면 대문자 A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A부터 Z까지 문자처럼 읽힐 수 있는 구조를 짠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둘 다 칼을 쓰면 지루할 수도 있다. 한 명은 칼을 쓰고 한 사람은 봉을 쓴다. 또 한 명은 갑옷을 입고 있고 한 명은 붕대를 감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각기 다른 캐릭터들의 개성이 드러나면서도 조형적인 어울림과 관계가 잘 드러나도록 선정했다. 각각의 알파벳에 각각의 스토리가 담겨 있다.

< NC TYPE PLAY >는 레귤러체와 레벨업체 그리고 특수문자까지 있다. 차이점은 어떻게 만들었나.
레귤러체는 캐릭터가 처한 상황을 포착한 그림이고, 레벨업체는 그들이 서로 작용하는 모습을 시각화 했다. 레귤러체에서 레벨업체로 변할 때 사람들이 “우아!” 하고 감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레벨업을 했을 때 예상치 못한 새로운 이야기가 발견되고 캐릭터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예를 들어 A레귤러체는 용사 두 명과 몬스터가 있고, 그들이 삼각구도를 이룬다. 그런데 A 레벨업체에서는 용사 한 명은 칼을 찌르고, 다른 한 명은 봉을 휘두른다. 즉 레벨업체는 레귤러체와 달리 캐릭터가 속박된 형태를 벗어나 살아 움직이고 관계를 맺는 것에 주목했다. 레귤러체는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데 집중했고 레벨업체에서는 동작을 구현하고 긴장감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기본적인 서체 디자인과 그림 언어 디자인하는 작업의 가장 차이점은 무엇인가.
가독성이 요구되는 본문형 서체는 일단 문자를 빠르게 판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림 언어의 경우에는 그와 동시에 이야기가 보여야 한다. 문자에 숨을 불어넣고 캐릭터의 개성도 보여줘야 한다. 그 두 가지를 잘 조율해 내는 것이 핵심이다. 조형적인 미와 캐릭터의 관계 그리고 각각의 개성이 조화롭고 생동감 있게 살아있어야 한다.

< NC TYPE PLAY >에서 엔씨의 아이덴티티와 본인의 개성, 가지를 어떻게 조화롭게 발전시켰나.
내가 하는 모든 작업은 내 머릿속에서 나오고 내 손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특별히 ‘내 스타일’이라는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 모든 작업 과정에 내 정체성이 녹아 있다. 오히려 외부의 자극이 없다면 내 프로젝트는 매번 똑같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클라이언트가 주는 요구사항은 내게 무척 감사한 자극이다. 내 정체성을 변주하게 하고, 새로운 작업을 탄생하게 한다. 클라이언트는 의견을 주고받으며 같이 작업을 만들어가는 ‘협업자’이다. < NC TYPE PLAY >는 엔씨소프트가 그동안 꾸준히 개발해온 게임들도 협업자인 공동 프로젝트였다.

이야기를 연결하면 즐거움도 확장된다

디자인 적으로 아름답기만 언어 아니라, 단어에 의미를 싣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디자인은 아름답게만 만들면 되는 게 아니다. 시각적인 오브제에 정보를 담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임무이다. 디자인 자체에 의미나 이야기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생겨난다. 이야기 또한 모이면 또 다른 이야기로 연결될 수 있다. 그러면 새로운 즐거움이 발견되고 배로 커질 것이다. < NC TYPE PLAY >도 언어들이 모여 그들 스스로 이야기가 연결되고 확장될 수 있다. 그런 즐거운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디자이너로서 내 역할이다.


사용자들이 < NC TYPE PLAY > 폰트를 어떻게 즐기고 사용하면 좋겠는가.
사용자들이 타이핑을 하며 게임을 하듯이 플레이 자체를 즐겼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찾고 그림 언어와 이야기를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름을 그림 언어로 만들어 자기의 방문 앞에 붙일 팻말을 만들거나, 텍스타일 프린팅으로 옷이나 가방을 만들어 직접 착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아이들을 위한 색칠공부 책으로 만들어도 좋겠다. 여러 가능성이 상상되고 다양한 결과물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 NC TYPE PLAY > 폰트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조합이 있는가? 만약 단어나 문장을 쓴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언어를 디자인할 때 어느 하나가 더 예뻐 보이거나 튀면 안 된다. 내게는 어느 한 문자가 도드라져서 다른 문자가 섭섭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떤 문자의 조합이 더 아름답고 더 마음에 든다고 할 수는 없다. 꼭 한 단어를 골라야 한다면 2월에 딸이 태어났는데 이름이 ‘은유’이다. 그래서 ‘메타포’라는 단어를 쓸 것 같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서체 디자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2016년도에 한글 그림문자를 발표하고 4년 후 베리어블 서체가 등장했다. 레귤러냐? 볼드냐? 정해진 서체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그 중간 지점 어딘가를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용자들의 선택권이 다양해져서 정형화된 것이 아닌 움직이는 그 중간의 단계를 멀티미디어적으로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 앞으로는 타이핑을 하며 색이 변하거나 3D이미지처럼 입체화된 서체 등 이제까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포맷의 서체들이 나올 것 같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참여할수록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은 무한하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야기를 찾아서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실 디자인에는 변칙성을 만드는 엉뚱한 공상이 활력이 되어 생명력을 부여한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답고 흥미로워도 사용되지 않으면 쉽게 잊힌다. 그래서 디자인에는 합목적성과 심미성이 중요하다. 또한 자극적이고 현란한 디자인보다 오래도록 지속 가능한 디자인도 중요하다.

디자이너로서 추구하는 목표가 있다면.
사실 많은 디자이너의 목표는 오랫동안 디자인을 하는 것이다. 나도 오래도록 디자인을 하고 싶어서 분야를 다양하게 확장했다. 그렇게 영역을 확장하면서 배울 것이 많아졌다. 그래픽 디자인을 하다가 가구 디자인을 하면 다시 초임자가 됐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과정이 매우 즐겁기도 하다.  오래도록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이제 혼자서는 디자인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평생의 디자인 파트너와 딸이 생겼다. 요즘 가족과 함께 오랫동안 새로운 디자인을 하는 상상을 한다.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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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이자 아내 최정유와 Studio Word 운영하고 있다. 스튜디오 이름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나.
그레고리 알란 아이사코브의 ‘Word’라는 노래에서 가져왔다. 이 노래에는 같은 단어라도 밤에는 그 의미가 달라진다는 가사가 있다. 단어는 사전적으로 뜻이 정해져 있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 화자에 따라 그 단어의 뉘앙스가 달라진다. 우리의 디자인도 노래 가사처럼 어떤 사람, 어떤 공간, 어떤 시간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스튜디오의 이름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11월에 2개의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전통 갓을 만드는 장인과 갓을 상품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고, 서울역사284와 뉴트로 트렌드에 맞춰 레코드 전도 오픈할 계획이다. 올해 여러 프로젝트를 해서 연말에는 아내와 딸 은유와 함께 여유를 갖고 싶다.

* 본 인터뷰에서 언급되는 내용은 인터뷰 당사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NCSOFT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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