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4 Creator Crew

NC FICTION PLAY – 나무는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 게 아니라 어디에든 연결돼 있었다 ‘춤추는 건 잊지 마’ 김중혁

Creator Crew:
엔씨의 콘텐츠와 자신의 크리에이티브를 연결해 즐거움을 확장시키는 사람들

엔씨의 < NC FICTION PLAY >에서는 배명훈, 장강명, 김금희, 김초엽, 김중혁, 편혜영, 박상영, 국내 대표 일곱 명의 소설가들이 쓴 즐거움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로 엮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로 독자들은 작가들의 일곱 가지 이야기를 보고, 듣고, 경험하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어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상상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번 ‘춤추는 건 잊지 마’의 작가인 김중혁 소설가는 웹디자이너, DJ, 잡지사 기자, 방송 진행자, 만화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다재 다능한 소설가입니다. 김중혁 작가와 인터뷰를 통해 난민과 경계 그리고 희망과 즐거움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봅니다.

∙ NC FICTION PLAY 입장하기 → https://blog.ncsoft.com/fiction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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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가치

 

이번에 참여한 엔씨의 < NC FICTION PLAY >에서 ‘춤추는 건 잊지 마’라는 작품을 쓰셨다. 어떤 이야기인지 소개해 달라.
이번 작품은 난민과 경계에 대한 나의 고민과 숲이라는 공간을 결부하여 풀어낸 이야기이다. 제목 ‘춤추는 건 잊지 마’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록밴드, The Kinks의 노래 ‘Don’t Forget to Dance’에서 가져왔다. 삶의 끝자락에 선 사람에게 충고해 줄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저 말을 해주고 싶다고 생각해 이전부터 이 제목으로 꼭 한번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 아무리 나쁜 순간이 와도 춤을 출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면 약간의 희망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잡지사 기자, 방송 진행자, 만화가 등 많은 활동을 하지만 게임 회사와의 협업은 처음일 것 같다. 엔씨의 제안을 받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게임의 미래가 곧 스토리텔링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가 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소설을 통해서 스토리텔링을 배웠다면 다음 세대는 게임을 통해 이를 배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엔씨와 같은 게임 회사가 스토리텔러에게 협업을 제안한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매우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게임이라는 매체만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선 게임은 상호작용을 통해 콘텐츠가 무한히 확장되는 매체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물론 영화나 소설도 관객이나 독자가 참여함으로써 완성되고 이야기가 풍성해지지만, 게임처럼 직접 참여해서 나만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를 창조할 수 있는 매체는 없는 것 같다.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게임을 많이 참조하는데, 언젠가는 소설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처럼 게임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에 다른 세계로 이동해 볼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에서도 매력적이다. 현실이 좀 힘들고 팍팍할 때, 이 현실을 잠시 잊고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때 게임만 한 것이 없다. 나 역시도 소설이 잘 안 써지거나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면 기분 전환을 위해 게임을 한다. 게임을 하면 머리가 리셋되는 느낌이어서 머리를 많이 쓰고 활발하게 아이디어를 내야 할 때,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보조 수단이다.

< NC FICTION PLAY >의 주제가 즐거움이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즐거움은 무엇이며, 이번 소설에는 즐거움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궁금하다.
즐거움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선의 가치가 아니라 결코 잃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가치이다. 살다 보면 무작정 행복해지는 순간도 있겠지만, 언제나 즐거울 수는 없다. 그래도 최소한 즐거워지려고 노력하거나 언제든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괴로울 만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이 어떻게 위안을 구하는지를 소설을 통해 그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삶의 최저선에서도 춤추는 것을 잊지 않는 순간이 곧 즐거움의 마지노선이라는 의미를 담아 ‘춤추는 건 잊지 마’라고 제목부터 먼저 정하고 제목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작가님은 어떤 때에 즐거움을 느끼는가.
안 즐거워 보이겠지만 (웃음) 지금 이 순간도 너무 즐겁다. 나는 기본적으로 즐거운 상태일 때가 훨씬 많지만 혼자 있을 때 제일 충만한 즐거움을 느낀다.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즐거움은 돌아서면 어느 정도 휘발되어 버리기도 하는데, 혼자 놀 때는 엄청 바빠서 그런지 온전하게 충만해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작업실에 책 읽는 곳, 글 쓰는 곳, 그림 그리는 곳, 음악을 듣는 곳, 연주하는 곳 등 구획이 다 나눠져 있다. 그래서 작업실만 한 바퀴 돌아도 하루가 끝나고, 혼자서 굉장히 즐겁게 살고 있다.

이야기를 상상하고 글을 쓰는 창작의 순간에도 즐거운가.
창작의 매 순간이 즐겁고, 내가 쓴 이야기를 누군가 읽을 것이라는 그 가능성만으로도 신이 난다. 보통 가상의 독자를 상정하고 글을 쓰는데, 그렇지 않으면 일기가 될 것이고, 글을 쓰는 재미도 분명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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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최저선에서도 춤추는 것을 잊지 마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상상하는 시간을 건네주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이번 작품에서 오랜 시간 골똘히 생각하고, 상상했던 것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보통은 소설을 쓸 때마다 스타일이 조금씩 달라진다. 어떤 소설은 인물이 중심이 되고, 어떤 소설은 사건이 중심이 되는데, 이번 작품 ‘춤추는 건 잊지 마’에서는 공간에 대한 상상에 집중했다. 게임을 만들 때 세계관의 설정이 더 중요한 것처럼, 이번 소설에서도 인물보다는 판타지적 세계에 살고 있는 식물이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공간을 먼저 만들었다.

소설 속의 공간은 상상 속의 공간이고 나는 그 새로운 공간을 상상하고 소설에 구체화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가 이 작품을 읽고 “이런 곳이 정말 있다면 가보고 싶다.”라고 말하든가, “잘 알고 있는 곳에 다녀온 느낌이 든다.”라고 하는 등 ‘공간의 확장’을 느꼈다면 나로서는 무척 기쁠 것 같다.

이번 작품은 많은 요소가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표현된 것 같다. 예를 들자면 ‘보더라인 경계원’은 ‘경계원’이라는 명칭 때문에 군인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민간인이다.
의도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모호하게 잡았고, 근미래를 상상했다. 그 미래에는 군인보다는 용병이 돈 때문에 경계선을 지킬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크고 작은 분쟁이 끊임없이 생길 것이고, 자연스레 ‘난민’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사람이 끝없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 미래가 온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를 생각해 보고 싶었다.

전작 ‘내일은 초인간’에서 쓸모없고 사소한 초능력을 지닌 이들의 모험담을 다루었다. ‘춤추는 건 잊지 마’의 송서우도 혹시 나무의 이야기를 듣는 초능력이 생긴 것인가.
보는 사람에 따라서 일종의 초능력일 수도 있고, 환각 상태에 빠진 미치광이일 수도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미쳤다’는 표현을 하면, 그건 ‘제정신이 아니다’는 의미도 있지만, 때론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모습이라는 의미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은 그야말로 ‘미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춤추는 건 잊지 마’에서 송서우가 우연히 발견하고, 자신도 모르게 이끌려 가게 되는 ‘둥근 정원’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야산이나 덤불이 많은 곳을 지나다 보면 불가사의하게 텅 빈 공간을 가끔 만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는 않지만 어떤 이유 때문에 그곳에 텅 빈 공간이 생겼을 것이다. 실제로 아마존이나 밀림에 가면 악마의 정원으로 불리는 공터 같은 곳이 있다. ‘그런 공간들이 왜 생겼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둥근 정원’이라는 공간을 떠올리게 되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누구나 자신만의 작은 숲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송서우에게 둥근 정원은 모든 현실의 고민에서 벗어나 쉴 수 있는 그만의 ’리틀 포레스트’일 것이다.

작가님에게도 ‘둥근 정원’과 같은 공간이나 대상이 있는가.
나에게는 소설이 둥근 정원이다. 소설이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세계를 확장하다 보면 현실 세계의 비좁음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속 등장인물에게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말이 담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송서우는 경계선에서 어떠한 선택을 강요당했다. 하지만 그 선택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했다. 결국은 희망이나 절망과는 상관없는 개인의 윤리적 선택이 소설의 결말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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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세계와 닮았지만, 아주 미세하게 다른 가상의 공간
세밀하게 관찰해야지만 알 수 있는, 그런 세계

 

이번 작품에서 공간,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고 하셨는데, 그런 새로운 세계의 구체성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소설은 현실의 거울이다. 그렇기에 구체적인 현실 앞에 거울을 갖다 대면 자연스럽게 소설 세계도 구체성을 띠게 된다.

업무상의 기밀을 함부로 말씀드리는 것 같은데 (웃음) 작가는 머릿속에 수많은 창고를 가지고 있고, 일상생활에서 많은 것을 끊임없이 수집한다. 인물과 사물 그리고 장소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맞닥뜨리는 순간 순간마다 그 정보를 거르지 않고 창고에 막 밀어 넣고 쌓아 둔다. 그리고 글을 써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 창고에 들어가 쓸 만한 것들을 가져와 맞춰보고 조립하며, 아니다 싶으면 다시 밀어 넣어 둔다. 그 과정을 왔다 갔다 하면 글이 완성된다.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면서 벽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하는가.
글이 잘 안 써지는 것이 슬럼프라고 한다면 그런 순간은 매일, 매시간 있다. 그럼 매일이 슬럼프일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 글을 못 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슬럼프는 없다. 그냥 지금 막혀 있는 이 길을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정면 돌파해서 뚫고 나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나는 벽에 부딪히는 재미로 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별로 괴롭지 않다. 오히려 벽에 부딪힐 때마다 ‘이번에는 어떤 방법을 통해 빠져나갈까’, ‘어떻게 해야 통과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즐겁다.

소설을 쓰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
일단 독자가 내 소설을 읽는 동안 한 번이라도 웃을 수 있는 소설,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을 쓰고 싶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완전한 악을 상정하기보다는 순수한 선을 마음속에 그리며 글을 쓴다.

요즘 많은 콘텐츠에서는 사람이 너무 쉽게 죽는다. 그래서 내 소설에서만이라도 사람이 쉽게 죽지 않게 한다. 내 세계에서는 우리의 현실 세계와 닮았지만, 아주 미세하게 다른 가상의 공간을 그린다. 아주 미세하게 관찰해야지만 알 수 있는 그런 세계 말이다. 그래서 아마 어떤 분들이 보기에는 이야기가 심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다 의도한 것이다.

그럼 이번 작품을 통해 독자가 함께 공유했으면 하는 고민이나 생각이 있다면.
앞으로는 ‘경계선’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가 올 것이다. 국경은 이미 허물어졌기에 국경선이 아닌 새로운 경계선이 만들어질 것이다. 과연 그런 근미래에도 우리가 누군가를 차별하게 될 것인지, 누군가를 차별하는 것은 본능인지 문화인지, 만약 차별이 유전적으로 내포된 요소라면 우리는 어떻게 더 세상으로 갈 수 있는지 고민하며 이 작품을 썼다. 이러한 나의 고민을 독자들이 어떤 뉘앙스로 받아들일지 궁금하고, 같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작품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한 문장을 말해 달라.
한 문장 말고 소설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싶다.

"둥근 정원으로 들어가는 순간, 철문을 닫은 것마냥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나무들은 계절과 상관없이 푸르러 보였고, 모든 가지들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했다.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바닥에 철조망이 있었다. 손으로 만지니 부러진 가지였다. 가지로 땅을 팠다. 두 손으로 흙을 긁었다. 낙엽 속에서 따듯한 흙과 건조한 모래가 뒤섞여 나왔다. 깊숙한 곳에 있을 뿌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손이 금세 축축해졌다."

* 본 인터뷰에서 언급되는 내용은 인터뷰 당사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NCSOFT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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