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6 게임 디자인 레벨업

게임 디자인 레벨업 #22 게임 속 자동 플레이의 역사

보다 새롭고 창의적인 게임 디자인을 발굴하기 위해, 최신 게임 트렌드와 사례 연구에 힘쓰고 있는 엔씨의 개발전략실!

이번 글에서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게임에서 보여지는 자동 플레이 기능이 어떻게 활용되었고, 앞으로 어떤 발전 가능성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게임 디자인 레벨업 #22 게임 속 자동 플레이의 역사


자동 플레이의 정의

기본적으로 현대의 비디오 게임은 자동화된 컴퓨터 연산 결과를 화면에 표시하는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과거 TRPG 시절의 룰 계산 방식을 자동화한 많은 RPG들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가 어떤 부분에 개입하고, 어떤 게임 플레이를 경험할 수 있는지에 따라 해당 게임의 장르가 결정되기도 합니다.

TRPG는 복잡한 룰과 계산식을 가지고 있어 접근성이 낮은 편

TRPG는 복잡한 룰과 계산식을 가지고 있어 접근성이 낮은 편


보통은 이런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조작을 자동화한 매크로’ 같은 기능적인 측면만을 자동 플레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플레이 경험 측면에서 보면 ‘과정에 대한 개입보다 절차를 생성하거나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핵심 재미인 게임’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심시티> 시리즈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 속 규칙은 사용자가 직접 개입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음

<심시티> 시리즈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 속 규칙은 사용자가 직접 개입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음


이런 특성 때문에 주로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매니지먼트 게임들에서 자동 플레이 기능은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반복적인 게임 플레이가 필요한 RPG들에서 자동 플레이는 적극적으로 도입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본문에서는 대표적인 사례를 통해 과거부터 지금까지 어떤 방법으로 이 자동 플레이 기능을 활용해왔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단순 반복 행동의 자동화

과거 많은 RPG에서는 종종 레벨 성장을 위한 반복적인 전투 구간이 배치되기도 했습니다. 흔히 ‘레벨 노가다’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이 그라인딩 구간은 다음 도전 과제의 요구 스펙을 맞추기 위해 경험치와 아이템을 파밍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 구간에서는 다음 도전 과제를 마주하기 전까지 필연적으로 전투 난이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단순 전투만으로도 승리할 수 있는 반복 사냥을 하게 됩니다.

전투 동작을 반복하는 &lt;마더&gt; 시리즈의 자동 전투

전투 동작을 반복하는 <마더> 시리즈의 자동 전투


이때의 피로감을 줄이기 위해 초기 JRPG들은 자동 전투 시스템을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기능 자체는 단순히 특정 커맨드를 재반복하는 수준이지만 초기 턴제 RPG들은 다양한 선택지가 필요하지 않아 충분히 본래의 기능을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능이 점차 자주 사용되면서 단순히 무미건조한 시스템적 편의 기능으로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게임 세계관에 어울리는 설정을 덧붙여 설득력을 높이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자동 전투는 전투 지원 로봇이 진행한다는 설정의 &lt;스내쳐 SD&gt;

자동 전투는 전투 지원 로봇이 진행한다는 설정의 <SD 스내처>


<메탈 기어 솔리드> 시리즈로 유명한 ‘코지마 히데오’의 초기작 중 하나인 <SD 스내처>에서는 초반에 자동 전투를 지원해줄 로봇을 지급하는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이를 통해 단순 기능에 게임 세계관과 어울리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낮은 단계의 AI 플레이

하지만 게임의 발전으로 캐릭터가 할 수 있는 행동이 점차 다양해짐에 따라 단순 반복적인 자동 플레이만으로는 제대로 된 플레이가 어려워지게 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동 플레이는 단순 반복을 위한 매크로에서 기능적으로 고도화하기 시작합니다.

&lt;드래곤 퀘스트4&gt;의 자동 전투 시스템인 ‘작전’ 설정 화면

<드래곤 퀘스트4>의 자동 전투 시스템인 ‘작전’ 설정 화면


넘버링 최신작인 &lt;드래곤 퀘스트11&gt;의 작전 시스템

넘버링 최신작인 <드래곤 퀘스트11>의 작전 시스템


대표적으로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작전’이라는 자동 전투 시스템이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일종의 규격화된 AI 패턴을 캐릭터의 전투 방식으로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AI 패턴들은 ‘전력을 다하자’, ‘주문을 아끼자’, ‘회복에 힘쓰자’라는 식으로 각 패턴의 특징을 대표하는 문구로 표현해 학습하기 쉽게 제공되고 있습니다. 또한 수동 조작의 경우도 ‘명령을 들어라’ 같은 식으로 작전 시스템의 선택지 중 하나로 제공됩니다.

모바일로 출시된 &lt;드래곤 퀘스트 워크&gt;에서도 꾸준히 사용되고 있는 작전 시스템

모바일로 출시된 <드래곤 퀘스트 워크>에서도 꾸준히 사용되고 있는 작전 시스템


이 작전 시스템은 시리즈 최신작까지 사용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전투 스트레스를 줄이고 스토리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돕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완전 자동 전투를 지원하는 게임으로 팔콤의 <영웅전설3>의 전투 시스템을 들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은 일반적인 전투 조작 없이 완전 자동 전투로 게임이 진행되며 전투 중에는 미리 만들어둔 전투 패턴을 변경하는 것만 가능합니다.

남은 체력에 따라 행동 양식을 조합해 나만의 전투 AI를 세팅해야 하는 &lt;영웅전설3&gt;

남은 체력에 따라 행동 양식을 조합해 나만의 전투 AI를 세팅해야 하는 <영웅전설3>


<영웅전설3>의 전투 패턴은 남은 HP에 따라 어떤 행동을 할지 지정하는 방식입니다. 잔여 HP 구간에 따라 캐릭터가 어느 위치로 이동해 공격 또는 회복 스킬을 사용할지 설정해 일종의 AI 프리셋을 만들어 사용하게 됩니다.

답답한 아군 AI 때문에 보스보다 잡기 어렵다는 폰 독수리는 많은 플레이어를 좌절시킨 주범

답답한 아군 AI 때문에 보스보다 잡기 어렵다는 폰 독수리는 많은 플레이어를 좌절시킨 주범


다만 이 전투 방식의 경우 사용자의 개입이 완전히 막혀있기 때문에 적절한 대응을 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전투 난이도가 높은 적을 만나거나 AI가 비효율적인 동작을 할 경우 굉장히 큰 스트레스를 주게 됩니다.

설정 가능한 행동 패턴은 다양한 편이지만 직관적이지 않고 결과값도 만족스럽지 못함

설정 가능한 행동 패턴은 다양한 편이지만 직관적이지 않고 결과값도 만족스럽지 못함


또한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작전 시스템처럼 AI가 동작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포장해 두지 하지 않아 시스템 자체를 학습하기 어려운 부분도 큰 단점 중 하나였습니다.

세미 오토 방식으로 전투 시스템이 변경된 &lt;신 영웅전설3&gt;

세미 오토 방식으로 전투 시스템이 변경된 <신 영웅전설3>


결국 이후 리메이크된 <신 영웅전설3>에서는 플레이어가 직접 이동과 공격을 조작할 수 있는 전투 커맨드가 추가되었습니다. 다만 기존의 자동 전투 시스템 자체가 삭제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일종의 반자동 전투 시스템을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절차를 만들고 결과를 시뮬레이션하는 게임

자동 플레이는 주로 시뮬레이션이나 매니지먼트 게임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게임들은 주로 계획을 수립하고 그 결과를 지켜보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 핵심 플레이기 때문에 자동 플레이와 궁합이 가장 잘 맞는 장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황 파악을 통해 시기 적절한 명령을 내리는 것이 중요한 &lt;로드 모나크&gt;

전황 파악을 통해 시기 적절한 명령을 내리는 것이 중요한 <로드 모나크>


팔콤의 <로드 모나크>는 지정된 맵에서 상대 세력을 전멸시키는 것이 목적인 전략 게임입니다. 일반적인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과 달리 병력 생산, 영토 확장, 전투 등 중요 행위는 대부분 자동 진행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플레이어는 적의 이동을 막는 목책이나 이동을 위한 다리 건설 등 제한적인 개입만 가능합니다.

쿼터뷰 시점으로 변경되어 출시된 후속작 &lt;모나크 모나크&gt;

쿼터뷰 시점으로 변경되어 출시된 후속작 <모나크 모나크>


결과적으로 일반적인 전략 게임들과 달리 유닛 하나하나를 잘 컨트롤하는 것보다 상황을 잘 이해하고 적절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덕분에 기존 전략 게임들과 달리 더 큰 스케일의 전투를 경험할 수 있게 하며, 이 게임만의 독특한 게임 플레이로 자리잡게 됩니다.


자동 플레이를 통한 풍자적, 실험적 시도

이렇듯 자동 플레이 기능은 꾸준히 다양한 게임에서 활용되었지만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몇몇 초기 MMORPG들의 반복되는 단조로운 전투와 보상 사이클은 의미 있는 경험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별다른 노력 없이 그저 구경만 하는 게임들’이라는 식의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초기 캐릭터 설정만 해두면 모든 게임이 자동으로 진행되는 &lt;프로그레스 퀘스트&gt;

초기 캐릭터 설정만 해두면 모든 게임이 자동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레스 퀘스트>


<프로그레스 퀘스트>는 이런 기계적인 반복과 의미 없는 보상이 연속되는 게임 플레이만을 제공하는 MMORPG들에 대해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lt;프로그레스 퀘스트&gt;에서 플레이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이름과 종족 등 시작점의 설정들

<프로그레스 퀘스트>에서 플레이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이름과 종족 등 시작점의 설정들


캐릭터의 이름, 종족, 클래스와 능력치를 설정한 뒤 게임을 시작하면 모든 게임 플레이는 자동으로 진행됩니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능력치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스토리 라인을 따라 퀘스트도 클리어하고 장비와 스킬을 얻어 성장하기도 합니다.

사용자의 개입이 없는 단순한 수치 변화에 불과한 게임 진행이지만 성장하는 경험을 편리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게임입니다.

방치형 게임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lt;쿠키 클리커&gt;

방치형 게임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쿠키 클리커>


한편 이런 반복적인 보상 사이클에서 얻는 재미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자동 플레이를 적극 활용한 게임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쿠키 클리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종 생산 건물을 효율적으로 건설하거나 랜덤하게 등장하는 아이템을 얻어 초당 쿠키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주요 게임 플레이로 제공됩니다.

마치 RPG의 전투력을 나타내는 DPS개념처럼 쿠키 생산량을 늘려 나가는 이 게임은 컬트적인 인기를 얻으며 많은 인디 개발자들을 통해 다양한 유사 게임들이 제작되었습니다.

이후 이른바 ‘쿠키 클리커류’ 게임들은 각자의 콘셉트를 구축해 나가며 결과적으로 ‘방치형 게임’이라는 신장르가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자동으로 진행되는 거대 몬스터 레이드에 자원 관리와 경영 요소를 결합한 &lt;탭 타이탄&gt;

자동으로 진행되는 거대 몬스터 레이드에 자원 관리와 경영 요소를 결합한 <탭 타이탄>


마치며

자동 플레이 게임이라는 말은 종종 코어 게이머들이 빈약한 게임 플레이를 비판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멸칭처럼 사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게임이 제공하려는 경험과 플레이어의 환경에 대한 고민 없이 자동 플레이를 도입한 안이한 게임들은 비판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자동 플레이를 적극 활용한 매니지먼트 게임들은 해당 게임이 제공하려는 ‘관리 요소’에 대한 몰입을 극대화하여 장르적 특성을 탄탄히 구축해 나가고 있습니다. 최근 이슈가 되었던 오토 배틀러 장르 게임들은 이러한 발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이처럼 자동 플레이 기능은 단순한 편의 기능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큰 선택지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기존 게임의 열화판을 만드는데 활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독자적인 장르로 발전시킬 수 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게임 디자인 레벨업 #22 게임 속 자동 플레이의 역사 - 양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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