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8 대중문화 속 게임 읽기

대중문화 속 게임 읽기 #2 게임과 현실은 별개? 온라인 게임의 신부는 여자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한 거야?

영화와 만화, 드라마와 장르소설 등 다양한 콘텐츠 속에서 게임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요?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고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알아보며 게임과 대중문화의 접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강상준 님이 들려주는 ‘대중문화 속 게임 읽기’. 그 두 번째 편에서는 ‘게임과 현실은 동일한가, 별개인가’라는 명제를 담아낸 애니메이션 <온라인 게임의 신부는 여자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한 거야?>를 다뤄보겠습니다.


대중문화 속 게임 읽기 #2 애니메이션 &lt;온라인 게임의 신부는 여자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한 거야?&gt;, 게임과 현실은 별개?

웹소설과 라이트노벨에서 ‘게임 판타지’ 장르는 이미 주류를 이룬 지 오래다. 이를테면 레벨이나 전투력, 마력과 같은 수치를 전면에 내세워 서사를 구축하고, 아이템, 스탯창, 특성, 무기 제련이나 강화 등 게임만의 요소를 에두르지 않고 이세계에 현현한 작품들이 대세를 이루다 못해 정석처럼 자리 잡은 모양새다. 실제로 젊은 독자들에게 있어 판타지 장르란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보다도 게임을 통한 경험이 우선한다. 책보다 훨씬 익숙한 이런 배경과 경험이 있으니 독자와 교감하기 위한 판타지 소설 또한 직접적으로 게임을 기반으로 하는 게 어쩌면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게임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라도 갈래는 무수하다. 현실과 게임이라는 두 가지 세계를 병치하기도 하고, 아예 게임 속에 들어가 모험을 펼치는 경우도 다반사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라도 게임은 단순한 게임 한 판에 그치지 않는다. 게임 속 세계의 흥망성쇠를 좌우하거나, 때로는 가상의 게임이 현실 세계에 직접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또 캐릭터와 유저의 목숨을 동일시한다든지, 주인공의 향상심을 자극하는 강력한 동인을 세워 세계 최강 정도는 목표로 삼아야만 마침내 이야기는 성립된다. 왜? 게임 판타지는 게임 특유의 설정은 빌려왔을지언정 현실의 게임보다는 더 큰 함의와 위기를 지녀야 비로소 독자의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게임 판타지는 ‘게임’에서 시작해 결국 ‘판타지’로 수렴되는 장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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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온라인 게임의 신부는 여자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한 거야?>(이하 온겜신부)는 대사체의 긴 제목이 천명하듯 동명의 라이트노벨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100만 부 이상의 판매 성적을 올린 원작은 현재까지도 인기리에 연재 중인 데 반해, 애니메이션은 12부작으로 일단락되며 원작 특유의 발랄한 코미디와 가벼운 주제의식을 무난히 압축했다.

딱히 걸작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게임 판타지 장르의 흐름과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진 탓에 시각에 따라서는 색다른 시트콤처럼 보일 지점으로 가득하다. 가끔씩 노골적으로 여성의 특정 신체에 집중하는 작화가 영 생뚱맞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시침 뚝 떼고 게임으로 말미암아 겪을 수 있는 실제 상황과 개그에 집중한 탓에 게임이 지닌 밝고 명랑한 기운만큼은 늘 넘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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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겜신부>의 중심은 역시나 판타지 게임이지만, 여타의 게임 판타지 장르와는 달리 세계의 명운이나 개인의 영달과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펼친다. 심지어 게임조차 정말로 그저 게임일 따름이다. 덕분에 마치 기존 게임 판타지 장르의 안티테제를 목표한 듯한 지점도 여럿 보인다.

작중 MMORPG <레전더리 에이지(Legendary Age)>, 약칭 <LA>를 즐기는 고교 1년생 니시무라 히데키는 동급생들로부터 소위 “오픈 오타쿠”로 불린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보고 즐기는 것을 숨기지 않고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탓에 같은 반 여학생인 세가와 아카네에게 괄시받기도 하지만, 단지 그뿐. 학급에서 늘 몇 명의 친구들과 어울려 시끌벅적하게 노니는 그에게 게임은 그저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는 취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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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니시무라를 매료시킨 게임 <LA>의 최대 매력은 대저 모든 MMORPG가 그러하듯 결국 사람이다. 니시무라는 길드 앨리캣츠의 탱커 ‘루시안’으로서 길드 마스터 ‘애플리코트’를 비롯해 ‘슈바인’, ‘아코’와 1년 이상 함께 플레이 중이다.

특히 아코와는 그의 적극적인 대시로 인해 게임 내에서는 결혼까지 한 상태. 어쩐지 전투보다는 여관에 모여 잡담으로 소일하는 일이 많아 보이는 이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간극에 대해 이야기하다 마침내 1년여 만에 처음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갖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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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에서 만난 이들의 정체가 모두 같은 학교 학생이었다는 우연 중의 우연은 개연성을 한껏 떨어뜨리지만, 어쨌든 <온겜신부>가 목표하는 바는 게임과 현실의 간극을 바라보는 데 있기에 이 정도는 눈감아 주자.

온라인 신부인 아코가 남자여도 상관없다 생각했던 니시무라의 낮은 기대를 보상하듯 아코는 같은 학년, 다른 학급의 여학생 타마키 아코였다. 의외의 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으니, 게임에서는 늘 자신을 ‘오레사마(俺様, 즉 ‘이 몸’, ‘나님’)’ 같은 거만한 남성형 1인칭으로 칭하던 슈바인의 정체는 게임 오타쿠인 니시무라를 대놓고 멸시하며 ‘리얼충(リア充, 리얼, 즉 현실에 충실한 사람을 일컫는 일본의 인터넷 용어)’으로서의 면면을 뽐내던 동급생 세가와였다. 또한 길드 마스터 애플리코트는 같은 학교의 2학년 선배이자 학생회장인 고쇼인 쿄우. 그렇게 앨리캣츠의 일원들은 니시무라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러나 너무나 가까운 곳에서) 정체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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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반전이 의미하는 그대로 비교적 담백하게 게임을 즐기던 니시무라와는 달리 다른 세 명이 선보이는 간극은 의외의 웃음을 준다. 우선 ‘인싸’ 세가와가 게임에서는 잘난 척하는 남성 캐릭터로 분했던 점 하며, 연애 따위에 게임할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다고 선언할 만큼 니시무라보다 더한 게임 오타쿠였다는 점이 그렇다.

게임 내 ‘핵과금러’였던 고쇼인은 현실에서도 엄청난 부자에 학생회장까지 도맡고 있지만 어쩐지 현실에서는 단 한 명의 친구도 없다. 이 중 아코는 그 정도가 가장 심각해 아예 게임과 현실의 차이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그는 게임 안에서 부부였던 루시안과의 관계를 현실로까지 끌어오는가 하면, 리얼충에 대한 혐오와 극도의 대인기피로 말미암아 간헐적으로 결석을 일삼는 상태다.

이들 모두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 훨씬 큰 비중을 할애한 의외의 ‘게임 폐인’으로서 반전의 재미를 안긴다. 물론 반전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들은 여러 일을 겪으며 온라인에서 시작된 인간관계를 오프라인으로 확장해 이제야 진짜 인간관계에 의지하고, 마침내 게임 못지않은 현실의 재미를 게임과 더불어 만끽하는 주역이기도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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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겜신부>가 목표하는 또 다른 코미디는 MMORPG를 즐겼던 게이머라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익숙한 경험에 기반을 둔다. 오랫동안 함께 게임을 해왔지만 막상 오프라인에서는 어색하기 그지없는 첫 모임의 풍경이 오래지 않아 같은 관심사로 하나 되는 모습을 비롯해, 온라인과는 전혀 다른 실제 이미지야말로 ‘오프모임’의 변함없는 광경일 것이다.

여기에 ‘현거래’, 공성전 등에 동맹, 추종, 배신, 심지어 계정 해킹 같은 온라인 범죄까지 버무리고, 이를 기존 학원물의 도식과 연계시킨다. 즉, 기말고사, 여름방학, 여름 합숙, 가을 문화제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학교 이벤트와 접목시킴으로써 현실과 게임을 연결하고, 그 간극을 완화할 뿐 아니라, 게임을 통해 진짜 유대감을 쌓아가는 모습으로 마침내 잔잔한 웃음마저 안긴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각 인물들의 극단적인 대인관계를 통해 “현실과 게임은 별개”라는 작중 반복되는 명제에 오히려 스스로 금을 내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대체로 늘 즐거운 일만 가득할 게임에서는 당연히 대인관계 역시 현실보다는 훨씬 손쉽기 마련이다. 성별이나 나이, 심지어는 성격을 바꿔 진짜와는 다른 가면을 쓰는 것도 얼마든지 용납된다. 게다가 더 이상 마주치고 싶지 않은 상대라면 ‘차단’하면 그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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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온라인 게임에 비한다면 현실은 얼마나 고된 게임인가.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선 방구석에 틀어박히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게임으로 완전히 도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현실이 너무나도 버거운 아코는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남편인 루시안(니시무라)과 함께 오로지 게임에서만 생활하고 싶어 한다.

이에 앨리캣츠 길드원들은 아코의 바람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현실과 게임은 별개라는 것을 일깨우기 위해 그가 차단하고픈 현실과 게임에 새로운 다리를 놓는다. 이는 ‘현대통신전자유희부(즉, 온라인게임부)’라는 동아리를 설립해 게임 역시 사람과 사람이 현실에서 즐기는 게임임을 아코에게 각인시키는 일련의 활동으로 시작해, 타인과의 관계 맺음이라는 얄궂은 ‘현실 스킬’을 익혀가면서 마침내는 한 인간의 자그마한 성장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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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아코만이 아니다. 방식은 다르지만 이는 모든 캐릭터들에게 거의 동일한 기조로 다가온다. 특히 아코를 등교시키고, 친구를 만들어주고, 현실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마침내 게임에서의 연애 감정을 현실로 끌어들이는 루시안, 아니 니시무라의 노력은 각 에피소드를 한데 꿰는 주역이다.

좌충우돌하는 러브 코미디는 물론이고, 게임과 현실 양쪽 모두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며 그 간극을 절묘하게 유지하는 니시무라와 앨리캣츠 길드원들의 모습은 결국 우리가 MMORPG를 통해 얻었던 게임의 재미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현실이었다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이들과 함께 현실에서는 겪지 못할 생경한 모험을 하며 만끽했던 재미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내내 떠들썩하게 웅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온겜신부>가 말하는 “현실과 게임은 별개”라는 명제의 진의는 무엇이었을까? 앨리캣츠 길드원들은 아코에게 묻는다. 왜 게임 속 루시안과의 부부 관계를 현실에서까지 부부라고 칭하고 다니냐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는 듯 아코는 절묘한 예를 들어 설명한다. 만약 현실 부부가 <LA>를 시작했다손 치자. 현실에서의 부부가 굳이 게임 속에서까지 부부일 필요는 없다고, 나는 게임에서는 다른 사람이랑 결혼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좀 이상하지 않느냐고. 완벽히 납득할 만한 예라고 하긴 어렵지만 어쩐지 이들은 납득한다. 물론 아코에게 “오염됐다”는 단서를 붙이면서.

결국 게임은 게임이다. 현실은 현실이고. 하지만 MMORPG라면 감히 쉽게 할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다른 게임 판타지 작품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현실과 게임을 철저히 분리한 생활형 코미디인 <온겜신부> 안에서도 이는 충분히 체화할 만하다. 인간은 단수가 아니라고 했던가. 복수의 인간이 게임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이 그야말로 유쾌하게 담긴 작품이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DVD2.0》《FILM2.0》《iMBC》《BRUT》 등의
매체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영화, 만화, 장르소설, 방송 등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쓰며 먹고 살았다.
『위대한 망가』『빨간 맛 B컬처』 시리즈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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