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9 대중문화 속 게임 읽기

대중문화 속 게임 읽기 #4 게임에 의한, 게임을 위한 영화 – 쥬만지: 넥스트 레벨

영화와 만화, 드라마와 장르소설 등 다양한 콘텐츠 속에서 게임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요?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고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알아보며 게임과 대중문화의 접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강상준 님이 들려주는 ‘대중문화 속 게임 읽기’. 네 번째 편에서는 게임 본연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영화 <쥬만지: 넥스트 레벨>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대중문화 속 게임 읽기 #4 게임에 의한, 게임을 위한 영화 – 쥬만지: 넥스트 레벨

12월 11일 개봉한 <쥬만지: 넥스트 레벨>은 <쥬만지>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자, 2017년작 <쥬만지: 새로운 세계>의 정확히 뒤를 잇는 속편이다. 로빈 윌리엄스가 보드게임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95년작 <쥬만지> 이후 무려 22년 만에 선보인 <쥬만지: 새로운 세계>는 시대에 발맞춰 ‘비디오 게임’이라는 보다 친숙한 세계를 소재이자 주제로 택하며 모든 것을 바꿨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새로운 프랜차이즈 영화의 탄생을 예고할 만한 큰 성공을 거뒀다. 조금 구식으로 보일 법한 모험영화 장르의 배경과 줄기를 유지하면서도 여기에 게임 특유의 요소를 가미하여 이전 모험영화와는 결을 달리한 것이 주효했다.

이를테면 각기 다른 능력을 지닌 게임 캐릭터들이 협력해 어드벤처 게임 본연의 퍼즐형 퀘스트를 해결하고, 갑작스런 난관을 극복하며, 차근차근 결말로 향해가는 모든 과정의 무게 중심은 분명 게임에 있다. 특히 신작 <쥬만지: 넥스트 레벨>은 전작의 차별화된 지점을 그대로 계승하는 한편 그 전작의 설정마저 한 번 더 뒤튼다. 덕분에 게임, 아니 모험의 난이도나 완성도는 더욱 높아졌다.

오늘날 실제 게임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몸을 움직여 목숨을 걸고 플레이한다는 이야기는 수백, 수천 종에 이른다. 단지 이세계(異世界)라는 이유만으로 ‘스탯창’을 띄우고 ‘레벨업’을 해도 이제는 거의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반면 신세기 <쥬만지> 시리즈는 기존 게임 판타지 장르와 마찬가지의 기반임에도 게임의 설정을 핍진하게 녹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게이머의 오랜 경험에 의존한, 황당하지만 일견 납득할 만한 전개로 엉뚱한 위기에 웃음을 직조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NPC들은 주어진 대사 이외에 다른 질문에는 일절 대답하지 못하고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다. 또한 정신을 놓은 듯 같은 행동을 여러 번 하기도 하고, 행동에 정확히 반응하지 않으면 캐릭터에게 곧 적대적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앞으로의 행동에 대한 지침은 늘 알 듯 모를 듯한 은유적인 문장으로 제시되며, 주위를 면밀히 관찰해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게다가 영 쓰임새를 알 수 없는 아이템은 언젠가 중요한 순간 반드시 쓸모가 있기 마련이다.

대중문화 속 게임 읽기 #4 게임에 의한, 게임을 위한 영화 – 쥬만지: 넥스트 레벨

전작에 등장했던 네 명의 캐릭터는 여전히 같은 외모(그러니까 같은 배우)와 같은 능력으로 등장해 각 단계마다 고유의 ‘특수 능력’을 활용하며 위기를 타개한다. 완전무결한 괴력의 주인공 캐릭터 닥터 브레이브스톤(드웨인 존슨 분)을 위시해, 남들에게는 백지지만 자신에게만은 정밀한 지도로 보이는 지도학자 오베론(잭 블랙 분), 단지 여자 캐릭터라는 이유만으로 어디나 열악한 오지임에도 복근을 훤히 드러낸 ‘댄스 격투가(?)’ 루비(카렌 길런 분), 배낭에서 바주카포며 방한 장비에 이르기까지 일행이 필요한 온갖 것을 꺼내 제공하고, 자신도 모르게 동물에 대한 지식을 줄줄 읊는 동물학자 무스 핀바(케빈 하트 분). 모두 게임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능력투성이다.

그러나 게임이라는 경험을 공유하는 관객이라면 이 모든 부조리한 설정과 전개가 의미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오히려 부조리하면 부조리할수록 그동안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게이머의 경험을 자극하기까지 한다. 바로 이것이 아무리 슈퍼파워를 지닌 초인이 등장한다 할지라도 관객이 납득할 만한 동인과 액션에 기반을 둬야 하는 여타의 영화는 결코 넘볼 수 없는 이 영화만의 인장이다.

물론 게임은 반복하면 할수록 플레이어는 노련해지는 반면 게임은 새로움을 잃는다. 그리고 나름의 방식대로 몇 번이고 도전할 수 있는 게임과는 달리 영화에 있어 진부함은 그 무엇보다 치명적이다. <쥬만지: 넥스트 레벨>은 이런 점을 십분 의식하고 전작에서 다진 발판을 한껏 허물며 다음 레벨로 나아간다.

대중문화 속 게임 읽기 #4 게임에 의한, 게임을 위한 영화 – 쥬만지: 넥스트 레벨

우선 2회차 도전의 이점은 완전히 사라졌다. 게임의 무대는 익숙한 정글에서 시작한 것도 잠시, 곧이어 사막, 나아가 설산으로 옮겨진다. 전작에서 박살 냈던 게임기가 완전히 복구되지 못한 탓에 캐릭터 선택 권한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로 인해 지난번 플레이했던 익숙한 ‘주캐릭’이 아니라 처음부터 새로운 캐릭터로 플레이해야 한다. 게다가 각 캐릭터들에겐 상황이 닥치기 전까지는 결코 영문을 알 수 없는 새로운 강점과 전에 없던 약점까지 추가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난관은 이들을 조종하는 플레이어의 절반이 평생 게임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노인들이라는 점이다. 현실에서는 절대 벌어질 수 없을 법한 상황을 여러 번 겪고 나서도 어르신들은 말한다. “비디오 게임? 게임이 뭐??”

한 차례 경험을 통해 이들은 이제 왼쪽 손목에 있는 작대기 문신 세 개가 곧 각자의 목숨이라는 것을 잘 안다. 즉, 여타의 게임처럼 세 개의 ‘라이프’가 주어져 어찌 됐든 두 번의 죽음까지는 용납되는 것. 그러나 이런 이점마저도 두 어르신들 덕에 모두들 무의미하게 금세 두 개를 날려먹는다. 오랜 시간 탄탄한 동업자 관계였지만 식당 폐업에 대한 의견차로 등 돌렸던 두 노인들은 타조 떼가 달려들거나 말거나 시종일관 티격태격하고, 그러는 사이 누군가는 엉뚱하게 목숨을 잃고 일행은 겪지 않아도 될 괜한 위기를 자초한다.

하필이면 게임을 풀어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인 브레이브스톤에 빙의한 에디(대니 드비토 분)는 꼬장꼬장한 고집불통 노인의 다혈질 성격 그대로 거의 매번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며 다른 이의 속을 뒤집기 일쑤다. 무스 핀바에 빙의한 마일로(대니 글로버 분)는 평소 본론에 들어가기 전 고릿적 이야기로 서론을 늘어놓던 습관에 타고난 느린 말투까지 더해져 정작 동물에 대한 필요한 정보를 털어놓기까지 하 세월이다. 당연히 두 노인네 모두 이곳이 게임이란 것을 인정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물론, 플레이 방식을 이해하고 적응하기까지 꽤 신선한 웃음을 준다.

심지어 전작에서 소심한 겁쟁이 소년을 연기했던 근육질의 드웨인 존슨이나 능글맞게 여자애 연기를 펼치던 잭 블랙처럼, 아예 이번에는 게임 내에서 몇 차례 캐릭터를 교체하는 탓에 노인이며 여자며 다양한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들의 능청맞은 연기 역시 ‘게임에 의한 영화’라는 설정에 걸맞은 독특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만약 현실이었다면, 아니 현실에 그나마 기반을 둘 마음이라도 있었다면 절대로 인간이 건너라고 만든 게 아닌 것 같은 흔들 다리를 심지어 공중에서 회전시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쥬만지: 넥스트 레벨>의 공간은 게임이다. 돌아가거나 흔들리거나 위아래로 움직이는 다리의 동선을 파악하고 타이밍을 재 반대편에 다다라야 하는 것이 하나 이상하지 않던 게임의 세계이기에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던 액션 역시 무난히 가능해진다. 얼마든지 불가해한 무대를 설계하는 것이 가능한 탓에 더 이상 새로운 게 없다던 액션마저 새로운 감각으로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곳 저편에는 도끼를 든 야만족들이 성채를 진지 삼아 정략결혼으로 종족을 통합하며 세계 정복을 노리는 중이니 시공간 또한 불분명하다. 이처럼 오히려 불합리하면 할수록 차별화되고 그래서 가능한 것들이 온전히 재미 요소로 치환되나니 과연 여기선 게임이야말로 ‘치트키’다.

대중문화 속 게임 읽기 #4 게임에 의한, 게임을 위한 영화 – 쥬만지: 넥스트 레벨

무엇보다 다시 모험을 시작한 것 역시도 게임 본연의 즐거움에 기인한다. 학업차 고향을 떠나 뉴욕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스펜서(알렉스 울프 분)가 모처럼 집에 돌아와 닥터 브레이브스톤이 되어 나약한 자신을 잊고 모험의 세계에서 느끼려 했던 욕망 역시 게임이 우리에게 주는 일탈과 대리만족의 쾌감에서 비롯한 것이다. 또한 소원해진 친구와 오해를 풀고, 몸이 떨어져 마음도 멀어진 여자 친구와 다시금 진실한 마음을 확인하는 것 역시도 드라마의 당연한 수순이기 이전에 모험을 함께한 동료애처럼 보이는 것마저도 기어이 게임으로 합일된다.

여기에 “늙는다는 것은 최악이야(sucks)”라고 구시렁대던 노인 에디가 모험을 겪고 돌아와 나이가 든다는 것을 ‘축복(gift)’이라 말하면서 영화는 곧 게임의 효용을 극대화하기까지 한다. 손자와 함께 비디오 게임을 하고 다시금 일터로 나가 인생 2막을 시작하려는 에디의 모습은 ‘게임에 의한 영화’에서 마침내 ‘게임을 위한 영화’에까지 다다르는 듯하다. 게임 장르와 더욱더 면밀히 맞닿은 2회차 도전이 과연 헛되지 않았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DVD2.0》《FILM2.0》《iMBC》《BRUT》 등의
매체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영화, 만화, 장르소설, 방송 등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쓰며 먹고 살았다.
『위대한 망가』『빨간 맛 B컬처』 시리즈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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