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19 대중문화 속 게임 읽기

게임이 되고 싶어요 – 하드코어 헨리

영화와 만화, 드라마와 장르소설 등 다양한 콘텐츠 속에서 게임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요?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고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알아보며 게임과 대중문화의 접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강상준 님이 들려주는 ‘대중문화 속 게임 읽기’. 일곱 번째 편에서는 FPS 게임 속 주인공의 시선을 그대로 스크린에 담은 영화 <하드코어 헨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대중문화 속 게임 읽기 #7 게임이 되고 싶어요 – 하드코어 헨리

오늘날 ‘영화 같다’는 수사는 영화의 형식이나 구성과 비슷하다는 뜻이기보다는, 온전히 가치 판단에 가깝다. ‘영화 같은 만화’, ‘영화 같은 게임’이 모두 흔한 찬사로 통용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고작 100년 남짓 역사밖에 되지 않은 영화가 이렇듯 시각 매체 전반에 걸쳐 공고한 잣대처럼 사용되는 것은, 영화야말로 우리 시대 가장 대중적인 문화 매체이자 가장 권위 있는 예술 장르 중 하나라는 것을 방증한다. 어느 누구라도 영화를 본 경험, 그것도 훌륭한 영화를 감상한 적은 있다는 것. 그리고 기술의 진보와 발맞춰 영화는 끊임없이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면서 마침내 이론과 실제를 명확히 구축했다는 점이 그 이유일 것이다. ‘만화 같은 영화’, ‘게임 같은 영화’라는 문구의 상반된 느낌과 비교하면, 덮어놓고 영화로 수렴하기 일쑤인 이 상투적 문구의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하지만 ‘만화 같다’라는 말이 좋게 말해 풍부한 상상력, 나쁘게 말해 허황된 개연성을 칭하면서 은근한 폄훼의 의미를 담은 것과는 달리(물론 못마땅한 비유법이다), ‘게임 같은 영화’의 실체는 상대적으로 모호한 편이다. 만화처럼 단순한 혹평으로 단정 짓기도 힘든 것이 그동안 게임과 영화의 합작 시도는 계속해서 다양한 성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 속 게임 읽기 #7 게임이 되고 싶어요 – 하드코어 헨리

그중 영화 <하드코어 헨리>는 현재 시점까지는 가장 ‘게임 같은 영화’라 할 만하다. <하드코어 헨리>는 한마디로 게임의 형식과 구성을 그대로 ‘이식’한 영화다. 아이디어의 시발점은 러시아 출신 감독 일리야 나이슐러가 연출한 뮤직비디오, 바이팅 엘보우즈(Biting Elbows)의 <Bad Motherfucker>였다. 포박돼 있던 남자가 탈출해 총격전과 카 체이스 신 등을 선보이는 5분 분량의 뮤직비디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의 일인칭 시점을 고수한다. 차를 운전하다 차 밖으로 몸이 나뒹굴면 카메라도 함께 흙바닥을 구른다. 남자를 추격하는 이들의 주먹은 화면을 강타하기 일쑤며, 총에 맞아 피를 튀며 쓰러지는 엑스트라 배우들은 대부분 카메라를 응시한다.

대중문화 속 게임 읽기 #7 게임이 되고 싶어요 – 하드코어 헨리

뮤직비디오로 가능성을 시험해본 일리야 나이슐러 감독은 이윽고 같은 형식으로 장편영화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영화를 보는 단계를 넘어 마치 게임을 ‘하듯’, 아니 본디 게임이 추구하는 바 그대로 관객으로 하여금 실제로 ‘체험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기 위해 뮤직비디오 <Bad Motherfucker>와 마찬가지로 모든 장면을 카메라의 일인칭 시점으로 구현한 영화를 말이다.

대중문화 속 게임 읽기 #7 게임이 되고 싶어요 – 하드코어 헨리

영화의 기획 그대로 <하드코어 헨리>의 카메라는 단 한순간도 주인공 헨리의 시점 밖으로 벗어나는 법이 없다. 오프닝 등을 제외한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은 배우의 얼굴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철저히 헨리의 시야인 양 구현된다. 본래 영화라는 매체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에 ‘이입’시키거나 반대로 관객과 ‘거리두기’를 하던 것에 비한다면 그 의미는 더욱 남다르다. 이는 게임의 형식을 차용해 관객 스스로 플레이하는 느낌을 자아내는 것으로, 영락없는 FPS 게임의 구조이자 방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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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전까지도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찍는 핸드헬드 기법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아예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활용한 영화는 더러 있었다. 뉴욕시를 습격한 거대 괴수를 담아낸 영화 <클로버필드>는 일반인이 캠코더로 촬영한 장면이라는 식으로 초현실적인 재난을 관객의 체험으로 승화했다. 때때로 피사체 바깥을 응시하는 화면까지 그대로 담아냄으로써 정말로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우연히 휴대 장비로 촬영한 것인 양 괴수가 나타난 바로 그 자리에 관객을 소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대중문화 속 게임 읽기 #7 게임이 되고 싶어요 – 하드코어 헨리

호러영화 <알.이.씨>는 리얼 다큐 프로그램의 리포터가 카메라맨과 함께 폐쇄된 좁은 아파트에서 좀비와 맞닥뜨린다는 설정을 그대로 화면에 담아냈다. 아파트 곳곳을 헤집고 다니며 상황상황마다 그 즉시 리포터의 멘트를 곁들인 장면들은 생방송 뉴스를 연상시키며 관객에게 생생한 공포를 전달했다. 마치 호러·액션 장르의 FPS 게임처럼.

대중문화 속 게임 읽기 #7 게임이 되고 싶어요 – 하드코어 헨리

반면 <하드코어 헨리>는 극단적으로 일인칭 시점만을 고집한다. 게임 캐릭터와 동화돼 움직이는 방식 그대로 상하로 요동치는 발걸음을 따라 시야는 이리저리 흔들린다. 다른 모든 등장인물들은 헨리를, 즉 카메라를 주시하며 말을 한다. 헨리의 주먹과 다리는 수시로 화면 앞에서 교차하고, 총기는 헨리의 손에 쥐어지는 순간 전방의 적을 향해 발사된다. 심지어 옥상에서 저격할 때는 아예 화면 한가운데 십자 모양이 그려진 ‘스코프 모드’로 전환된다.

여기에 더해 거의 모든 장면을 롱 테이크로 촬영해 액션 시퀀스는 특별한 편집 없이, 문자 그대로 쉬지 않고 달려 나간다. 이미 롱 테이크만으로도 실재감은 빛나건만 일인칭 시점까지 더해져 액션의 타격감과 운동감이 더욱 배가되는 것은 당연하다.

대중문화 속 게임 읽기 #7 게임이 되고 싶어요 – 하드코어 헨리

더욱이 헨리가 몸의 대부분을 기계로 대체한 사이보그인 덕에 건물을 기어오르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액션은 시간이 흐를수록 일반적인 인간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으로 그려져 점점 더 비현실적인 경험을 선사하기에 이른다. 마치 파쿠르(Parkour)를 하듯이 도망치고 추격하는 장면 하며,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적에게 얻어맞고 넘어지는 모든 순간이 그대로 일인칭 시점에서 그려지는 탓에 여타의 페이크 다큐멘터리 이상으로 화면은 거칠게 흔들린다. 덕분에 아예 초점이 맞지 않는 장면도 많은데 그런 장면마저 그대로 수용한 것은 관객에게 현장감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한 초강수로 읽힌다. 처음부터 <하드코어 헨리>는 일인칭 시점이라는 형식이 모든 것을 압도하고 지배하는 데서 시작한 영화인 까닭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하드코어 헨리>가 가장 게임 같은 액션 영화로 보이는 결정적 이유다.

대중문화 속 게임 읽기 #7 게임이 되고 싶어요 – 하드코어 헨리

물론 <하드코어 헨리>를 지탱하는 건 ‘게임 같은 액션 영화’만은 아니다. 헨리는 음성 발화 장치를 이식하기 직전 사건이 벌어진 탓에 영화 내내 말을 할 수 없다. 이는 헨리의 스턴트 액션을 어떤 배우가 연기해도 상관없다는 영화의 기본 토대이기 이전에, 기계 팔다리를 이식하는 도입부에서 보이듯 ‘SF 게임’에 잔뜩 기댄, 이 작품의 또 다른 핵심이다.

몇몇 인물들은 헨리의 조력자를 자처하며 기억을 잃은 헨리를 이끈다. 분명 죽었는데 요소요소마다 다시 등장하는 수수께끼의 인물 ‘지미’는 그런 의미에서 흡사 헨리에게 단편적인 ‘퀘스트’를 쥐어주고 그가 계속해서 엔딩을 향해 나아가기를 종용하는, 일종의 NPC처럼 느껴진다. 또한 화염방사기를 들고 나타난 비현실적인 행색의 용병을 비롯해 몇 가지 특기를 중심으로 설계된 적들은 가지각색 몬스터요, 강력한 염동력을 사용하는 최후의 흑막 ‘아칸’은 영락없는 ‘보스몹’이다.

SF 영화 <토탈 리콜>을 연상시키는 반전과 결말, 때때로 헨리의 인공 안구가 돌출돼 화면이 두 개로 양분되는 장면 등 <하드코어 헨리>의 서사와 연출은 곳곳에서 SF 게임의 면면을 연상케 한다. 마지막 결말부, 헨리가 헬기의 문을 닫으며 막을 내리는 장면이 영화의 대단원을 알리기보다는, 마침내 게임을 ‘클리어’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대중문화 속 게임 읽기 #7 게임이 되고 싶어요 – 하드코어 헨리

<하드코어 헨리>는 여러 결점을 감수하고도 영화의 헤드 카피인 “전 세계 최초 풀타임 일인칭”을 끝까지 고수했다. 비록 모든 액션의 순간 게이머와 호환하는 게임 특유의 부드러운 카메라워크를 보여주진 못한 탓에 시종일관 시야는 흔들리고 종종 초점을 벗어나며 때때로 현기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관객의 시각 경험과 일체화하려는 시도만큼은 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로, 새로운 ‘체험’으로 다가온다. 결코 완성형은 아니지만 ‘게임 같은 영화’를 넘어 게임의 모든 형식을 흡수하려 했던 영화라는 점에서 <하드코어 헨리>는 영화 매체의 도전이자 게임 장르의 속성까지 엿볼 수 있는 독특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덕분에 그동안 ‘게임 같은 영화’의 이미지만큼은 분명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아갔으니까.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DVD2.0》《FILM2.0》《iMBC》《BRUT》 등의
매체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영화, 만화, 장르소설, 방송 등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쓰며 먹고 살았다.
『위대한 망가』『빨간 맛 B컬처』 시리즈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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