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1 대중문화 속 게임 읽기

인생이라는 이름의 게임, 위 아 리틀 좀비

영화와 만화, 드라마와 장르소설 등 다양한 콘텐츠 속에서 게임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요?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고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알아보며 게임과 대중문화의 접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강상준 님이 들려주는 ‘대중문화 속 게임 읽기’에서는, 부모를 잃었지만 슬픔도 없이 무감각한 10대 소년 소녀들이 인생의 퀘스트를 헤쳐나가듯 감정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 <위 아 리틀 좀비>를 살펴보겠습니다.


인생이라는 이름의 게임, 위 아 리틀 좀비

ⓒ2020 WE ARE LITTLE ZOMBIES FILM PARTNERS

부모님이 죽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부모님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13살 소년 히카리(니노미야 케이타 분)는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다. 화장터에서 만난 또래 이쿠코(나카지마 세나 분), 타케무라(오쿠무라 몬도 분), 이시(미즈노 사토시 분) 역시 그렇다. 이들 소년 소녀는 모두가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와중에도 한가로이 농담을 주고받고 시시덕거리며 “부모님이 죽었다”고 ‘해맑게’ 외친다. 부모님이 화장되어 가루가 되고 이내 연기가 되어 흩어질 즈음에도 마찬가지다. 아이들 특유의 치기나 자존심 때문일까? 아니다. 너무나 큰 슬픔에 짓눌린 탓에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 히카리는 부모의 죽음을 물리적으로 완벽한 소멸이자 완전한 이별로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어째서 슬프지 않은 걸까. 왜 눈물은 나오지 않는 걸까.

나가히사 마코토 감독의 영화 <위 아 리틀 좀비>는 부모를 잃은 소년 소녀들이 잃어버린 감정의 근원을 찾는 ‘모험’을 그린 작품이다. 감정의 근원이라고 하지만 그 여정은 오히려 이들이 왜 무감하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는지, 그 냉소의 원인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단지 그것뿐인데도 그 과정을 감히 ‘모험’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이들 네 아이들이 각자의 십여 년 인생을 공유하고 일탈해 마침내 어른의 세계와 결별하기로 결정하는 모든 여정이 롤플레잉 게임을 진행하듯, 퀘스트를 수행하듯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이름의 게임, 위 아 리틀 좀비

ⓒ2020 WE ARE LITTLE ZOMBIES FILM PARTNERS

<위 아 리틀 좀비>는 단 1초도 한눈팔 틈을 주지 않을 만큼 스타일리시하고 현란한 화면으로 영화를 가득 채운다. 그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부분은 의도적으로 ‘8비트 게임’을 차용한 장면이다. 영화의 오프닝은 아예 도트가 도드라진 레트로 게임 화면으로 영화 종반부까지 이어질 이들의 여정을 은유해 보여준다. 또한 왕년 8비트 RPG에서나 들어봤을 디지털 음악과 효과음은 거의 매 순간 개입하며, 자막이나 챕터명 또한 고전 RPG의 형식을 그대로 따왔다.

그것만이 아니다. 히카리가 늘 들고 다니는 휴대용 게임기의 게임 소프트는 극중 어른들이 예전에 재미있게 했었다고 기억하는 고전 RPG다. 네 아이들은 히카리의 게임기 화면에서 도트로 만들어진 좀비 캐릭터들이 줄지어 맵 위를 이동하는 모양을 모방하기도 한다. 히카리가 이모의 눈을 피해 소지품을 들고 나오는 장면은 아예 어드벤처 게임을 플레이하듯 묘사된다. 결정적으로 히카리와 아이들은 말한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우리들이야말로 살아 있는 시체, ‘좀비’라고. 히카리의 휴대용 게임기에서 마음을 찾아 모험하는 캐릭터들인 바로 그 좀비와 다를 바 없다고 말이다.

인생이라는 이름의 게임, 위 아 리틀 좀비

ⓒ2020 WE ARE LITTLE ZOMBIES FILM PARTNERS

그렇다. 게임은 이 영화를 관통하는 코드로, 결코 생경한 시각적 도구로 활용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히카리와 아이들은 자신들을 게임 속 캐릭터로, 자신들의 세계를 곧 게임에 대입한다. 그리고 게임 속 좀비처럼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모험을 통해 원하는 ‘엔딩 화면’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반드시 다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선 아이들은 어른들의 눈을 피해 어울려 다니며 각자 부모가 한날 죽은 사연과 그동안의 가정사를 들여다본다. 히카리는 유능한 부모덕에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단지 그뿐이다. 부모님은 히카리가 원하는 게임만큼은 모두 사줬지만 그것은 히카리와 보낼 수 없는 시간을 만회하려는 ‘간편한’ 수단에 불과했다. 히카리는 매일 엄마가 쟁여둔 맛없는 레토르트 스파게티로 홀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게다가 부부 사이는 갈수록 소원해졌고, 아이러니하게도 관계를 원만케 하고자 한 여행 중 둘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학교에서 히카리가 왕따를 당하던 것도 모른 채 그렇게 부모는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이했다.

이쿠코, 타케무라, 이시 역시 부모의 사인은 제각각일지언정 사연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쿠코의 부모는 살해당했다. 이쿠코의 피아노 과외 교사가 그에게 집착한 나머지 이쿠코가 싫어한다 생각한 부모를 죽인 것이다. 타케무라는 빚에 쪼들리는 아버지의 폭력을, 만성적인 가난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었다. 타케무라의 부모가 세상을 등진 이유 또한 무책임하게도 자살이었다. 이시는 화재로 부모를 잃었다. 다정한 아버지로 보건대 결코 불행한 가정환경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낮부터 취객이 노니는 가게에 노상 붙어 있어야 하는 아이의 삶을 마냥 긍정하기는 힘들다.

이들의 사연 하나하나는 어른들의 삶에 휘둘리는 아이들 각각의 그늘을 보여준다. 그리고 들여다보려 하지 않으면 절대로 볼 수 없는 곳에 숨겨진 음지를 이해하는 것은 오로지 또래 아이들뿐이다. 그것도 부모를 잃고도 무신경한, 어딘가 고장 난 게 아닌가 의심스러운 아이들.

인생이라는 이름의 게임, 위 아 리틀 좀비

ⓒ2020 WE ARE LITTLE ZOMBIES FILM PARTNERS

물론 정말로 고장 난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이들의 부모들이었다. 그래서 히카리와 아이들은 우선 고장 난 어른들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기로 한다. 그리고 러브호텔에서 죽은 듯이 밀린 잠을 자느라 가진 돈을 다 써버리고, 쓰레기장에 몰래 숨어들어가 하릴없이 소일하던 차 밴드를 하기로 한다. 타케무라는 형의 베이스를 가져와 실력을 발휘하고, 이시는 드럼을 치고, 이쿠코는 건반을 맡았다. 그리고 히카리의 게임기는 그대로 전자음으로 치환되어 이들 밴드에 독특한 음색을 입힌다.

보컬을 맡은 히카리는 자신의 절망을 그대로 노래한다. “텔레비전, 라디오, 스마트폰, 파란 하늘 애초에 보고 싶은 게 없어”라고. “가고 싶은 곳도, 걸어갈 힘도, 꽃을 장식할 꽃병을 둘 선반도 아무것도 없어”라고. “꿈과 희망은 처음부터 없었어”라고. 온통 냉소와 절망으로 가득 찬 노랫말이지만 밝고 신나는 멜로디로 포장한 탓에 흥겨움이 앞서는 곡이다.

물론 이런 대조적인 구성 덕에 기묘한 느낌이 곳곳에서 인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이 게임을 ‘입힌’ 이 영화의 이질적인 느낌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일례로 아이들 각각의 사연마저도 어쩐지 슬픈 기운을 조금 풍길 뿐, 어느 순간에도 결코 착 가라앉거나 바닥까지 침잠하는 법이 없다. 바로 이 모든 것이 인생이라는 이름의 신나는 게임처럼 묘사되고 있는 탓이다.

인생이라는 이름의 게임, 위 아 리틀 좀비

ⓒ2020 WE ARE LITTLE ZOMBIES FILM PARTNERS

아이들은 영화 내내 게임을 하듯 자신들의 1회차 인생을 ‘플레이’한다. 에두르지 않고 게임을 연상시키는 현란한 화면과 생경한 구도로 특별한 화면을 만들어내는 형식은 그런 이유에서 무척이나 절묘하다. 그중 롱 테이크로 찍은 쓰레기장에서의 합주 장면은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넘어 뮤지컬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진다. 그리고 언제고 밝고 화사하기만 한 뮤지컬 장르의 세계를 온전히 옮겨와 신나는 판타지를 구현한 다음 충동적으로 건물 밖으로 몸을 던지는 히카리의 모습으로 음악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그렇게 레트로 게임의 전자음으로 한껏 분위기를 띄우고 게임으로 한 꺼풀 뒤덮으며 영화 내내 ‘거리두기’를 벌인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의도적으로 관객의 감정적 몰입을 방해하는 것이다. 덕분에 휘황한 장면, 독특한 구성과 연출의 중심이던 게임이 정면에 나서면서 무감한 아이들의 정서는 한 단계 너머로 나아가 그 복잡한 속내를 관객으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사유하도록 종용하고 있는 듯하다.

히카리의 밴드 ‘리틀 좀비스’는 이내 어른들의 눈에 띄어 큰 인기를 구가한다. 그리고 멤버 모두가 고아라는 사연이 알려지면서 이들은 곧 하나의 현상으로 떠오른다. 레트로 게임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음악에 더해 밴드 구성원의 평균 나이가 13.5세라는 것을 믿기 힘들 만큼 염세적인 가사는 어른들에게 지친 아이들에게 한 줄기 빛처럼 보이기 충분했던 까닭이다.

인생이라는 이름의 게임, 위 아 리틀 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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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든 것은 신기루에 불과했다. 이들의 상처를 보듬지 못하는 어른들은 리틀 좀비스의 콘서트를 히카리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죽은 곳에서 열기로 한다. 동시에 한 인터뷰에서 히카리가 드러낸 본심, 즉 사실은 아무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부모님을 죽인 운전기사가 너무 밉고 죽이고 싶다는 이야기가 편집되지 않은 채 세상에 알려지면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히카리의 인터뷰를 본 사람들은 곧 히카리의 부모를 태우고 사고를 낸 고속버스의 기사를 ‘색출’한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그래도 된다는 듯 그를 공격한다. 히카리는 인터뷰에서 얼굴도 모르는 그를 향해 자기 인생의 “라스트 보스”라고 말했다. 꼭 그를 ‘처치’할 것이라고, 그게 인생이라는 게임의 엔딩이라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운전기사의 말처럼 그는 ‘라스트 보스’ 따위가 아니다. 당연히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다. 되어서도 안 되고. 히카리 역시 뒤늦게 깨닫는다. 인생, 아니 게임의 마지막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된다는 것을.

결국 아이들은 부지불식간 어른들의 세계에 편입한 현재에서 벗어나기로 결정하고 밴드를 해체한다. 그리고 어른들의 손을 피해 다시금 넷은 기차에 올라 히카리의 부모님이 죽은 그 도로로 향한다. 이후 엔딩까지 벌어지는 ‘모험’은 이제 완전히 게임과 하나 된 듯한 모양새다. 네 아이들이 트럭을 탈취해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동안 꿈을 가장한 사고가 벌어지고, 히카리는 서서히 물에 잠기는 트럭 안에서 홀로 깨어나 주마등을 본다. 자신의 일생을 압축, 요약한 ‘형편없는 인생’이라는 이름의 영상을.

이윽고 히카리의 눈앞에 자막이 뜬다. “CONTINUE?” 히카리는 갈등한다. ‘YES’와 ‘NO’ 사이로 화살표를 여러 번 옮기다 “내 인생은 시궁창이었다, 내 인생은 쓰레기였다”며 ‘NO’를 선택한다. 다시 자막이 뜬다. “GAME OVER” 그리고 히카리 인생의 짧은 캐스트(CAST)가 올라간다. 하지만 친구들의 도움으로 다시 깨어나 ‘리셋은 불가능’하다는 게임(인생)의 절대적인 룰을 뒤엎고 다시금 같은 선택지를 받아든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선택을 한다. 러닝타임 내내 세상을 향해 절망과 부정, 체념의 독백만을 내뱉던 소년 히카리는 그렇게 다시 ‘태어난다’.

인생이라는 이름의 게임, 위 아 리틀 좀비

ⓒ2020 WE ARE LITTLE ZOMBIES FILM PARTNERS

<위 아 리틀 좀비>는 인생의 낙이라고는 게임밖에 없던 소년이 인생을 게임으로 가정하며 모험에 나서는 이야기다. 그리고 냉소로 똘똘 뭉친 아이들 넷이 세상의 중심에 나선 후 다시금 변방으로 몸을 숨기기까지의 이야기는 정말로 게임이라는 형식을 빌려 무수한 퀘스트를 수행하듯 그려진다. 그 덕에 판타지와 뮤지컬을 오가는 독특한 구성 등 시각적 쾌감은 상당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결국 쓰레기 같은 인생을 구원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결코 진부하지 않은, 진중한 깨우침으로 다가오는 데 있다. 인생이 일종의 게임일 순 있지만 인생의 마지막에 최종 보스 같은 것이 자리할 곳은 없다는 그런 소소하고도 진실한 깨달음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 어쩐지 처음으로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히카리의 모습이 역설적으로 해피엔딩처럼, 마땅히 맞닥뜨려야 할 ‘진 엔딩’처럼 다가오는 것이야말로 그 증거일 것이다.

어쩌면 히카리의 인식 그대로 인생이란, 마음을 잃어버린 좀비들의 모험을 그린 게임일지 모른다. 하지만 결단코 지거나 이기는 게임은 아니다. 반드시 물리쳐야 할 최종 보스 같은 것도 존재할 리 없다. 영화 <위 아 리틀 좀비>는 그렇게 게임의 갖은 효용을 극대화하며 한껏 망한 인생이라는 게임마저도 기어이 ‘리셋’한다. 영화와 게임이 한데 뒤섞여 내내 유쾌하고도 절절하게 흐르는 까닭에 절망에서 일어나 희망으로 향하는 무수한 이야기들 가운데서도 과연 인생이라는 게임의 진중한 의미만큼이나 독특한 빛을 발하는 영화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DVD2.0》《FILM2.0》《iMBC》《BRUT》 등의
매체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영화, 만화, 장르소설, 방송 등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쓰며 먹고 살았다.
『위대한 망가』『빨간 맛 B컬처』 시리즈 등을 썼다.

* 본 콘텐츠는 해당 필자의 개인적인 소견이며, NC 공식 블로그 및 당사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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