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2 내가 사랑한 MMO

내가 사랑한 MMO #1 리니지, 첫인상과 달랐던 너

나를 거쳐 가지 않은 MMO는 없다! 내가 곧 MMO다~! ( ゚Д゚)
MMO 만렙 덕력을 지닌 신비로운 사내(…)에 대한 소문을 듣고, 우주정복 블로그는 발빠른 섭외에 나섰습니다.

소문의 주인공은 <어둠의 전설>과 <제라> 등을 기획하고 현재 각종 게임 컨퍼런스에서 인기 강연자로 맹활약 중인 엔씨소프트 GD팀의 김주용 차장인데요,  MMO를 너~~~무 좋아해서 밤낮없이 플레이하다 보니 MMO 기획자가 되어 있더라…는 전설같고 레전드같은 이야기의 산증인입니다. ( ͡° ͜ʖ ͡°)

김주용 차장이 직접 들려 주는 내가 사랑한 MMO!  첫 번째 시간에 소개할 게임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온라인 게임 리니지 입니다.


게임 회사 다니는 사람 얘기치곤 참 뻔한데, 저는 게임을 참 좋아했고 또 많이 했습니다. 입대 전날에도 슈퍼패미컴으로 동생과 ‘스트리트 파이터2 터보’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14박 15일 장기 휴가 때도 새로 나온 플레이스테이션으로 파이널 판타지 7편을 했죠.

제대 후 어느 날,  집 앞에 마실을 나갔는데 ‘PC방’이라는 게 새로 생겼더군요.  들어가 봤더니 유독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라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스타크래프트는 이미 알고 있었고, 리니지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주인 아저씨 왈, 요즘 뜨는 게임이라고 하더군요.

리니지의 첫 인상은 몹시 구렸습니다. 파판7의  현란한(*지금 보면 엄청 각졌음) 3D 그래픽에 익숙해져 버린 제 눈에 조악한 도트가 얼마 되지 않는 프레임으로 움직이는 리니지는 게임 같지도 않았죠. 고고한 게이머부심으로 가득한 제 눈에는 마뜩찮았지만, 일단 자리에 앉아 시도를 해봤죠.

지금 보면 엄청 구리지만 당시엔 매우 신박했던 파판7 그래픽 

지금 보면 엄청 구리지만 당시엔 매우 신박했던 파판7 그래픽 

그리고 짧은 시간 동안 크나큰 좌절을 겪었습니다. 당시 리니지는 엄청나게 혹독하고 무자비한 게임이었습니다. 게임이 플레이어를 대하는 방식도 그랬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또한 그랬죠. 저는 아이디가 영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 게임을 점령하러 온 외세의 무리로 간주되어 즉결 처형을 당했습니다.

이 때는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이것들아, 나 한국 사람이라고!! 

나 외쿡인 아니라고, 한국 사람이라고 채팅창에 몇 번이고 외쳤지만 그저 한국말이 조금 유창한 외국인 취급을 받을 뿐이었죠. 그냥 한글 아이디를 쓰지 그랬냐고요? 그러게 말입니다…그런데 그때는 왠지 영어 아이디를 쓰고 싶었어요.

K리그 3대 억울짤로 대변할 수 밖에 없는 당시의 심경 

K리그 3대 억울짤로 대변할 수 밖에 없는 당시의 심경 

이런 구닥다리 그래픽에 불친절한 유저들이 가득한 게임이라니!! 하며 저는 게임을 껐습니다. 이걸 게임이라고 할 수나 있는 건가? 이런 게임이 성공할 리가 없다고 확신하며, 이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게임이 뭔지 모르는 저급한 이들이라 욕하며 자리를 떴죠.

그런데 얼마 뒤, 신문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리니지 열풍, 리니지 신드롬, 리니지의 대히트, 한국에 게임의 시대 열리나 등등. 제 기준에서는 도저히 납득이 안되는 일이었지만 현실에서 리니지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히트한 게임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세계가 깜짝,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세계가 깜짝,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경향신문, 1999)

그런데 PC방에 자주 가다 보니 단골들과 친해졌습니다. 대부분 리니지를 하는 형들이었죠.  형들은 같이 리니지를 하자며  저를 꼬드겼습니다. 저는 주저했지만, 어느날 공성전을 끝내고 기분이 업된 형들이 쏘는 술자리에서 결국 승낙을 하고 말았습니다. 다음날부터 형들과 같은 서버에서 리니지를 시작했죠.

그런데!! 두 번째로 시도한 리니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재밌고 흥미롭고 화끈한 일들로 가득한 굉장한 게임이었죠. 사람들이 왜 리니지를 좋아하는지, 리니지가 왜 대박 게임이 되었는지를 뇌를 거치지 않고 가슴으로 바로 이해되었습니다.

공성전을 해 보면 알아 그냥 빠져들어

공성전을 해 보면 알아 그냥 빠져들어 (°o°:) 

생각해 보면  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개차반 게임으로 보였는데 두번째는 아무런 위화감 없이 엄청나게 재미있게 느껴지다니. 게임은 달라진 게 없는데,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걸까요?

사실 제가 다니던 PC방은 서버 내에서도 이름 좀 있는 어떤 혈맹의 아지트였습니다. 제가 ‘아는 형들’이라고만 생각했던 이들이 그 혈맹의 수뇌부였구요. 말하자면 혈맹이라는 ‘커뮤니티’에 속한 상태로 게임을 시작한 거죠. 리니지라는 게임은,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그 재미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신기한 게임이었던 겁니다.

커뮤니티 경험 전과 경험 후에는 느끼는 점이 다르다.커뮤니티 경험 전  /  커뮤니티 경험 후 

이런 깨달음을 통해, 게임을 보는 제 관점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리니지를 처음 시도했던 무렵 제게 있어 좋은 게임이란 파판7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머신을 이용한 3D 그래픽과 박진감 넘치는 전투 시스템을 통해 미려한 스토리와 감동적 반전을 풀어 나가는 것.  그에 비해 리니지는 2D 도트 그래픽으로 타일과 타일 사이를 이동하며 단순 클릭으로 전투를 하는, 스토리따윈 존재하지 않는 게임이었죠.

그러나 두번째 시도를 통해 리니지의 재미를 깨달으면서, 파판7은 혼자 조용히 플레이하며 정해진 스토리를 풀어 나가는 게임이 되었습니다. 반면 리니지는 예측 불가한 사건들 속에서 내가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PC방 옆자리 사람과 서로 기쁨에 찬 탄성을 나누며 플레이하는 게임이 된 것이죠.

리니지의 대성공 이후, ‘MMORPG에서는 커뮤니티가 매우 중요하다’라는 인식이 자리잡았죠.  바로 이런 공식이 성립하게 된 겁니다.

 좋은 게임 -> 커뮤니티 활성화 -> 플레이어들의 충성도 UP -> 게임은 곧 나의 삶  ( ͡° ͜ʖ ͡°)~♡

그렇게 2000년대 중반까지 커뮤니티란 MMORPG의 뼈대이자 심장으로 취급받았습니다. 저 또한 이런 인식을 확고하게 지지했고요. 제 자신이 바로 그런, 커뮤니티를 통해 게임의 재미가 극과 극으로 갈린다는걸 직접 체험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이러한  인식은  다른 MMORPG 게임을 통해 좀더 확장되거나 때론 변형됩니다. 다음 편에서는 에버퀘스트를 통해 제가 MMO를 통해 배운 것들을 들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주용

김주용

일찍부터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일찍부터 실수했고, 정신을 차리자 돌이킬 길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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