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31 SCIENCE to the Future

SCIENCE to the Future #3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는 의사, 강동화

여기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과감히 새로운 분야에 발을 뗀 의학자가 있습니다. <SCIENCE to the Future> 세 번째 인터뷰는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이자 스타트업 뉴냅스의 대표 강동화입니다. 그는 의사, 연구자 그리고 두 권의 책을 쓴 작가이며 사업가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그를 수식하는 말이 하나 더 있다면 공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와의 융합으로 새로운 기술을 창조해내는 크리에이터입니다.

그와 함께 디지털 치료제라는 새로운 영역을 이야기해봅니다. 반짝이는 기술의 발견과 이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 어떤 미래를 그릴 지 상상해 볼 수 있길 바랍니다.


강동화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스타트업 뉴냅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시야장애를 개선하는 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최근 뇌 손상 후 시야장애 개선을 위한 디지털 치료제 `뉴냅 비전(Nunap Vision)`의 확증임상시험 계획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최종 승인했다.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는 의사


현재 연구하고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
뇌 손상 후에 발생하는 시야장애를 개선하기 위한 디지털 치료제(digital therapeutics)를 개발하고 있다. 게임과 같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뇌 질환을 치료하는 것이다. 현재는 임상시험을 통해 치료 효과를 입증하고 있는 단계다.

시야장애는 눈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문제이다. 우리가 눈으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눈은 필터일 뿐이다. 그냥 센서라고 생각하면 된다. 시야장애가 있어도 눈을 통해 들어간 정보는 뇌의 어디선가 처리된다. 우리가 본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로 ‘뇌가 인지한 것’이다.

소프트웨어로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소프트웨어로 반복적인 훈련을 시켜 뇌기능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새로운 뇌연결을 만들어 뇌조직의 재생을 도와준다고 이해하면 쉽다. 시야장애는 눈에 문제가 없어도 시각중추가 손상돼 시야가 매우 좁아지는 증세를 말한다. 손상이 아주 심하면 회복이 안되지만, 뇌조직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활성화시킬 수 있다. 눈만 정상이라면 다시 활성화된 뇌조직을 통해 사물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 시각중추: 뇌의 중추신경계에서 시각에 직접 관여하는 신경세포집단.

현재 임상시험 단계라고 했는데, 디지털 치료제의 임상시험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디지털 치료제와 대조군을 무작위로 배정하여 비교하는 임상시험을 한다. 누구는 진짜 약을 먹이고 누구는 위약을 먹여서 진짜 약의 효과를 시험하는 것처럼, 디지털 치료제를 쓴 사람과 대조기기를 쓴 사람을 비교한다. 임상시험을 통해서 효과와 안정성을 인정받게 되면 의료기기로 인허가를 받게 된다. 의사들이 디지털 치료제를 처방하고 환자는 약국에서 약을 사듯 앱을 다운로드하여 치료 받는 세상이 올 것이다.


게임으로 병을 치료하는 세상이 온다


화학 약품은 음용하거나, 주입하는 방식으로 투약한다. 디지털 치료제는 어떤 방식으로 치료가 이루어지는 건지 궁금하다
디지털 치료제의 형태는 게임, 앱, VR 등 소프트웨어로서, 소프트웨어 단독으로 또는 하드웨어에 장착되어 제공될 수 있다. 시야장애 치료제 ‘뉴냅비전’은 헤드마운트 기기를 통해 통제된 환경에서 시각자극을 제공한다. 치료 자극을 제시하는 건데 환자가 아무렇게나 눈을 돌리라고 하면 안되지 않나. 눈을 정확히 어디에 보게 하고, 시야 각과 거리 등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 그렇게 고도의 신경과학 지식이 숨어있는 소프트웨어로 훈련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몸에 좋은 약은 쓰다지만, 재미없는 걸 하루에 30~40분씩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소프트웨어를 게임의 형태까지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이 인지능력과 연결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몰입하게 하고 재미를 느끼게 만드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신경과학 지식을 녹인 소프트웨어에 이 속성을 잘 활용하면, 정말 게임으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다.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시지각학습 효과를 연구하다가 디지털 치료제 개발까지 생각하게 됐다.

오랜 기간 신경과 교수로 일하면서 어느 순간 갑갑함을 느꼈다. 한때 별명이 ‘논문 공장’일 정도로 눈만 뜨면 논문 생각만 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재미가 없어졌다. 새로움에 대한 갈증이 생겼고, 오랜 꿈인 뇌에 관한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뇌 공부를 더 깊게 할 수 있었다. 공부를 하다 보니 내가 뇌졸중만 알았지 정작 뇌를 잘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신경과 의사면서 뇌를 잘 몰랐던 거다. 심리학자들이나 공학자들이 뇌를 더 많이 아네, 이런 생각이 들어 성찰도 됐다.

그렇게 뇌 공부를 하러 연수를 떠났다. 이후 하버드의 심리학 연구실인 visual perceptual learning lab에서 시지각학습을 연구했다. 다양한 학자들이 모여 fMRI로 시지각학습 연구를 진행하는 곳이었다. 연수할 곳을 정할 때 일부러 의사도 없고 나도 그 분야를 잘 모르고, 그들도 나를 잘 모르는 lab을 선택했다. 중년의 교수 신분이지만 다시 postdoc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 곳에서 진행한 시지각학습 훈련에서 게임과 뇌의 관계에 주목했다.

* fMRI(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 혈류와 관련된 변화를 감지해 뇌 활동을 측정하는 기술. 쉽게 말해 뇌의 어느 부위가 활동하여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지 관찰할 수 있다.

시지각학습이라는 게 무엇인가
지각학습이란 오감(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에 관한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거나 훈련을 하면 자극에 대한 지각이 향상되는 걸 말한다. 시지각학습은 시각자극에 대한 지각이 향상되는 것으로 이 학습을 통해 이전에 못 봤던 걸 볼 수 있고, 이전엔 구분하지 못했던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다. ‘생활의 달인’들처럼 오래 하다 보면 손에 익어 잘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시지각학습에서 게임과 뇌의 관계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지
당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지각학습 실험을 수행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신호를 보고 무엇인지 맞춰야 하는 테스트였다. 실험을 통해 뇌의 어디가 활성화되는지 알기 위해 fMRI를 찍으면서 진행했다. MRI를 찍어본 적이 있다면 알겠지만 그 답답한 통 안에서 뭘 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정말 천재적일 정도로 너무 잘하는 거다. 끝나고 나서 대화를 나눠보니, 중고등학교 때 게임에 푹 빠졌던 경험이 있는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테스트 점수도 높았을 뿐 아니라, 뇌 연결성도 게임 무경험 피험자들과 차이가 뚜렷했다.

이후 심화 연구를 통해 <실시간 전략 게임과 시지각 학습(Real-Time Strategy Video Game Experience and Visual Perceptual Learning)>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실제로 실시간 전략(RTS)게임 유경험자들이 시지각학습을 더 용이하게 했고, fMRI에서 고위인지 뇌영역과 관련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지금 개발하는 디지털 치료제는 특별히 시야장애의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 그 이유가 있을까
신경과 교수로 근무할 때부터 시야장애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시야장애는 딱히 치료방법이 없어서 환자에게 그냥 참고 사세요 할 수밖에 없어 안타까웠다. 시지각학습이라는 주제를 보자 마자, 시야장애에 연결시키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야장애는 뇌 손상이 원인이기에 당연한 발상이었다. 그래서 시야장애 환자 맞춤형 시지각학습법을 개발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지금은 철거된 연구실 한 켠을 빌려 첫 번째 연구를 시작했다. 피험자는 암실에서 턱을 받침대에 받치고 모니터를 보면서 시각자극을 맞추는 태스크를 매일 수행했다. 처음에는 성과가 미미하다가 시간이 지나니 태스크 점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연구의 효과가 있었던 건가
그렇다. 게임 점수의 상승 뿐만 아니라, 안과에서 하는 시야 검사에서도 수치적으로 좋아졌다.

그렇다고 우리 치료제가 만병 통치약이란 건 아니다. 만병통치약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탐색 임상시험 결과, 시지각학습 치료 받은 환자군이 치료받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유의미한 개선 효과를 보였다.

디지털 치료제라는 분야는 전세계적으로 태동기다. 유관 학회들도 시작한지 몇 년 안됐다. 우리나라에서는 뉴냅스가 국내 최초로 디지털 치료제로 확증임상시험계획 승인을 받은 것이다. 기술 개발 외에도 업계를 형성하기 위해 만들어 가야 할 것이 많다. 우리 직원이 ‘발자국 하나 없는 하얀 눈길을 걷는 기분’이라고 말하더라. 그만큼 새로 공부할 것도, 해야 할 것도 많다. 눈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잘 걷고 싶다.

SCIENCE to the Future #3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는 의사, 강동화


지식의 융합에서 오는 크리에이티브


뉴냅스에는 공학, 수학, 게임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같이 일하고 있다. 의사들끼리 회사를 차릴 수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일하는 이유가 있을까
내 분야와 다른 분야의 지식이 연결됐을 때 시너지가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나는 공학자들이나 수학자, 심리학자, 게임 개발자 등 다양한 사람과 대화하는 게 좋다. 크리에이티브 또한 이전에 없던 걸 만들어 낸다기보다 지식의 연결이지 않은가. 뇌는 생각보다 많은 걸 기억하고 있다. 1~2년 전 경험이나 생각했던 것들이 뇌 속 어딘가 깊이 파묻혀 있다가 누군가 대화하는 순간 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항상 만나던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이런 연결이 크리에이티브의 핵심이다.

의사들에게는 강점이 있다. 우리는 환자를 직접 대하다 보니 사람이 다 다르다는 걸 안다. 특히 뇌가 다친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개개인의 신비로운 특징들을 많이 봐왔다. 이건 다른 분야 학자들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경험들인 거다. 의학의 이런 점과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의 지식이 모였을 때 시너지가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목표는 새로운 기술의 개발이 아니라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뇌에 대한 연구를 오랫동안 해왔다. 앞으로도 계속 연구를 할 것인지, 그렇다면 어떤 연구를 할 것인지
어떤 연구를 하든 ‘사람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한다.’가 내 모토다. 내 연구결과를 어떻게 사회에 도움이 되게 만들까가 아닌,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한다는 거다. 사업을 시작한 건 내 연구를 확실하게 환자에게까지 전달시키고 싶어서였다. 주로 지식의 확장을 가져왔던 이전 논문들 또한 긍정적이지만, 실제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더라. 지식을 위한 지식을 만드는 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환자가 직접 사용하려면 제품을 개발해야 하고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의료 환경에 맞춰야 하는 여러 가지 고려 사항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환자가 필요한 걸 파악하고 그 이익이 환자에게 도달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만드는 건 보람 있고 설레는 일이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환자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새로운 연구 분야는 또 찾아올 것이라 생각한다.

의사, 연구자, 작가 지금은 사업가까지. 굉장히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다. 혹시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언제든 시도하는 자유로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가장 두려운 건 안정적으로 멈춰 있는 것이다. 사업을 시작할 때 당연히 두려움이 있었지만, 새로운 시도를 멈추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정체되어 있지 않으려는 욕망이 나를 계속해서 탐구하고 움직이게 한다.

하지만 지금은 책임감이 더 크다. 다음 목표라고 한다면 이 뉴냅스라는 회사를 잘 일구는 것이다. 누군가의 삶의 일부분을 책임진다는 건 굉장히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론 매력적이기도 하다. 교수만 했다면 결코 생각할 수 없었던 많은 일을 겪으며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 수 년 이내에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추는 회사로 성장하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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