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NC다이노스 손시헌 코치
The Originality

The Originality | NC 다이노스 코치 손시헌

야구는 드라마의 연속입니다. 9회 말 짜릿한 역전극, 부상에서 복귀한 선수가 치는 시원한 만루홈런. 야구가 만들어 내는 환호와 열광의 순간들입니다. 그 순간을 위해 선수진, 코치진 그리고 수많은 스텝들은 고된 훈련을 반복합니다. 야구를 향한 진지함, 용기, 인내심, 자기 통제력 그리고 페어플레이까지. NC 다이노스는 살아있는 스포츠 정신으로 감동의 플레이를 만들어 냅니다. 전력 질주하는 승부의 세계에 타협이란 없습니다. <The Originality> “신고선수로 치열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남들과 똑같이 연습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심심하면 공을 벽에 튕겼고, 글러브질을 연습하고, 다리 움직임도 상상했다. 남들보다 앞서 나가려면 연습으로는 부족했다. ‘공을 가지고 놀아야 한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그렇게 천오백 경기 넘게 출전했다. 마흔 살까지 현역으로 뛰겠다는 목표도 이뤘다. 선수로서 내 능력치를 다 뽑았다. 이젠 속이 후련하다.”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흔 살까지 현역으로 뛰겠다는 꿈 마흔 살까지 현역으로 뛰겠다는 꿈이 있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선수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리고 작년에 그 꿈을 이뤄서 속이 후련하다. 올해 마흔한 살, 지도자로서 야구 인생을 새롭게 시작한다.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한 신고선수 프로의 문턱은 높았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어느 팀에서도 지명받지 못했다. 4년간 대학 야구부에서 꾸준히 활약해 신생 야구부의 우승도 이끌어냈지만, 그 이후에도 지명받지 못했다. 야구선수로서 왜소한 체격도 큰 약점이었다. 신고선수(육성선수)로 계약금 없이 구단에 들어갔다. 치열한 프로 생활을 그렇게 시작했다. 고만고만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신고선수였기에, 다른 선수들과 차별점이 없으면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남들과 똑같이 연습해서는 앞서 나갈 수 없었다. 항상 공을 갖고 놀았다. 심심하면 공을 벽에 튕겼고 글러브질을 연습했다. 다리 밸런스가 맞게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이미지 트레이닝도 했다. 야구는 생각하고 움직이면 늦다. 몸이 먼저 반응하려면 엄청난 연습량이 필요하다. 그래서 ‘연습한다’가 아니라 ‘공하고 놀아야 한다’는 말로밖에 표현이 안 된다. 남들만큼 연습해서는 늘 수가 없었다. 이건 은퇴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무조건 나의 강점을 살린다 나는 남들보다 공을 강하게 던질 자신이 있었다. 그거 하나로 프로에 들어왔다. 그래서 강한 송구를 내 트레이드 마크로 만들었고, 선수 시절 내내 팔과 어깨를 관리하려고 애썼다. 무조건 나의 강점, 나의 색깔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또한 유격수에게 중요한 세 가지인 송구, 부드러운 핸들링, 풋워크가 잘 맞아떨어지도록 열심히 훈련했다. 반복된 이미지 트레이닝과 훈련이 하나 된 순간 ‘좋아진 나’를 발견하였다. 매일의 목표를 적고 달성했던 날들 프로선수 2년 차부터 늘 갖고 다닌 노트가 있다. 매일 목표를 노트에 적었고, 그날의 목표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했다. 그러면 마치 행운의 부적처럼 목표가 이뤄졌다. 그래서 그 노트는 나에게 행운의 상징인 동시에 흔들릴 때마다 나를 붙잡아 주는 버팀목이었다. 1이 9를 이길 수 있는 힘, 우리는 하나라는 믿음 천오백 경기 넘게 출전한 백전노장 글러브에 빨려오듯 공을 잡은 후 완벽하게 던져서 주자를 처리했을 때 전율을 느낀다. 그게 야구의 묘미가 아닐까. 선수의 감각은 오랜 경험으로 몸에 축적되는 것이다. 돌아보니 내가 천오백 경기 넘게 출전했더라. 그만큼의 경험이 나에게 쌓여 있다. ‘이 타자는 공을 어떻게 쳤는지, 이 투수는 공을 어떻게 던졌는지’를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저절로 반응한다. 운동장에서 생각을 한 다음에 움직이면 타구가 지나가고 만다. 선수는 많은 훈련과 경험을 통해 그런 감각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 1이 9를 이길 수 있는 스포츠 선수 생활 중 큰 경기에서 실책한 적도 있고, 나 때문에 진 적도 있다. 그때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집중했던 것이 지금까지 나를 견디게 해준 것 같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 때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반드시 있다. 동료 선수가 실수했을 때 감싸주고, “내가 병살 잡아 줄게”라는 이런 말 한마디 하는 것이 혼이 담긴 플레이,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라고 생각한다. 야구는 팀원들이 “우리는 하나야” 하며 똘똘 뭉쳐 있는 분위기가 전력이 된다. 전력이 9인 팀과 1인 팀이 있을 때 1이 9를 이길 수 있는 힘은 선수들끼리 서로 도와주려는 강한 마음에서 나온다. 중심 선수들이 빠져도 버티고 우승까지 갈 수 있는 스포츠가 야구이다. 야구에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들려면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야 한다. 야구선수는 시즌 중에는 반복되는 훈련과 원정 경기, 비시즌 때는 몸을 만들어야 하는 동계훈련으로 지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야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안 해봤다. 지금도 쉬는 날이면 아이들과 동네에서 야구하는 것이 재미있다. 내가 선수로 롱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도 야구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백발이 되어도 선수들에게 펑고 쳐주는 지도자 NC 다이노스 첫 4강의 기쁨 처음에 FA선수로 NC 다이노스에 올 때 이종욱 코치와 둘이 의기투합해서 “우리가 첫 4강의 주역이 되어보자. 나중에 소주 마시면서 되새길 좋은 추억거리 한번 만들어보자”라고 했었다. 10승 이상 하는 투수 2명도 아니고 야수 두 명이 나타나서 가을야구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한번 해보자’는 각오가 필요했다. NC 다이노스가 첫 4강에 들어갔을 때 정말 기뻤다. 나는 야구를 하면서 정말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런데 NC 다이노스에 오고 나서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족이나 동료를 생각하게 되면서 시야가 넓어졌다.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후배들에게 팀을 위해 하나로 뭉치는 법을 알려준 것 같다. 그게 이제는 NC 다이노스가 추구하는 야구, NC 다이노스의 문화가 되었다. Lucky Strike NC 다이노스에서 선수로 생활할 때, 내 등장곡은 Maroon5의 ‘Lucky Strike’였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까지 함께해 준 곡이다. 나는 그저 늘 묵묵히 2루와 3루 베이스 사이를 지켰던 유격수일 뿐이었다. 이런 평범한 선수를 레전드로 대우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팬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정상 유격수 발굴이 최우선 목표 요즘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다. 지도자로서 첫걸음이라 팀 성적, 팀 매뉴얼, 선수 개개인의 능력을 파악하기 바쁘다. 선수 때에 가지고 있던 루틴을 바꾸고 새로운 습관이 몸에 배게끔 노력하고 있다. 어린 후배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 코치로서 정상 유격수를 발굴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목표이다. 우리나라 야구는 요즘 들어서 수비가 많이 약해졌다. 공격력에만 신경을 쓰고, 타격 성적만 대우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캐치볼을 중요시하지 않는 선수가 많다. 아무래도 수비 연습보다 타격 연습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이 아쉬워서 훈련할 때 수비의 기본기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 골든 글러브 시상에서 수비기여도를 반영한다면 선수들이 수비에도 더 신경 쓰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체 불가의 ‘손시헌’ 이제 ‘손시헌’이라는 사람을 떠올리면 “아, 저 사람은 대체 불가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만의 색깔이 있는 코치가 되고자 한다. 내 분야를 개척해 가는 유일한 지도자가 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지도자로서 필요한 야구 공부를 하고 싶다. 아버지 아직도 펑고 치고 있을걸요? 나의 야구 인생은 현재진행형이다. 먼 훗날 아이들이 “아버지, 뭐 하시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 “아직도 야구장에서 펑고 치고 있을걸요?”라고 대답하는 그런 아버지. 그리고 앞으로 일흔 살, 백발이 되어도 같은 자리에서 선수들에게 펑고(FUNGO)를 쳐주는 코치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이다. * 본 인터뷰에서 언급되는 내용은 인터뷰 당사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NCSOFT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2020.07.13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