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7 세계관과 장르미학

세계관과 장르미학 #1 세계관이라는 지도 그리기 – 철학에서 장르로, 예술에서 대중미학으로

세계관은 게임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유저들은 게임 속에 만들어진 가상 세계 안에서 끊임없이 상호작용 하며 게임을 즐깁니다. 때문에 그 세계가 얼마만큼 생동감 넘치고 리얼리티가 살아있냐에 따라 게임의 몰입도를 결정합니다.

‘세계관과 장르미학’은 이 세계관을 더 깊이 이해해보고자 합니다. 역사적으로 무수히 축적된 게임 속 세계관들을 장르별로 나눠서 살펴볼 것입니다. 그 속에서 세계관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탐구해 보고, 여러 세계관의 혼종이 나타나는 한국 게임에서 세계인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세계관을 발굴할 수 있을지 살펴볼 계기를 마련할 것입니다.

첫 번째 편에서는 세계관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의미를 찾기 위해 역사 속을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세계관과 장르미학#1 세계관이라는 지도 그리기 - 철학에서 장르로, 예술에서 대중미학으로


세계관의 이해

“인간은 절망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본원적 힘으로 돌아갈 수 있다” – 키에르케고르 –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모든 예술 작품에는 내재적으로 목적이 존재하며 세계관은 그 안에서 섭리를 이룬다. 세계관이 없다면 예술은 심미적 지평에서 마주하는 절대적 현존, 즉 진정한 삶과 조우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 고독에 사로잡힐 때 본능적으로 예술에 손을 뻗는 이유는 예술이 그리는 세계에서 절망과 마주하고 그것을 심미적 실존으로 승화하고자 함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울할 때는 멜랑꼴리한 노래를 듣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을 때 죽음에 관한 아픈 이야기를 듣는다. 축제와 향연에서는 흥겨운 춤을 추고, 분노는 희극의 웃음과 아이러니를 통해 해소한다.

세계관(worldview)은 오늘날에는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말이며, 대중문화 장르에서는 흔히 대안적 세계의 구성 원리 또는 법칙으로 통용된다. 예술이 미적 숭고를 추구하는 것과 달리 장르는 쾌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창작자와 독자 간의 암묵적인 계약으로 얽매여 있다. 그러나 세계관 (weltanschauung)은 본래 철학적 사유, 멀리는 신화와 종교의 이야기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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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신화가 그리는 세계관의 구조 (출처: thenewpagan)


아스가르드(신들의 세계), 알프하임(요정의 세계), 미드가르드(인간의 세계), 스바르트알브하임(난쟁이의 세계), 요툰하임(거인의 세계), 헬(사자의 세계), 그리고 각 세계를 이어주는 위그드랏실(세계수)이 기본적인 토대를 이룬다.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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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세계관


남섬부주(인간 세계)에서 7개의 산으로 둘러싸인 수미산에 오르기 위해 해탈교를 건너고, 일주문과 천왕문을 거쳐 4개의 층(견수, 지만, 향교, 사천왕)으로 된 사천왕천을 통과하여 정상에 오르면 제석천왕이 다스리는 도리천(33개의 하늘) 위의 부처님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산 속의 사찰에 모셔진 대웅전에 불공을 드리러 가는 과정 자체가 불교적 세계관의 재현이다.

니체는 세계관을 세상을 해석하는 ‘주관적인 관점’으로 발전시켰다. 니체의 시대는 과학·정치·산업혁명으로 인해 종교적 신념과 윤리로 단단히 짜인 세계가 무너지고, 보편타당한 인간의 합리성과 개인의 생활 세계가 새로운 주제로 등장하던 시기였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고,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을 알아냈으며 신이 아닌 인간이 세계의 주인임을 선언했다. 절대적이고 불변적이며 객관적인 진리였던 신은 쇠락하고, 자연과 인간 사이의 역사적·물적 과정이 삶의 주된 요소가 되기 시작했다.

니체는 인간의 판단과 인식은 그것이 객관적 진리여서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따라서 세계관은 사실이나 진리가 아닌 관점이며, 지정학적·역사적 흐름 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떠올리고 사로잡히는 사회문화적 실재가 된다. 즉, 세계관은 공통 감각이라는 토대 위에 주관적으로 만들어내는 관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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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과 사과, 물리학 이야기(출처: 유레카 블로그)


과학에서 이는 ‘모델’의 개념으로 설명된다. 프톨레마이오스적 세계관(천동설)과 아리스토텔레스적 세계관(4원소설과 플로지스톤설)이 끝나고 뉴턴적 세계관(중력), 원자론적 세계관(산소)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 또한 객관적 진리가 아닌 만들어진 모델, 아인슈타인과 스티븐 호킹의 이론에 의해서 다시금 변하게 될 주관적 관점의 총합이다.


세계관은 진리가 아닌 ‘관점’이다

기하학, 미적분, 프리즘, 중력은 연결되어 있다. 뉴턴은 빛의 성분과 중력의 존재를 밝혀냈으며, 빛을 굴절시키는 렌즈를 통해 현미경과 망원경이 만들어졌다. 케플러와 갈릴레이는 천체 망원경을 통해 목성의 위성을 관찰,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라이프니츠와 라플라스의 미적분을 도구로 행성과 위성의 공전 궤도가 계산되기 시작했다. 프리스틀리는 볼록렌즈로 햇빛을 금속에 쪼이다 산소의 존재를 알아냈으며, 라부아지에는 산소를 비롯한 원자들을 분해하고 융합시킬 수 있음을 입증했다. 불변하는 객관적 진리 중심의 종교적 세계관에서 합리적이고 주관적 인식 중심의 이성적 세계관으로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세계관이 진리가 아닌 ‘관점’이라는 니체의 생각은 옳았다. 신은 죽었고, 그 빈자리인 19세기와 20세기에 과학·예술·철학 인간의 감각과 인식이 닿는 모든 영역에서 수많은 관점들이 생겨났다. 기계가 만들어지고 화학이 발달하면서 자본주의라는 신세계가 건설되었으며, 반대편에서는 자본주의적 착취에 반대하는 공산주의 세계관이 만들어졌다.

세계를 진리, 도덕, 윤리와 같은 관념으로 사고하는 관념론에서 물질, 노동, 가치로 사고하는 유물론으로 세계관이 확장됐다. 예술은 신과 영웅을 그리던 과거에서 벗어나 자연의 풍경과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인상주의와 큐비즘은 원근법으로는 드러낼 수 없었던 복잡한 세계를 재현했고, 유럽이 전부였던 세계는 아시아와 아메리카, 아프리카로 확대되었다. 이와 같은 관점의 변화는 예술의 미적 형식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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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1907). 아프리카의 미학적 관점이 유럽의 재현 양식과 만나면서 다원적 세계관을 구성하게 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았던 ‘합리적 이성’ 중심의 세계관은 한계에 직면한다. 보편타당하다고 생각됐던 이성이 효율성의 논리에 집어삼켜지며 광기로 치달았던 것이다. 인간의 이성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은 제국주의라는 세계를 상상하고 재현했다. 기계들이 즐비한 공장이 만들어지고, 유럽 바깥 세계에 식민지가 건설되며, 흑인은 백인의 노예가 되었고, 농민과 장인들은 임금노동자로 전락했다. 삶은 황폐해지고 부는 불균등하게 분배됐다. 팽창하는 제국들이 세계 곳곳에서 충돌하며 전쟁은 차츰 지구적 규모로 번져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인류 최후의 전쟁이 끝나고, ‘효율적으로’ 대량 살상하는 전쟁 기술의 각축전과 ‘수학적 계산’에 의해 일어난 아우슈비츠를 목도했을 때 합리적 이성의 세계는 종언을 고했다. 철학자 아도르노가 선언한 것처럼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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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참호전(좌)과 아우슈비츠(우) (출처: 왜 그렇지 블로그, Mediaus)


계몽의 시대에 합리적 이성은 낡은 종교적 세계관을 부수는 힘이었지만, 제국의 시대에 이성은 대량 살상과 대량학살이라는 참혹한 역사적 광기로 이어졌다.

그러나 반드시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이해로만 장르가 탄생하지는 않는다. 이성 중심적 세계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인과적 질서보다 무질서한 상상력을 추구하는 감각의 향연이 대중들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삶의 진정성을 추구하는 근대 예술은 그 수명을 다하고 급속히 소멸해갔으며 그 과정에서 예술의 미학적 유산은 소비의 핵심이 된 대중문화와 삼투압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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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의 <마릴린>(1964)과 <캠벨 수프 캔>(1962). 이거 봐. 예술도 대량생산 할 수 있다니까? 대중들은 예술을 대량 소비하고 있어. 나는 작품을 찍어내는 예술 공장이야. (출처: 평일남의 일상의 재미 블로그)


새로운 세계관의 출현: 대중미학

‘장르’라는 대안적인 바벨탑은 기나긴 역사의 진보와 이성의 폐허 위에서 본격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미 이성적 세계는 이전부터 인간의 감각·상상의 영역을 산업화하고 있었다. 감각과 상상을 대량으로 가공·생산하여 자본주의적 이윤의 세계로 포섭할 수 있다는 믿음은 장르라는 품질검사의 표준을 고안해냈다. 괴팍하고 명석한 탐정과 이유를 알 수 없는 연쇄살인(추리소설),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밝혀나가는 상상적 과학과 기술(SF), 뻔하지만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남녀의 사랑(로맨스)이라는 틀에 규격화된 서사와 등장인물이 창작자와 독자 간 공통 계약서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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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미학의 등장(출처: FLASHBAK, maniadb, 마음의 정원 블로그, peeweecomics)


소비사회와 함께 소설, 영화, 음악 등 광범위한 문화 영역에서 대중미학이 등장, 독자적인 미적 스타일과 세계관을 발전시켜나갔다. 특히 SF에서 빅3(아시모프, 하인라인, 클라크)와 판타지에서 『반지의 제왕』의 출현은 오늘날까지 장르적 세계관의 토대가 되는 기념비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물과 기름으로 생각되던 예술의 심미적 세계와 장르의 상품적 세계가 뒤섞이면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팝 아트로 대표되는 예술의 형식적 변화와 더불어 폭발하던 대중문화는 점차 미학적 세계와 교접하기 시작했다. 상품으로 출발한 판타지, SF, 추리, 로맨스, 스릴러, 필름누아르 등 각 장르는 점차 나름의 형식과 내용을 추구하면서 근대 예술이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세계관을 확립해 나가기 시작했다. 근대 예술이 독점하고 있던 심미적 지평이 균열을 일으키며 그 틈새에서 ‘대중 미학’이라는 새로운 씨앗이 발아한 것이다.

4원소의 힘을 사용하는 마법, 요정과 드워프, 시간 여행과 웜홀, 로봇과 외계인 등은 몇몇 작가의 천재적인 영감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공동체의 공통 감각과 감정의 구조, 전설과 신화에서 건져 올린 과거의 얼굴들, 착취와 전쟁이 아닌 더 나은 세계를 갈망하는 진보의 열정과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 속에서 장르는 잉태됐다. 미국의 문학 이론가인 프레드릭 제임슨은 “고급 예술이건 상업문화건 간에 모든 예술작품은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고 또 살려내야 한다고 느끼는 사회적 삶에 대한 뿌리 깊은 판타지들을 잠재적 충동으로 내재하고 있다”고 평한 바 있다.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는 문화 다원주의적 세계를 암시하는 『스타워즈』, 노동자 계급에 대한 알레고리이자 인간 실존에 대한 물음으로써 『로봇』, 인간적 유대와 끈끈한 형제애가 존재했던 전통 시대에 대한 향수인 『반지의 제왕』의 세계관은 장르의 세계관이 대중의 공통감각과 유토피아적 열망을 투영한 구성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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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컴퓨터 게임 <테니스 포 투>(1958). 핵물리학자인 윌리엄 히긴보덤(William Higinbotham)이 오실로스코프를 해킹하여 발명해냈다.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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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워!>(1962). 최초의 디스플레이-키보드 기반 컴퓨터인 PDP-1을 역설계해 만들어졌다. (출처: ThoughtCo.)


게임은 자유와 평화, 진보를 향한 인류애적 세계관으로부터 피어난 푸른 꽃

대중문화와 장르미학이라는 거푸집이 새로운 세계관을 주조하고 있는 가운데, 괴상한 발명품이 몇몇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1958년 미국의 브룩헤이븐 핵연구소에 방문한 시민들은 방문 시간 내내 한 기계장치 앞에 모여서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다. 핵물리학자인 윌리엄 히긴보덤 박사는 냉전시기 군사기술의 산물인 오실로스코프를 뜯어내 트랜지스터 스위치로 조작할 수 있는 최초의 디스플레이 기반 게임을 만들어냈다.

게임은 이전에도 보드게임으로 존재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TRPG와 같은 핵심적인 상업문화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계장치와 결합한 게임의 발명은 이후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더 멀리는 SF와 판타지로 대표되는 장르적 세계를 가장 성공적으로 매개할 디지털 게임의 탄생을 암시하는 사건이었다.

몇 년 뒤, 국방기술 프로젝트에 종사하던 MIT 공대생 스티브 러셀은 군사 기밀이었던 컴퓨터 PDP-1을 해킹해 <스페이스 워!>(1962)를 만들었다. 최초의 컴퓨터 게임은 수학적 연산과 기계장치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예술과 전혀 다른 존재론을 가지고 있었다. 거창한 서사나 문제적 인물, 화려한 색채는 당연히 없었다. 간단한 메카닉의 작동이 전부였다. 버튼을 누르면 무기가 발사되거나, 테니스 공을 반대편으로 쳐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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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긴보덤 박사(출처: James Apple Jr. 블로그)


“놀이는 모두의 소유이며, 이 기술은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히긴보덤 박사는 수많은 전자 기기의 발명에 대한 특허를 가지고 있었지만 <테니스 포 투>는 모두의 것으로 남겨놓았다.

그러나 인물이나 서사가 없다고 해서 여기에 윤리적·심미적 지평이 부재한 것은 아니다. 최초의 게임은 그 존재 자체에 평화를 열망하던 당대 사람들의 꿈이 아로새겨져 있다. 히긴보덤과 러셀 모두 군사기술에 종사하던 과학자들이었지만, 동시에 반전 평화주의자들이었다. 히긴보덤은 이후 국제 과학자 그룹 “평화를 위한 과학”에 몸담아 평생을 핵 확산 방지 운동에 이바지했다.

무엇보다, 다른 기술적 발명과 달리 두 게임은 상업적 용도로 제작 유통되지 않았으며 특허·저작권 등록도 되지 않았다. 러셀은 오히려 <스페이스 워!>의 소스코드를 대중에 공개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첨예하게 펼쳐지고 있는 프리소프트웨어·오픈소스 운동의 초석이 되었다. 덕분에 수많은 <스페이스 워!>의 파생형들이 만들어졌고, 컴퓨터를 다루는 젊은 괴짜인 너드(nerd)들의 땜장이질을 통해 공유된 군사기술은 ‘자유기술’ 이 될 수 있었다.

별 뜻 없이 기계장치를 만지작거리다 우연히 발명된 것처럼 보이는 게임에는, 파괴적인 군사기술을 유희로 역설계해내고자 하는 당대 사회의 공통 의지가 담겨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이성적인 사고가 인류를 진보로 이끌 것이라는, 과거 계몽주의자들의 낙관적 세계관이 복잡한 전자회로의 신호 속에서 부활한 것이다. 합리적 이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자유롭고 평등한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유토피아적 열망이 최초의 게임에서부터 존 레논의 ‘이매진’에 이르기까지 나선궤도로 이어진다.

록 음악의 시대가 저물고 게임은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했지만, 대중미학의 깊이는 더욱 다채로워져 간다. 누군가가 게임을 돈벌이 도구로만, 혹은 애들 장난이나 시시껄렁한 하위문화라고 이야기한다면, 그들에게 망설임 없이 이야기해도 좋다. 게임은 자유와 평화, 진보를 향한 인류애적 세계관으로부터 피어난 푸른 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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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 IS OVER! (출처: John Lennon 페이스북 페이지)


“국가가 사라진 세계를, 소유가 사라진 세계를 상상해봐. 거기엔 탐욕도 굶주림도 없어. 오직 인류애만 있을 뿐이지.”

동시대에 공존했던 존 레논의 노랫말과 최초의 게임들은 연결되어 있다. 자유문화, 오픈소스, 카피레프트, 그리고 사이버스페이스와 디지털 민주주의는 그 유산이다.


신현우 문화연구학자로, 기술-정보문화와 영상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공저로 , 등이 있으며 예술과 테크놀로지에 관해 강의하고 있다.

신현우

문화연구학자로, 기술-정보문화와 영상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공저로 <사물에 수작부리기>, <게임의 이론> 등이 있으며
예술과 테크놀로지에 관해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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