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1 세계관과 장르미학

세계관과 장르미학 #2 잊혀진 민중사를 소환하는 판타지 – 공통문화의 지층 위에 주조된 검과 마법의 세계

세계관은 게임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유저들은 게임 속에 만들어진 가상 세계 안에서 끊임없이 상호작용 하며 게임을 즐깁니다. ‘세계관과 장르미학’은 이 세계관을 더 깊이 들여다보며 역사적으로 무수히 축적된 게임 속 세계관을 장르별로 나눠서 살펴볼 것입니다.

두 번째 편에서는 판타지라는 장르가 어떠한 사회적인 배경에서 탄생했으며 게임 세계관에 어떻게 이식되어 왔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사회는 판타지가 필요했다, 환상과 노스탤지어

성수대교가 붕괴하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997년, IMF의 해일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삶은 폐허가 됐다. 고층 빌딩과 아파트는 멀쩡했지만 사람들은 유령처럼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발걸음은 무거웠고 시선은 가장 낮은 곳을 향했다. 현실은 더 이상 뭔가를 꿈꾸고 구체화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출근길 양복 차림에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나선 사람들은 아침마다 지하철 화장실에서 등산복으로 갈아입었으며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중년 남자의 빈소에 줄지어 나타났다. “세계가 멸망하는 소리는 쾅 하는 폭발음이 아니라 흐느끼는 소리이다.” 라는 한 시인의 말이 실감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전쟁과 대량살상은 없었지만 세계는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미래를 저당 잡힌 사람들은 눈을 감고, 비극의 현실을 희극으로 소급시켜 줄 대안 세계를 찾아 헤맸다. 서로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따뜻한 온정이 넘치는 공동체, 국가나 자본의 촘촘한 그물망으로 짜여진 세계가 아닌 자유와 해방의 에너지로 건설된 세계, 사이버스페이스는 어디에나 편재했다.

온오프 신호로 된 이 2진수-반도체 공간은 컴퓨터가 있는 곳 어디에서나 이상한 나라로 이어지는 토끼굴이 되었고, 부정한 현실을 떠나온 피난민들은 사이버스페이스에 모여들었다. 호혜와 선물로 결속된 익명 군중들의 형제애, 기술과 해방의 환희로 가득 찬 이 영토는 디지털 라퓨타이자 릴리푸트 읍*이었다.
* 릴리푸트 읍: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저)에 나오는 독일의 난장이 마을로, 평등과 민주가 실현된 상상적 공간이다.

“밤하늘에 별이 빛나고, 별빛이 길을 비추며, 그 길을 가야만 했던” 총체성의 세계는 근대문학과 함께 해체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세계상과 내면의 불꽃이 여전히 하나이던 시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충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것을 ‘복고’ 혹은 ‘노스탤지어’ 라고 부른다.


세계관과 장르미학#2 잊혀진 민중사를 소환하는 판타지 – 공통문화의 지층 위에 주조된 검과 마법의 세계

‘귀향의 존재론적 불가능성.’ 칸트는 고향을 애타게 향수하는 사람이 진정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은 장소로서의 유년 시절의 고향 땅이 아니라, 시간으로서의 유년기 자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고향이라는 장소로 돌아간다 해도 유년기는 다시 지금 여기가 될 수 없으며. 그 시간 속에 다시 뛰어들 수도 없다. 노스탤지어는 이런 슬픈 현실에 대한 몸부림인 동시에 퇴행이다.


사이버 자유민의 새로운 영토 출범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은 그 어느 시기, 어느 누구보다도 서브컬처에 탐닉했다. 이 사이버 자유민들에게 ‘공식문화’ 혹은 ‘주류문화’는 현실의 공고한 위계적·비대칭적 사회 질서를 표상하는 재현 체계, 즉 억압의 근원이자 해체의 대상이었다. 새로운 사회적 감각과 미적 세계관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했고, 지금까지 이어져오던 현실과의 과감한 단절이 필요했다.

공식문화의 가장 높은 첨탑에 위치하고 있던 문학은 천천히, 균열과 발맞춰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형식적 민주주의의 연착륙과 더불어 고도로 성장하는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번영, 새로운 세계를 열망하는 대중들의 문화적 부르짖음 사이에 위치한 채, 문학은 학생운동의 몰락과 더불어 그 ‘진정성’의 깃발을 스스로 부러뜨렸다.

민주화 운동의 후일담, 도회적인 대중문화에의 심취, 소비적 풍토에 대한 냉소 속에서 견고했던 대지는 진흙탕으로 변모해 갔다. 그리고 IMF라는 대공황이 시작되는 1996년과 1997년, 지구 곳곳 ‘이상한 나라’의 사이버 자유민들은 이 폐허가 된 진흙 습지대 위에 새로운 영토의 출범을 선포했다.


세계관과 장르미학#2 잊혀진 민중사를 소환하는 판타지 – 공통문화의 지층 위에 주조된 검과 마법의 세계

PC통신 게시판을 통해 사이버 공간에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한 한국 판타지 소설. 『퇴마록』(1994), 『드래곤 라자』(1998), 『탐그루』(1998), 『세월의 돌』(1999), 『하얀 로냐프 강』(1999), 『불멸의 기사』(2000).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2003)는 이 시기 형성된 한국의 대안적인 판타지 세계관의 총 결산이자, “토착적(Vernacular)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점에 서 있다. (출처: 알라딘, 리브레위키, YES24, 제우미디어 홈페이지)


세계관과 장르미학#2 잊혀진 민중사를 소환하는 판타지 – 공통문화의 지층 위에 주조된 검과 마법의 세계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1996). 존 페리 발로는 사이버스페이스가 국가, 자본이 개입할 수 있는 자유민들의 영토임을 선언하며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우리는 인종, 경제력, 군사력, 태어난 곳에 따른 특권과 편견이 없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비록 혼자일지라도 침묵과 동조를 강요당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어디에서나 믿음을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이제 너희(국가와 기업)의 지배에 견딜 수 있는 우리의 가상 주체를 선언해야 한다…우리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마음의 문명을 건설할 것이다.” (출처: 땡글닷컴)


체계화된 검과 마법의 세계관 등장

사실 ‘환상성’이나 ‘환상문학’의 형식은 인류의 모든 시간 속에 아로새겨져 있다. 멀리는 고대의 창조신화와 민담, 설화, 중세의 기사문학 등이 그랬고 가까이는 에드가 앨런 포와 H.P. 러브크래프트의 환상소설, 라틴 아메리카의 ‘노벨라 네그라(novela negra)’나 마술적 리얼리즘 등이 있었다. 그러나 서구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장르’로서의 판타지와 체계화된 검과 마법의 세계관이 등장한 것은 반세기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문명은 폐허 위에 새로운 소비사회의 토대를 쌓아 올리고 있었다.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TRPG 게임 <던전 앤 드래곤>은 이러한 역사적 과정에서 탄생했다. 여기에는 ‘소비사회’라는 새로운 자본주의 형태, 즉 문화산업의 팽창과 서브컬처에 대한 기하급수적 수요 증가라는 사회경제적 맥락이 함께했다.

사회학자 뒤르켐이 말한 것처럼, 자본주의에 의한 사회적 분업의 발달은 대량생산과 소비의 발달을 추동하지만 사회구성체가 비상사태를 맞았을 때, 상호 연대와 공동체 의존 관계는 손쉽게 파괴된다.

87년 체제의 출범 이후 한국 사회가 그러했듯이, 서구 사회도 2차 대전 이후 새로운 세계의 질서와 법칙들이 하나씩 시민사회에서 인준되는 과정의 연속이었고, 사람들의 삶은 뗏목처럼 위태롭게 부유하고 있었다. 전통적인 규범과 윤리, 과거의 이성 중심적 세계관은 뿌리째 흔들렸다.

전쟁 이후 무규범 상태에서 민중의 삶은 지표를 잃은 채 혼돈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삶의 방향성이 상실되고 일탈과 방종이 보편적이며, 공동체를 관통하는 공통 감각이 손아귀에 잡히지 않는 현실, 즉 아노미 그 자체였던 것이다. 까뮈의 『이방인』,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로 대표되는 문학의 실존주의적 전회가 이런 현실에 대한 반영이었다면, 그 반대편에서 『반지의 제왕』과 <던전 앤 드래곤>은 전혀 다른 감각의 장르세계를 주조하고 있었다.


세계관과 장르미학#2 잊혀진 민중사를 소환하는 판타지 – 공통문화의 지층 위에 주조된 검과 마법의 세계

장르 판타지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작품들. 『반지의 제왕』(1954), 『나니아 연대기』(1956), 『어스 시의 마법사』(1968), 『앰버 연대기』(1978) (출처: 위키피디아, 헤드윅 블로그)


요컨대 갑옷과 로브를 걸치고 여행을 떠나는 검과 마법의 세계는 진공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판타지라는 장르적 세계관은 문화산업의 맥락에서 과거의 환상적 전통들을 발굴해 재배치했지만, 무엇보다도 환상과 몽환의 숲을 거닐며 새로운 서사시를 쓰고자 했던 대중들의 노스탤지어가 그 진흙의 땅 아래 지층으로 숨겨져 있었다.

이러한 공통 감각은 서구 사회에서나 한국 사회에서나 필연적으로 민중들의 강력한 역사적 의지의 조응한다. 판타지는 ‘장르’ 이기도 하지만 구 체제(ancient regime)로부터 발굴한 유물들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세계상을 도출하고자 하는 의지, 나아가 파멸적인 국가-자본의 세기 이전에 존재하던 총체성의 밤하늘로 도약하고자 하는 민중의 판타지, 즉 회귀본능에 더 가까울 것이다.


세계관과 장르미학#2 잊혀진 민중사를 소환하는 판타지 – 공통문화의 지층 위에 주조된 검과 마법의 세계

영화 <반지의 제왕>(2003) 의 장면. 반세기가 지났지만, 역설적이게도 <반지의 제왕>은 잊혀진 공통문화로 돌아가고자 하는 민중사적 순간을 여전히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주인공은 강력한 마법사 간달프도 아니고, 위대한 왕의 혈통을 지닌 전사인 아라곤도 아니다. 세계를 구하는 이들은 평범한 시골 청년들인 프로도, 샘와이즈와 메리, 피핀이다. 검도 마법도 서투르며 왜소한 체구인 호빗이지만, 끈끈한 유대와 우정으로 연결된 이들은 근대 이전 시기 평화롭게 살아가던 민중의 모습을 표상한다. 이들의 목가적인 고향인 ‘샤이어’는 그 행복했던 시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노스탤지어, ‘귀향 불가능성’과 마주한 공간의 애절한 표현이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이 오래된 이야기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것이 본원적으로 ‘민중사’ 이기 때문이다. (출처: 영화 <반지의 제왕> 공식 스틸컷, hobbitontours.com)


게임과 판타지의 예견된 만남

잘 알려진 것처럼, 초기 디지털 게임의 개발자들은 그래픽 디스플레이와 메모리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장르의 세계관을 게임 속에 이식하고자 시도했다. 장르가 기본적으로 상품미학이며, 게임 또한 새로운 문화산업의 성장과 더불어 성장했기에 장르-게임의 결합은 예견된 진행이었다.

<테니스 포 투>와 <스페이스 워>는 반전, 평화, 놀이 기술의 공유라는 가치관 속에서 탄생했지만, 70년대 이후 게임 산업의 성장은 이 놀이 공유지(commons)를 끊임없이 남획하며 성장했다. 그로 인해 ‘아타리 쇼크*’가 불어 닥친 것도 필연이었다. 그러나 자유·평화를 열망하던 디지털 히피, 컴퓨터 땜장이들의 실험은 계속됐다.
*아타리 쇼크: 퐁이나 팩맨을 토대로 해서 이름만 다른 게임들을 지나치게 많이 카피해 생산한 결과 게임 시장이 정체되어, 가장 큰 기업이었던 아타리 사를 비롯한 게임사들이 줄도산 한 사건.

<던전 앤 드래곤>을 디지털 게임에 옮기고자 하는 시도는 70년대 TRPG 게임의 발매 이후부터 꾸준히 있어왔으며, 장르 판타지 세계관의 확산 속에 <아칼라베스>(1979), <로그>(1980), <위저드리>(1980), <울티마>(1981) 등 초기 RPG 게임들은 판타지의 세계관을 컴퓨터 연산의 세계에 성공적으로 구현했다. 이후의 <울티마> 시리즈, <발더스 게이트>, <네버 윈터 나이츠>, <아이스 윈드 데일>, <플레인 스케이프: 토먼트>와 같은 CRPG 게임의 토대는 이러한 민중사와 기술사의 역사적 연속선상에 포개어져 있다.


세계관과 장르미학#2 잊혀진 민중사를 소환하는 판타지 – 공통문화의 지층 위에 주조된 검과 마법의 세계

<아칼라베스>(1979)에서 <발더스게이트>(1998)에 이르기까지 메모리와 연산이 발전할수록, 던전에서의 간단한 모험은 복잡한 대서사시로 진화해나갔다. 디지털 게임의 판타지는 판타지 문학이 상상한 민중사적 노스탤지어의 충동과, 사이버펑크 자유주의자들이 꿈꿨던 영성 혁명의 해방적 지평이 만나는 장소이자 당대의 기술적·문학적 감정의 구조가 편류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출처: pix’s ORIGIN Adventures 블로그, 플리커)


왜 디지털 게임은 판타지에 열광하는가

왜 초기 디지털 게임들은 이토록 ‘판타지’에 열광했을까? 판타지는 장르일 뿐 아니라 하나의 공유된 세계관이었다. 세계관은 공통 감각이자 유토피아적 열망이며, 판타지는 전근대의 따뜻하고 정감 어린 일반문화(common culture)로의 귀향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반 자본주의적 공동체주의, 생태주의로 향하는 60~80년대 히피이즘(혹은 사이버펑크)은 이러한 맥락에서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디지털 공간, 영성 혁명으로 통하는 토끼굴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초기의 사이버스페이스는 해방, 자유, 유토피아, 생태, 수평적 공동체라는 개념들로 창조되었으며, 디지털 게임 또한 그러했다. 전근대의 형제애적 ‘일반문화’에 대한 노스탤지어이자, 해방과 창조의 ‘민중사’인 판타지는 사이버스페이스의 가치들과 복잡하게 뒤얽히며 디지털 게임의 첫 번째 지층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판타지는 검과 마법과 모험이 있는 관념의 세계 너머, 피와 불의 문자들이 새겨진 조각상이 가득한 실낙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 연산으로 열어젖혀진 새로운 판타지의 세계관은 ‘사회적인 것’ 과 ‘기술적인 것’의 만남이자, 자유롭고 평등한 세계를 손안에 주무르며 가지고 놀기 위한 어린이의 천진난만한 놀이였다. 인류라는 어린이들이 뛰노는 이 환상 놀이터에는 계급과 착취, 감시와 처벌이 존재하지 않는다. 영토 없는 왕국의 변경에 세워진 쉼터, 판타지에 발을 들이면 누구나 조물주가 되어 세계상을 손으로 만지작거릴 수 있다. 판타지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인간과 비인간이 갈등하고 연대하는 모습을 통해 인종과 성별, 국가와 세대를 넘어 서로 친구가 되는 이야기를 직접 귀로 전해 듣는다.

화려한 검과 갑주가 부딪치고, 얼음과 불을 자유자재로 조작하는 모습을 통해 인간이 오히려 전쟁과 재난을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이 다. 즉, ‘일반문화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기술적 유토피아즘’ 위에 세워진 디지털 판타지 세계는 오늘날 우리가 절망적으로 집착하고 있는 레트로의 열풍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불어온 바람에 의해 그 숨겨진 모습을 드러낸다.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이 인용하는 것처럼, “널리 퍼져 있는 향수, 즉 사실상 전혀 그렇지 않았던 과거에 대한 갈망은 우리가 산 채로 땅에 묻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상을 갖고 있음을 암시한다.”


세계관과 장르미학#2 잊혀진 민중사를 소환하는 판타지 – 공통문화의 지층 위에 주조된 검과 마법의 세계

디지털 시대의 구전 문학이 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좌측 상단), 장난감 놀이가 된 <엘더스크롤>(좌측 하단), 정통극이 된 <위쳐>(우측 상단)와 <디비니티>(우측 하단). 금속과 숫자로 설계된 디지털 판타지 세계에서 사람들은 민담과 신화를 만들어내거나(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게임을 뜯어내 마음대로 가지고 놀기도 하며(엘더스크롤), 오페라 극장으로 향하는 관람객처럼 드라마로서 향유하기도 한다(위쳐와 디비니티). (출처: 겜프의 게임이야기 블로그, PC RPG 뉴스 블로그, 팬덤닷컴)


유예된 환상의 영원회귀: 실낙원과 노스탤지어, 그리고 공통계

오늘날의 MMORPG와 모바일 게임에서 판타지의 몰락은 우리 사회의 수많은, 이야기되지 않은 공백과 모순을 암시하고 있다. 사람들이 더 이상 판타지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게 된 것은 우리 시대의 노스탤지어가 몰락해서가 아니다. 노스탤지어는 오히려 강해지고 있으며, 해방과 자유를 향한 유토피아적 환상은 파국에서도 더욱 커져만 간다.

올빼미가 날아오르고 오소리가 잠이 들 때에야 새벽은 밝아온다. ‘판타지’라는 공통계(commons)는 수많은 사람들의 역사적인 꿈과 갈망이 파종되어 자라난 몽환의 숲이다. 문화산업 전성시대와 공황의 시기, 이 노스탤지어를 파괴하고 있는 것은 몽상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파괴적인 자본주의적 욕망들이다.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미명 하에 과거 게임 플레이의 미덕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급속히 사라져 가고 있지 않던가? 자유롭게 뛰놀던 사람들이 느긋이 모험을 즐길 여유를 잃은 채, 경쟁적인 지표에만 집착하고 있지 않은가? 게임플레이가 오히려 사회 전체의 갈등과 피로를 더욱 축적하고 있지 않던가? 상실된 환상은 실낙원의 아이들을 뒤로 한 채, 기약 없이 떠나가고 있다.

자연을 수탈하고 공유지에 울타리를 쳐가며 기계 도시들을 건설하던 산업시대처럼, 문화 공통계인 이 판타지 숲은 무차별적으로 벌목되고 있다. 의미 없고 무개성한 재현, 노스탤지어가 부재한 검과 마법, 도식화되고 일차원적 인물들과 천편일률적인 싸구려 내러티브만 남긴 채 환상극장은 막을 내리는 중이다. 판타지로 매개된 인류 한 세대의 유년기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

그러나 판타지의 세계를 열어젖힌 톨킨의 언어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공명을 전한다. 끊임없이 유예되고 돌아오는 이 실낙원과 그 거주민들에게 우리가 다시 대화를 시도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세계관과 장르미학#2 잊혀진 민중사를 소환하는 판타지 – 공통문화의 지층 위에 주조된 검과 마법의 세계

영화 <반지의 제왕> (출처: 레딧 홈페이지)


“종말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또 다른 여정일세. 온 세상에 내리는 회색비가 멈추면, 모든 것들이 은빛 유리처럼 변하게 된다네. 우린 흰 백사장과 그 너머에서 솟아나는 태양을 보게 되겠지. 그 곳은 초록으로 빛나는 왕국일걸세.”

세계관과 장르미학#2 잊혀진 민중사를 소환하는 판타지 – 공통문화의 지층 위에 주조된 검과 마법의 세계

영화 <반지의 제왕> (출처: <반지의 제왕> 공식 스틸컷)


“아주 미약한 존재일지라도, 미래의 방향을 바꿀 수 있어요.”


신현우 문화연구학자로, 기술-정보문화와 영상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공저로 , 등이 있으며 예술과 테크놀로지에 관해 강의하고 있다.

신현우

문화연구학자로, 기술-정보문화와 영상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공저로 <사물에 수작부리기>, <게임의 이론> 등이 있으며
예술과 테크놀로지에 관해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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